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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인연

Last updated: 12월 18, 2020 10: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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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아침부터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큰아이가 인연을 만났다. 평생을 함께 할 그의 사람을 찾은 것이다. 

5월에 있었어야 했을 상견례가 코비드19로 인해 11월로 미뤄졌고, 그 미뤄진 시간은 결국 비대면 시대라는 현실에 맞춰 우리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히고 말았다. 뒤란에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아이들이 준비한 저녁을 먹으면서도 두근거리는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생전 처음 하는 일이니 떨리는 건 당연하다고 괜찮을 거라고 다 잘 될 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며 맥주 한 잔으로 다스려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인연이 두근거림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이다. 특히 두 집안이 잘 키운 서로의 아이를 나누고 또 함께 하는 인연은 더더욱 그러하다.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고 시작할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주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다. 

모닥불 앞에서 저녁을 먹고 난 우리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사돈이 될 두 분은 넥타이까지 매고 단정하게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모니터 앞에 마주 앉아 첫 인사를 나눴다.

2020년 코로나 시대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슨 얘기를 나눠야 하냐고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이웃 사람들처럼 양가 두 아버지는 쉽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우리는 함께 웃고 있었지만 떨리는 가슴으로 인해 속눈썹이 젖어 있었다. 

 

무엇이든지 상의할 것이 있으면 언제든 다시 자리를 만들자며 흡족하게 상견례를 마쳤다. 어렵긴 어려운 자리였나보다. 한여름에도 땀을 흘리지 않던 겨드랑이가 흠뻑 젖어 있었다.

아이를 낳고 30년을 키우는 동안 부모로서 단 한 번도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본 적이 없다. 후일담이지만 사돈 내외분은 나누고 싶은 말들을 조목조목 적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노트한 사실조차 다 잊어버렸다고 한다. 물론 우리 아이와는 영상으로 자주 만나 낯을 익혔다고 하지만 한 번 만나보지도 않고 덜컥 결혼을 승낙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감사하다.

상견례를 마치고 두 분은 아주 기분이 좋아 늦게까지 한 잔 하셨다고 한다. 역시 사돈을 만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어렵고도 흐뭇한 일인 것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우리 아이에게 우리보다 더 든든한 뒷배가 생긴 것 같아 좋다.

 

인연경에 따르면 부부의 인연은 팔천 겁의 인연이 있어야 맺어진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1겁이란 세상이 한 번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후 다시 만들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즉, 몇 억만년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려 팔천겁의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이 부부의 인연이라고 하니 얼마나 깊고 두꺼운 인연이 아니겠는가.

우리 아이의 인연이 태평양 건너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팔천겁의 인연이 있었기에 태평양을 건너온 것이다. 결혼날짜부터 결혼식 장소, 모든 것을 두 아이한테 맡기기로 했다.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3년 사귀는 동안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오히려 이상했다. 하지만, 서로 부족한 것은 서로 채우면서 잘 살겠노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고 안심이 됐다. 

그렇지. 그런 마음이라면 행복해지는 법을 제법 잘 알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거면 되었다. 넘치면 덜어내고 또 부족하면 서로 채워주면서 지혜롭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카톡! 카톡! 카톡! 연신 울려대는 전화기를 열어보니 “어머니, 저 웨딩드레스 샀어요. ㅎㅎ” 문자와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와 있었다. 

제법 예쁜 걸 골랐다 싶어 흐뭇해하고 있는데 사이즈도 맞고 세일까지 해서 완전 득템했노라며, 문자와 이모티콘이 뒤따라 날아왔다.

그러면서 큰아이한테는 비밀로 해달라는 애교 섞은 부탁도 할 줄 안다. 이제 어머니가 되었다. 우리 아이를 사랑한다는, 평생 같이하고 싶다는 예쁜 처자가 나에게 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이 어색한 단어가 왜 이리 좋은걸까. 결혼식 날짜는 한국에 계신 할머니께서 좋은 날로 잡아주셨다고 알려왔다.

지난 주말에는 두 아이가 식장을 알아보고 왔다. 다행히도 마음에 드는 곳에 스케줄도 비어 있어 예약까지 하고 왔다고 한다. 너무 급하게 결정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기왕 믿고 맡기기로 했으니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서툴지만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내가 나선다고 더 잘하겠나 싶기도 하고 그저 꼼꼼히 잘 짚어가며 건너라고 당부를 할 뿐이다. 

 

얼마 전에 큰오빠가 첫 손주를 보고 신바람이 났다. 한국에서 보내오는 동영상을 하루가 멀다고 내게 보내준다. 이제 제법 방긋방긋 웃고 옹알이하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어릴 적 우리 큰아이를 보는 것 같다.

큰아이는 혼자 낳았다. 물론 곁에 엄마와 친정 식구들이 있었지만, 생후 7개월이 되어서야 큰아이는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아빠가 올 때까지 격주로 사진을 뽑아 한국에 있는 아빠에게 보내주었다.

그렇게 꼬물거리던 아기가 어느결에 장성해서 결혼을 한다니 꿈만 같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길을 잃지 않고 오늘까지 잘 올 수 있었던 것도 삼십 년 동안 나를, 우리 가정을 지켜준 것도 큰아이였다.

모자의 인연으로 만나 탈 없이 잘 자라주어 고맙다. 

 아들! 사랑한다. 그리고 축하한다. 

 

왠지 

부부라든가 부모라 이르며 살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격으로

완벽해야 할 것 같아서

거창하게 

누구의 누구라 하지 말고

우리 그냥 보통 사람으로 바라보며 살자

 

가끔은 쉼표 하나쯤 더 찍어

엇박자도 날리면서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듯 작아 보여

보듬고 다독여 주고 싶은

한번 보고도 가슴에 담기는

그런 사람으로 

 

그 누군가 지친 삶의 거리를 겉돌다가

조금은 구차해 보인다 해도

이런저런 사연 웃고 넘기는 우리를 보고

그 사람들 말이야

사람냄새 나서 좋더라는 참사람으로

그렇게 

 

가슴속에 눈물이 고여야 피어나는

선인장꽃 한 송이씩 가슴에 달고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을 삶 돌아보며

서로 기대는 등 따스하면 되는 것

우리 그렇게 그렇게 살자

 

김미희, (우리 그냥 그렇게 살자)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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