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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소담 한꼬집’ ] 대호를 꿈꾸며

Last updated: 1월 14, 2022 11: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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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났다. 

 

2021년 문턱을 넘어 2022년으로 넘어왔으나 내 일상은 딱히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분주하고 24시간이 모자를 만큼 바쁘다. 새해에는 일을 줄여보리라 작심했건만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일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딜 가나 일이 따라다니니 일복 하나는 확실하게 타고난 것 같다. 이미 속한 단체에서 하는 일도 많은데 올해는 직책과 일이 더 늘었다. 

 

내 문제는 거절을 못 한다는 거다. 감당을 못 할 거면 애당초 No를 해야 하는 데 부탁한 사람 무안할까 봐 앞뒤 안 재고 Yes를 해서 이렇게 신세를 볶는다. ‘다정’이 병인 것이다. 

 

건강하면 그까짓 봉사가 뭐 그리 대수일까마는 아파 절절매면서 오지랖을 떠니 가족과 지인들이 혀를 찬다. 봉사 그만하고 네 글이나 쓰라고. 짰나? 어쩜 그렇게 대사가 똑같은지 모르겠다. 

 

나도 안다. 내가 아니어도 해는 뜨고 세상은 돌아간다는 거.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야무진 사람들이 볼 때 내가 하는 일들은 실속 없고 영양가 없는 일이라는 거. 죽도록 해도 뭐 하나 잘못되면 공은 사라지고 욕만 먹는다는 거. 그래서 나 같이 한심한 인사를 그들이 걱정한다는 거. 

 

생각과 살아온 방식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을 가치의 중심에 두느냐는 서로 다른 거니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면 된다. 답답하고 못나 보여도 상대의 입장을 존중해주고 이해해 주며 말이다. 자기 일보다 봉사가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편하게 살고 싶다. ‘코’나 ‘오’가 걸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파서 사경을 헤맸던 지난 연말과 연초엔 새해가 되면 나도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밝고 따뜻한 창가에서 햇살이 빗금 쳐주는 방향을 따라 자리를 옮겨 다니며 책을 읽고, 서가가 있는 자그마한 내 작업실에서 쓰다만 작품들을 완성하고 싶었는데, 결국 쏟아져 들어오는 부탁을 하나도 거절하지 못했다. 중증이다. 

 

나는 편집자다. 자칭 고급인력이다. 그 재주로 용돈을 벌고 봉사도 한다. 내 손이 가면 반듯해지는 교정지를 보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으나 얼마 전 출판사 대표로부터 완벽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책이 잘 나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편집자는 피가 마르고 살이 내리는 극한직업이다. 험한 문장을 만나 머릿속이 하얘질 때마다 ‘이것만 끝내고 그만둬야지’를 수없이 반복하다가도 순산한 책을 받아들면 이내 마음이 바뀐다. 좋아하는 일이고 뭣보다도 보람이 있어서일 것이다. 

 

누구 눈치 안 보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좋고, 내 시간을 적절히 쓸 수 있어서 좋은데 문제는 척추가 안 좋으니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다. 

 

요즘 의미 있는 일을 맡아 하고 있다. 미주 한인 이민사에 남을 책이어서 사명감으로 봉사 중이다. 함께 봉사하는 친구가 자기도 역사적 사명을 띠고 하는 중이라며 너스레를 떨어서 함께 웃었다. 생각이 바르고 일하는 스타일이 비슷해서 호흡이 잘 맞는다. 

 

매일 밤 레드불을 마시고 방대한 원고를 읽고 또 읽으며 문장을 고른다. 제발 잘 걸러졌으면 좋겠다. 그 일로 내 새끼 낳는 일이 뒤로 밀렸다, 괜찮다. 평생 남 좋은 일만 시키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딸인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나 싶다. 인력으로는 안 되니 마음이 하자는 대로 가볼 생각이다. 

 

2022년은 임인년 호랑이의 해이다. 비로써 나의 해가 도래하였다. 어릴 때 사람들이 내게 너는 무슨 띠냐고 물으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범띠요. 근데요, 저는 아침에 태어나서 순하대요. 우리 아버지가 호랑이는 밤에 활동하고 아침에는 자거나 쉬기 때문에 순하다고 하셨어요” 하며 묻지도 않은 말을 보태곤 했다. 

 

누가 물었냐고요? 그건 아마도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들었던 “범띠 여자는 팔자가 사납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걸 느꼈던 모양이다. 굳이 그 말을 강조했던 걸 보면 말이다. 

 

“입찬소리는 무덤 앞에 가서 하라”는 속담도 있는데, 어찌 그리 근거 없는 장담을 어린 호랑이 앞에서 하셨을까? 부정하고 싶지만 어렵고 험한 일을 겪을 때마다 내가 정말 범띠라서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세월이 흘러 어린 호랑이는 어미 호랑이가 되었다. 이젠 누군가 띠를 물어도 순하다는 토는 달지 않는다. 팔자는 이미 정해졌거나 누가 고쳐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2022년이 무슨 해인지 검색하다 농협에서 제공하는 무료 일 년 운세가 떠서 호기심에 눌러보았다. 생년월일 태어난 시를 넣고 클릭을 했더니 한 페이지가 떴다. 

 

모모 할 것 같다. 모모 할 것으로 보인다는 말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중 “건강에 문제로 크게 무리가 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만 건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저앉았던 오기가 발동했다. 

 

“이쒸~ 감히 어디서 운세 따위가 훈계질이야. 덤벼. 다 뒤집어 줄 테니. 나 호랑이야.”

하하하, 아무렴 어떤가. 새해이니 새로운 마음으로 또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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