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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기억을 만드는 일

Last updated: 6월 18, 2021 9: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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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 baby,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ain’t no valley low enough, ain’t no river wide enough, to keep me from getting to you, baby~ If you need me, call me, no matter where you are, no matter how far, don’t worry, baby, just call my name, I’ll be there in a hurry, you don’t have to worry~”

 

요즘 들어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 참 많다. 내일모레면 육십줄에 들어서니 이만하면  세상 일은 다 통달한 듯 싶은데 매일 매 순간이 배우는 일로, 선을 넘어야 하는 일로 가득한 것 같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이제 3주 앞으로 다가온 큰아이 결혼식에서 ‘마더 & 썬’ 댄스를 위해 내가 고른 음악이다. 오래 전 미드에서 나오는 걸 듣고 가사가 참 좋아 캡처해뒀던 음악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고르라고 해서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결정했다. 큰아이랑 만나서 연습하기 전에 며칠 동안 일하면서 열심히 듣고 익혔다.

나름대로 안무도 그려 보았다. 하지만, 막상 춤을 추려니 몸이 전혀 따라주지 않는다.  

 

품에 안고 쪽쪽 빨며 젖을 물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커서 남자가 되었을까. 음악이 나오자 큰아이가 다가와 인사를 하고 손을 잡는데 정말 쑥스럽고 떨렸다. 

떨리고 당황스러운 걸 웃음으로 넘기려니 더 어색했다. 이를 어쩐담, 난감했다. 내 인생에 블루스나 춤이라고는 친구들이랑 노래방에서 재미로 해본 것이 전부다. 더구나 큰아이는 또 어떤가. 

노는 것에는 젬병이다. 발렌타인 댄스파티나 프롬에도 참석한 적이 없으니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말할 것도 없다. 

둘 다 몸치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하면 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걱정하는 소리를 들은 친구는 댄스학원에 가서 제대로 레슨을 받으라고 성화다. 

차라리 그럴 걸 그랬나 싶다가도, 시간을 내서 배우러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배우며 선을 넘어보기로 했다.

찾아보니 같은 곡으로 춘 영상이 여러 개 올라와 있었다. 가사가 좋아서 선뜻 고른 곡인데, 결혼식에 단골로 뽑히는 곡인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영상 중에 내가 생각했던 식의 춤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따라 하다 보니 간신히 가닥은 잡은 것 같다.

몇 번 더 만나 합을 맞추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연상할 수는 없겠지만,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큰아이가 어렸을 때는 저녁 먹고 나면 노래하며 춤도 같이 추고 비행기도 태워주고 했다. 이젠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낮에는 일하느라고 놀아주지 못하니까 밤이면 같이 놀자고 오히려 내가 아이를 성가시게 했었다.

그러면 엄마는 그만 힘들게 하고 아이를 재우라고 성화를 했었다. 춤도 춤이지만 가끔 술 한 잔 같이하는 것 말고는 아이가 서른 살이 되도록 아이와 함께해본 것이 별로 없다. 

 

다행히 큰아이와 함께한 잊지 못할 추억이 몇 가지 있다. 2014년 겨울, 큰아이 대학졸업 기념으로 단둘이서 한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2주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많은 곳에 찾아가 많은 사람을 만났다. 밤에 KTX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해운대 밤바다를 보고 뒷골목에서 돼지국밥에 소주 한 병 비우고 2시간 만에 마지막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기도 했다. 그 흔한 노래방도 그 때 한국에서 가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열 살 때인가, 어린이 밴드 ‘센세이션’에서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른 이래 생전 처음 큰아이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생각도 못 했던 노래를 듣고 감격해서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한국 노래를 부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아주 고운 미성이었다. 음치인 아빠를 닮지 않고 역시 나를 닮아 제법 잘 불렀다. 아이돌 그룹도 좋아했고 K-팝을 즐겨 듣는 건 알고 있었지만, 흥얼거리는 소리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감동이 컸다. 

 

그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서산에서 묵은 여인숙이다. 큰아이랑 내려간다고 연락을 드렸더니 형부가 방을 미리 얻어 놓았다.

아들이 다 컸으니 더블베드를 잡아야지 세상에나 싱글 베드, 방 하나를 예약해 놓으셨다. 딸도 아니고 다 큰 아들이랑 한 침대에서 그것도 한 이불을 덮고 자려니 난감했다. 방은 또 담배냄새로 찌들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일찍 쉬려고 들어갔다가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고 맹숭맹숭 할 것도 없어서 다시 나와 극장으로 갔다. 영화가 끝나 할 수 없이 여인숙 방으로 들어가는데 주인 아줌마가 부르며 따라왔다.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까 “그 방은 어른이 예약한 방인데” 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게 아닌가. “네, 제가 어른이에요. 이 아이는 제 아들이고요.”

그 밤 우리는 한 침대에서 얼마나 어색한 밤을 보냈던가. 그래도 피곤하니까 곯아떨어졌던 것은 분명하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지혜(Sophia)를 사랑하는(Philo)’일이라 정의했다. 이는 철학(philosophic)의 어원이 되었다. 

피타고라스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지적 호기심과 지혜에 대한 갈증은 늘 가지고 산다.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은 많은데 내겐 시간이 없다.

책 한 권 읽는데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배우고 싶은 것은 유튜브를 통해 일하면서 듣는 것으로 갈증을 다소 해결하고 있다. 읽고 싶은 책도 듣는 것으로 대신한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 듣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다.

그런데 안 되는 춤까지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니 설레는 일이다. 일생일대 두 몸치가 펼치는 퍼포먼스라! 벌써 가슴이 뛴다. 나는 오늘도 선을 넘기 위해 기꺼이 나의 선을 허문다. 

 

선을 넘다 / 김미희

 

칼금 긋는 소리는 아니었다

담을 넘는 소리는 더욱 아니었다

-그래도 글쎄- 

김 다 빠진 척 흘린 대꾸는

낮아지는 선의 마지막 파장 음이 되었다

 

그 토끼가 쉽게 선을 넘어 들었다  

톡 

봉숭아꽃 하나 따먹히는 소리가 났다 

 

선을 넘어서면 꽃을 피우고

그래서 자신의 높이를 찾는 일이 되는 거고

아무하고도 만난 적 없는 혼을 터치하는 일이 되고

속삭이는 일이 된다

 

-나는 너를 보면 든든해

-그래서 우린 서로

-밥이야

 

서로 닿으면 반사되지 않고 먹히는 말

겁 없고 앳된 얼굴로 선을 넘던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된다 

철로 변 여인숙이 아니어도

선을 넘는 일은 언제나 기억을 만드는 일이 된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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