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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그럴 때가 있습니다

Last updated: 5월 12, 2023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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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힘을 싣고 닫히는 문소리에 막 엉키고 있던 생각의 꼬리가 잘렸습니다. 언제 들어왔는지 소리 없이 들어 온 손님이 피팅 문 닫히는 소리에 본인도 놀란 모양입니다. “미안해요.” 피팅 룸 벽을 울리며 넘어오는 소리. 조금은 흥분으로 고조된 소리입니다. 그 소리에 나는 물구나무섰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 짧은 호흡을 정리하고 “아뇨, 괜찮아요. 문이 너무 가벼워서 그래요.” 정해둔 문장이라도 읽어 내리듯 서둘러 말을 마쳤습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쉐럴인 것 같은데 탐을 두고 혼자 왔나 봅니다. 아니면, 탐을 차 안에 남겨두고 들어왔거나. 무슨 일일까요. 늘 함께 왔는데요. 급하게 가야 할 데가 있는 걸까요.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잠깐 많은 생각이 나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언젠가, 그러니까 5~6년은 족히 지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의 일상은 설움에 절어 잠깐 허튼 생각만 해도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직후라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날도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슬그머니 나오는 눈물을 훔치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엉엉 소리 내 울고 말았습니다. 그때 탐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허겁지겁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훔치며 벌게진 눈을 어찌할 줄 몰라 엉성하게 인사를 했더니 깜짝 놀란 탐이 물었습니다. 무슨 일 있느냐고. 아니 아무 일 없고 그냥 엄마 생각이 나서 그런 거라고 얼버무리며 찾으러 온 옷가지들을 건네주고 보냈습니다. 

 

그를 보내고 나서 화장실로 들어가 울음 끝을 정리하고 있는데 다시 가게 문 열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헬로우!” 하며 달려 나오니 탐이 꽃이 담뿍 담긴 화병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는 화병을 내게 안겨주더니 다정하게 어깨를 안아주며 토닥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다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힘내라고. 괜찮다고. 살다 보면 다 살아진다고. 다 지나간다고. 

그랬던 그가 몇 년 전부터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 씩씩하고 점잖았던 그가 몇 번의 수술과 키모 치료를 거치면서 몸도 마음도 기운을 잃었습니다. 이제는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운전을 할 수 없으니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어서 늘 아내인 쉐럴과 함께 움직입니다. 그는 그때 일이 아직도 마음에 남았는지 오래된 친구처럼 올 때마다 꼼꼼히 나의 안부를 살핍니다.   

 

이만큼 살다 보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다양한 모습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마음에 쓰이는 일은 장애 아이를 기르는 부모를 만날 때입니다. 평생을, 늘 옆에 끼고 돌보면서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들이 오면 나는 슬프거나 힘든 내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주절주절 떠들어 댑니다. 

 

그런데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쉐럴 혼자 들어 온 것입니다. 쉐럴이 냈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문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하야 하나.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최상이지 않을까. 그래, 기분 좋게 내 할일 만 하자. 괜히 위로한답시고 주절대는 것보다 낫겠지. 그러면 그녀가 조금은 평온하게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표현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최상의 비책이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마르크 드 스메트의 『 침묵 예찬 』의 첫 페이지에는 수피교의 계율이 적혀 있지요 “그대가 입 밖에 내는 말이 침묵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니거든 말을 하지 말라.”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렇지요. 그럴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나 자신이 무기라도 된 것처럼 모든 것에 무게가 실릴 때가 있습니다. 열어 놓은 채 살던 문들이 갑자기 벽을 울리며 하나둘 닫히는 순간들이 있지요. 내 호흡은 나를 놓치고 온 우주가 나를 감지하는 듯 나의 무게가 느껴질 때지요. 내 손에 닿는 것마다 마치 살이 붙은 듯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 내고, 그럴 때는 함부로 이름 붙이고 싶은 감정들이 마구 이구동성으로 올라옵니다. 그것은 쪼그라들던 나의 무게가 기를 펴고 싶다는 신호이지요. 바로 온몸으로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다는 나도 모르는 내가 전해주는 전언이지요. 표현하지 않아도 한 번쯤은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 주길 바라는 순간입니다. 

 

그럴 때는 무거운 나를 덜어내는 연습을 합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이불 속에 숨어 잠으로 뭉개 버리려 억지 잠은 자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시동을 켜고 아무 데나 쏘다니지도 않습니다. 달빛을 바르고 앉아 독주는 더더욱 하지 않습니다. 일하면서 주문을 외듯 나와 대화합니다. 나에게 고백하고 나의 말을 들어줍니다. 제 그림자를 끌어오려면 어둠을 툭툭 털고 일어서야 하겠지요. 

 

           항해4    / 김미희

 

오늘도 그는

반백이 되도록 종착지를 더듬고 있는 아들의 손을

풍선 줄이라도 잡은 듯 꼭 쥐고 가게 문을 밀고 들어서다

부러 한 옥타브 올린 내 안부 묻는 소리에 짐짓

휘둥그런 눈에 어깨를 움찔 한 발짝 물렀다가 들어서며 웃는다


시간은 훨씬 앞질러 달렸고

완성되지 않은 목소리에 그만

먼 행성을 떠도는 생각을 버린 채


몸만 키웠던

밤꽃 향 내리던 그 밤을 어찌 원망할 수 있었으랴


신발 문수가 늘어날 때마다

늦게 오는 사람도 있다고

첫울음에 세상의 모든 귀가 열리던 그 환희의 순간을 기억해

깊어져 가는 심장을 다독이며 울음주머니를 비워왔을 그


자신을 알리는 우는 법을 가르치다 속살이 씹혀

찌그러진 아픈 웃음 그것도 주문되기에 충분하다고

그래도 그만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아직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니

반짝이는 법을 알지 못해도 별은 별인 것이라고 따졌을 터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마른 입술을 깨물어 다물며 숨죽여 올리던 기도는 이제

함께 돌아갈 우주선 한 귀퉁이를 마련해

어딘가에서 행로를 트고 있을 그들의 행성을 향해

풍선 줄은 야무지게도 둘을 묶어 교신을 트고 있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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