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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숨을 쉴 수가 없는 계절

Last updated: 6월 12, 2020 9: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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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은 유난히도 더디게 갔다. 거의 날마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블랙홀에 파묻혀 모든 일상이 그곳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러다보니 꽃샘추위가 지나갔는지, 목련은 피었다 졌는지, 부활절이 언제였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저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먹고 자고 해가 뜨면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뉴스들을 끊임없이 듣고 보고 하면서 좀비처럼 지냈다.
이제는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쯤은 일상 중의 일상이 되었고, 마스크 없는 외출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래도 처음엔 이 비일상적인 일들이 시간이 가면 돌아오겠지 했는데, 지금은 그런 기대조차도 사치처럼 여겨질 만큼 총체적 난국이다.

“숨을 쉴 수가 없다(I can’t breathe).”
무슨 범죄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이 백주대낮에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났다. 백인 경찰 몇 명이 흑인 용의자를 에워싸더니 무슨 동물 죽이듯, 무릎으로 목을 9분이나 눌러서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백인 경관의 무릎 아래에 깔린 흑인은 숨을 쉴 수가 없다고 16번이나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 백인경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목을 누르고 있었다.
동영상을 통해 이 장면은 미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이에 분노한 흑인들의 시위가 지금 온 미국을 달구고 있다.
그들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다음엔 제 차례입니까(Am I Next)’? 이런 문구들이 적힌 피켓을 들고 백악관 앞까지 행진하며, 수백년 동안 이어져온 인종차별에 관해 격렬하게 항의를 하고 있다.
저 먼 아프리카에서 영문도 모른 채 노예선에 끌려와 미 대륙을 밟은 그들의 현재는 지금도 여전히 인종차별이라는 쇠고랑에 묶여, 숨을 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한 달전만 해도 조깅을 하던 흑인 청년이 백인 父子의 손에 피살되었으며, 센트럴 파크에서 목줄도 없이 대형견을 산책 시키던 백인 여자는, 지나가던 흑인 이 개 목줄을 채우라고 하자 다짜고짜 경찰에 신고부터 했다.
흑인이 공원에서 자신을 위협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광경을 찍은 영상이 있어 도리어 이 여성이 실직을 당하긴 했지만, 이런 일이 미국에서는 비일비재하다.
도대체 세계 최고의 인권국이라며, 허구헌날 다른 나라 인권은 감시하고 비판하면서 정작 자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은 방관하고 있다. 물론 흑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민자와 비이민자, 인종대 인종간의 보이지 않는 차별도 무수히 존재한다.

지금의 세계는 어디를 가든지 숨을 쉴 수가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살아있는 강아지를 생매장 한다든지,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다 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고, ‘부부의 세계’ 보다 더 심한 현실판 부부들과 친자식을 성추행하는 아버지 등 눈만 뜨면 인면수심스런 사건들이 무수하다.
게다가 초강대국 대통령 신분으로 걸핏하면 막말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미대통령은 이곳에 살고 있는 3억 인구를 늘 불안에 시달리게 한다.
흑인들의 상실감이나 분노에는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한 채 화난 시위대 앞에서 ‘약탈 시작하면 총격시작’이라는 선동적인 망언을 올려 불난 정국에 기름이나 붓고 있다.

엘에이 한인사회는 28년 전의 그날의 악몽을 생각하며, 폭동이 재발되지 않을까 하여 잔뜩 긴장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어렵게 문을 연 수 많은 소상공인들 역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벌써 방화와 약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들은 간혹 또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겨우 코로나 19가 조금 잡히나 했더니, 마스크도 없이 시위하는 군중들을 보니 다시 확산될 조짐도 보인다. 가담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숨을 쉴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다.

오늘 아침 난 화분을 옮기다 아주 작은 새 한 마리가 장미 곁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몹시 작은 새끼 였는데 온 몸이 연두빛으로 색이 참 고운 새였다.
무엇을 보고 놀랐는지, 아님 어디서 떨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새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어보였다.
난 가만히 다가가서 새를 손바닥으로 옮긴 뒤 작은 상자 안에 타월을 깔고 눕혀주었다. 그 안에 쌀과 퀴노아도 조금 넣어 주었다.
그리곤 집안일을 하다 다시 가서 보니 새는 눈을 감고 죽어있었다. 새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모르지만, 난 그날 내내 맘이 짠했다. 새의 죽음도 이러한데, 우리는 지금 사람의 죽음이 너무 쉽게 치부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모든 게 불확실하다. 뉴 노멀(New Normal)이라고 불리우는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는 사람보다는 로봇,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이 성행할 게 분명하다.
인간은 점점 더 고립되고 외롭게 살게 될게 뻔하다. 또한 불평등은 훨씬 심화 될 것이다. 자가격리도 볕 안 드는 지하셋방에서 지내는 것과 휴양지별장에서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다른 대륙으로의 여행도 쉽지 않을 것이다. 수 많은 여행사들이 문을 닫았다. 여느 해 같으면 ‘올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가지?’가 큰 화두였는데 지금은 예전에 다녀왔던 해외 여행지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다.
이상하게 몇 년전에 보았던 스타워즈의 오프닝 장면이 자꾸 오버랩 된다.
“A long time ago, Galaxy far, far away(아주 오래 전 은하계 저 너머엔…)” 이상한 인류가 살고 있었다고 몇 백만년 후 인류의 후손들은 우리들을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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