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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머피야, 이제 너는 가라!

Last updated: 7월 19, 2019 9: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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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에세이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아빠! 제발 좀 조심해!” “아빠! 내가 할게, 제발 내려와!” “아빠는 대한민국 육군 출신이야.”라며 힘주어 말하지만, 나무 위에 서서 톱질하는 아빠가 불안하고 안쓰러운지 아이들은 안절부절못합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우리 네 식구는 큰일을 해결하기로 합심했습니다. 마당 가의 큰 물푸레나무가 플래이노 시로부터 경고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봄에 깔끔하게 나무를 정리하는 옆집을 보고 내년 봄에는 우리도 해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사이를 못 참고 경고장이 날아들었던 것 입니다. 며칠 사이에 여러 집 나무가 말끔하게 정리된 것을 보니 우리 집뿐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봄부터 징조가 안 좋았습니다. 가끔 가래 끓는 소리를 내 조마조마했던 냉장고가 숨을 놓더니 줄줄이 초상입니다. 20년을 하루도, 한시도 쉬지 않은 충직했던 우리 집의 일꾼들이 하나둘 쓰러졌습니다. 냉장고를 선두로 몇 달 사이에 많은 것이 걸음을 멈췄습니다. 나에게 있어 컴퓨터와 핸드폰은 세트인가 봅니다. 꼭 같은 날 함께 멈춰버립니다. 5년 전에도 한날에 멈춰 동시에 장만했는데 올해도 같은 날에 내 손에서 떠났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며칠 후 수영장 모터가 서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작년에도 애를 먹였는데 여름이 시작되는 오월 초입부터 수영장 가득 이끼꽃을 피워올리며 녹조라테를 만들더니 끝내 파업 선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던 것이었지요. 이층 에어컨이 뒤질세라 소동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심통이 났는지 뜨거운 바람을 뿜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떠나겠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기꺼이 보내드리고 새 놈으로 데려와야지요. 제발 여기까지만 하자고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웬걸요. 어느 오후, 작은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오늘 밥 못 해!” “왜?” “수도꼭지에서 물이 안 나와!” “오 마이 갓! 샐리야 도대체 너는 어디에 있는 거니?” 그날 저녁은 집 근처에서 월남 국수로 때워야 했습니다.
머피야 여기까지 할 거야? 난 괜찮다.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스스로 달래며 하루하루를 넘기는데 이상하다. 이게 무슨 냄새지. 서재에 앉기만 하면 콜콜 올라오는 이 기분 나쁜 냄새. 강아지처럼 코를 벌렁거리며 집안을 훑었지요. 하! 이건 또 뭐랍니까. 언제부턴가 게스트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 일어나면 끄떡끄떡 소리를 내며 앓는 소리를 내더니 변기를 고정하는 나사가 썩으면서 틈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그 밑에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별일을 다 겪는다고 투덜대다가도 머피란 녀석이 귀를 세우고 듣고 있을까 봐 그만둡니다. 그래 이것으로 끝일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머피란 놈은 머피의 법칙을 앞세우고 어디까지 나를 따라와야 직성이 풀릴까요. 어제는 샤워장에 서서 덜덜 떨다 나오고 말았습니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튀기듯 씻어야만 행복하게 고단했던 하루가 마무리 되는데 뜨거운 물까지 내게 허락되지 않나 봅니다. 결국 나는 머피란 녀석에게 또 항복을 해야 했습니다. “인제 그만하자. 아직도 충분하지 않은 거니?” 달래다가 협박하다가 이젠 두 손 다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또 또 입니다. “엄마, 수건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제대로 안 말렸나 보구나.” “아냐, 잘 말렸는데.” “여름에는 뽀송뽀송하게 말려야 해.” 드라이어를 두 번이나 돌려 말렸는데도 뽀송뽀송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또 또 또 머피란 녀석에게 세게 한 방 맞은 것이 분명하겠지요. 돌려차기에 이단옆차기, 삼단옆차기로도 부족해서 돌려차고 내리찍더니 휘모리장단차기로 혼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렇게 정신 못 차리게 몰아치고는 마지막 방점을 엄한 데서 찍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다 하다 그걸로는 부족했던지 마당 가에 있는 나무까지 앞세워 기어코 나의 멱살을 잡고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늘어진 가지를 쳐내고 마당을 깨끗하게 쓸고 나니 마음이 환해집니다. 모든 것이 몇 달 사이에 도미노 현상처럼 일어났습니다. 일어날 확률이 1%밖에 되지 않는 나쁜 사건들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들이었습니다. 고마운 것들이 임무를 마치고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마치 만개한 꽃들이 떨어지는 일처럼 단순한 일이었습니다. 큰일이라도 생긴 양, 집이 무너지는 이변이라도 벌어진 듯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저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졌을 뿐인데 머피의 법칙에 걸려들었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한동안 우울했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은 세상에서 모두 말끔하게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었으니 감사할 일입니다. 앞으로 몇 년은 일어날 확률이 1%밖에 되지 않는 좋은 일들이 계속되는 샐리의 법칙이 꽃눈처럼 문을 열게 될 거라 믿어 보렵니다.
“머피야, 너는 이제 그만 가라!”

이쯤이면 될까 망설일 일 아니다
어디쯤일까 되짚어보는 일 또한 아니다
물길을 휘잡는 잔뿌리들의 안간힘 쓰는 소리는
푸른 잎에 진한 운명의 손금까지 음각되는 본질을 위해
이제는 문을 열어야 한다
닫고 있어 벽이 되느니
열어 길이 되어야 한다

너의 생애를 바꾸어버릴 축전은 이미 배달되어
너의 얼굴은 이미 햇살에 용해된 꽃잎 아니던가
전부를 안겨줄 짧은 일격은 어디에도 없다
피었다 시들어 떨어진 꽃잎은 차라리 잊어라
언젠가
낯 붉어지는 냄새로 깊어진 너를 알아보게 되리니
너를 버려두고 갈 세월은 어디에도 없다
궁금한 생각들을 내놓아라

사랑일지도
깊은 슬픔일지도 모르지만
조리개를 맞추고 있다

김미희, (꽃눈에게)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B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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