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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고대진] 나무 아래서 -木下會

KTN Online
Last updated: 3월 13, 2026 3: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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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노벨 문학상 작품을 원어로 읽어보자는 독서 모임이 내가 있는 엘에이/ 오렌지 카운티에 생겼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은 뒤라 한글로 된 한강의 작품들을 읽어보자는 모임이었다. 나에게는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해설하고 토론을 이끄는 일이 맡겨졌다. 그 내용이 KTN(코리안 타운뉴스) 칼럼으로 나오게 되어 모임 참석자들과 나눈 적이 있다. 이때 이 모임에 참석했던 분이 이 칼럼을 남편과 공유했더니 그 남편이 나의 목하회 후배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보다 2년 아래 목하 3기 박길용 후배였다. 그 후배를 통해 56년 만에 같이 목하회를 만들었던 정성호 군과 2기 후배 장성희 씨의 소식을 알게 되고 목하회 카톡방에도 참석해서 활동을 같이했던 동기생, 후배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목하회(木下會)’는 대학생 시절 만든 동아리 이름이다. 천문학과의 장준수 군과 철학과의 정성호, 신경시, 응통과의 윤충섭, 경제학과의 박노인, 수학과의 고대진 등이 학문 간의 상호 교류, 지도자의 인격 배양, 사회 정의 구현을 이념으로 삼아 1970년 말 무렵에 만들었다. 나는 ‘서로 다른 학문 간의 교류’라는 말에 특히 매력을 느꼈다. 수학 말고도 다른 학문을 접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름을 정할 때 누군가 ‘木下(나무 아래)’가 떠냐고 했다. 연세대 창립자인 언더우드(Underwood) 동상 근처였는데 언더우드를 한자로 바꾸어 본 것이다. 주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는데 나무 아래서 전공이 다른 학과 학생들과의 토론을 통해 깊이 사유하는 법을 배웠으며 당시의 정치 상황을 비판하고 정의를 말하며 지냈다. 모임을 같이 한 친구들이 생각이 깊고 존경할만한 친구들이어서 자꾸 ‘나무아래’로 가고 싶었다.

     첫 지도교수는 철학과 소흥열 교수셨는데 토론하면서 상대의 견해를 들으며 이끌어가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당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심취해 있어서 논리적이지 않은 명제를 모두 부정하려 했고 토론에서도 우기기를 잘했는데 비판을 멈출 때 멈추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두 번째 지도교수로 모신 분은 사학과 김동길 교수님이다. 사회와 사람을 보는 견해나 역사관 등이 우리의 존경심을 우러르게 하셨다. 가끔 그분의 집에서 냉면을 얻어먹으며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곤 했다.

     2기 3기 후배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는 지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다니며 공부를 잘하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학생들만 뽑았다. 당시 목하회에 들어오면 공부를 잘하고 재능이 많은 사람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뽑혀 된’ 멤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똑똑한 학생들이 모여서 하는 토론에서는 당연히 정부의 정책 등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유신 반대의 토론을 주최하였는데 지도교수인 김동길 교수님과 3기 학생 몇 명이 기관에 잡혀가서 크게 곤욕을 치렀다. 그 기관에서 이런 모임을 만든 저의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김동길 교수님이 “이름을 보아라. 나무 아래서 쉬면서 놀자는 모임이 아니겠냐?”라고 대답했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물론 동아리는 ‘불온 단체’로 낙인이 찍혀 독재 정권의 압력에 의해 강제 해체당하고 당시 토론을 이끌던 학생들과 지도교수는 징역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참으로 야만의 시대였다.

    그 뒤 비밀동아리 혹은 공식 동아리로 계속되어 70년대 후반, 80년대에도 꾸준히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에 앞서왔고 지금 56기까지 계속되고 있다니 ‘창립 멤버’였음이 자랑스럽다. 김동길 교수가 지도하던 사학과 학생 중심의 학술 및 친목 단체였다는 말이 있는데 사학과 학생은 창립 초기에 한 사람도 없었다. 멤버들도 될 수 있으면 다른 학과에서 뽑았고 이과대, 문과대, 상대, 가정대, 간호대 등 대학도 달랐다. 그래서 학문을 대하는 태도도 다양했다. 지금도 연세대 내에서 가장 책 많이 읽는 곳 중 한 곳이란 평이 있고 뛰어난 인물들도 많이 배출해왔다고 한다.

    초대 목하회의 회장으로는 모임을 주도한 장준수 군이 뽑혔다. 준수는 리더쉽이 뛰어났고 사람들도 많이 알고 또 아우르는 능력이 탁월했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인 목하회를 발전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재능이었다. 준수는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목하 후배 2기생 문 성희 양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유학하여서 정착하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순애보 이야기는 “저 높은 곳에서”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방송에도 출연하여 알려졌다. 안타깝게도 코비드 때 먼저 ‘저 높은 곳’으로 먼저 갔다. 준수를 생각하면 랄프 에머슨의 시 “성공”이 떠오른다.

     많이 그리고 자주 웃는 것./ 현명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로부터 찬사를 얻고/ 잘못된 친구들의 배신을 견뎌내는 것./ 아름다움의 진가를 알아내는 것/ 다른 이들의 가장 좋은 점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작은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당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조금 더 쉽게 숨 쉴 수 있었음을 아는 것.

            준수는 정말 성공했다.

TAGGED:고대진고대진 작가문학칼럼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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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 댓글
  • 남영한 댓글:
    3월 13, 2026, 8:24 오후

    얼마전 LA에서 단국대 교수님들이 오셔서 문학강의를 하셨는데 그때 뵈웠던 수전박 여사께서 오늘 고박사님의 글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고명하신 고박사님의 글을 대하니 저도 그 무렵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용히 지내는 타입입니다.
    얼마 전 수전박 여사와 박길용선생이 북가주 저희 농장을 다녀가시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글을 통해서나마 인사를 드리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영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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