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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그날의 생각

Last updated: 8월 16, 2019 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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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에세이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마실 나간 잠이 영영 달아났나 봅니다. 뒤 뜰 콘크리트 바닥에 자리를 펴고 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이게 얼마 만인지 모릅니다. 오늘따라 별이 유난히 많습니다. 손이라도 뻗으면 닿을 듯합니다. 스테파니 아가씨와 양치기 소년이 보던 별들이겠지요. 북극성이 보입니다. 어릴 적 멍석 위에서 만났던 그 북두칠성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00도가 넘던 낮 기온과는 다르게 선선한 기운에 홑이불을 끌어 덮었습니다. 낯설지 않은 바람이 기분 좋습니다. 아마 담장 위에 걸쳐있는 능소화꽃을 훑고 온 바람이겠지요. 이대로 잠이 들어도 좋을 듯합니다. 그러다 꿈이라도 꾼다면 양치기 소년이라도 만날 것 같습니다.

호강이었습니다. 별을 보고 있으려니 별처럼 반짝이던 사람들의 눈빛이 떠오릅니다. 마음을 다해 축하해주던 분들의 환한 얼굴이 별처럼 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하게 별들 속에 그 이름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세상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던 날이었습니다. 내 생전에 이런 호강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분에 넘치는 날이었습니다. 나를 보러 달려온 사람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잊지 않고 축하해 주신 분들. 행사장을 꽃처럼 환하게 빛내주기 위해 푸짐한 화환을 보내주신 분들. 내가 무엇이라고. 마치 내 캄캄했던 시간에, 어두웠던 내 밀실에 백열전구를 한 백 개쯤 켜 주신 것 같았습니다. 과연 몇 분이나 오실까. 장소를 괜히 넓은 곳으로 정한 걸까. 그동안 연락도 안 하다가 뜬금없이 “두 번째 시집을 출간했으니 와서 축하해주십시오.”라고 하면 다들 뭐라 생각할까. 나의 고민은 쓸데없는 기우였다고 장내를 꽉 채운 폭죽 같은 얼굴들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지난 삼 년은 힘들었습니다. 많은 우울한 일이 있었습니다. 늘 함께했던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오랫동안 젖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남은 작은 미열로 몸살을 앓고 말았습니다. 입술이 뭉개지도록 앙다물어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작은 미열이 계속 나를 흔들어 깨우고 끄적이게 했던 것입니다. 정처 없던 나의 말들이 목에 걸렸던 말들이 탈속의 문지방을 넘어 세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부정했던 시간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습니다.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흔적이 박수를 몰고 왔습니다. 결국 목마름이 질긴 어둠이 나를 키웠습니다. 끝도 없을 것 같은 기다림이 나를 익혔던 것입니다.

이틀 전에 부탁했는데도 흔쾌히 사회를 맡아 행사를 부드럽게 잘 이끌어 주신 분. 시집을 다 읽고 시를 골라 마음을 다해 읽어 주신 분들. 북 리뷰를 준비해 멀리서 달려오신 분. 부끄러운 짓을 하는데 축하의 말씀과 더불어 물심양면으로 기쁘게 동참해 주신 분들. 시노래를 만들어 불러주신 분들. 2시간이 넘는 시간이었는데도 끝까지 자리를 함께해 주신 분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시고 책임을 다해 주신 분들. 마지막까지 남아 뒷정리를 거들어 주신 분들. 주말 늦은 시간까지 남아 취재를 하고 기사를 멋지게 써준 언론사들. 참으로 고맙습니다. 모두 식구와 같았습니다. 기쁜 얼굴로 행복을 나누어 주던 분들. 아주 사소한 남의 행복을 외면하지 않는 분들 덕분에 하찮고 보잘것없는 시집을 들고 가 내용이 꽉 찬 시집을 챙겨온 기념식이었습니다.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자란 사람이라 시기 질투란 놈에게 마음을 쉽게 빼앗겼는데 이제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시기 질투란 놈을 이겨 먹으렵니다. 웅크려진 마음을 스팀다리미로 꾹꾹 눌러 펴보렵니다.

꽃이 피는 것은 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의 시도 세속으로 잘 걸어 들어가 누군가의 길옆에서 걸리적거렸으면 좋겠습니다. 시라고 호명되지 않아도 좋으니 누군가의 언저리만이래도 살짝 데워주면 좋겠습니다.

그날의 생각 / 김미희

입술이 아직 뜨겁게 타고 있다고
눈길이 아직 젖어 있어서라고 말한다
혼자서

돌아서며
차가운 날숨을 삼키던 어둠이
나를 키웠다고 주절대지만
기다림이 나를 익혔음을 터득한 그 몸부림을
과연 누가 거부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골목을 돌고
돌고 또 돌아본 대야
이별은 결코 곧은길로 돌아설 줄 몰라
다시 만나고 마는 것
뼈마디 마디마다 부지런을 떨어
꽃을 피운 일 있던가
결코 아니면서도

무엇이라 불리지 않아도
누군가가 언저리만이라도 살짝 데워준다면
부정당하지 않는다
그날이었으니까
생각이었으니까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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