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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엄마, 사랑애愛!”

Last updated: 5월 17, 2019 11: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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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두 해가 지났으니 이제 편해질 때가 되었으련만, 울렁증은 여전합니다. 살아생전 “난 꽃밭이 좋더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 소주를 챙기고는 월마트에 들러 평소에 엄마가 좋아하시던 가루분 한 통과 카네이션을 한 다발 샀습니다. 혼자 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언제나처럼 아이들도 대동합니다. 꼬불쳐놓았던 을지로 노가리도 잊지 않고 챙겼습니다. 옆에 계실 때 예쁜 꽃을 많이 안겨드릴걸. 오늘은 꽃다발만큼만 후회를 담아가기로 했습니다. 오후의 맑은 바람 자락을 자르며 엄마 무덤이 있는 꽃밭으로 달려갑니다. 어머니 날이라 그런지 넓은 잔디밭이 유난히 화사합니다. 따스한 5월 햇살이 먼저 내려와 평화롭게 놀고 있습니다.

가루분 뚜껑을 열어 엄마 무덤 위에 뿌립니다. 향긋한 분내가 콧등을 울립니다. “엄마, 잘 있었어?”하며 인사를 합니다. 아버지랑 잘 지내고 계시냐고. 지난주 내내 비가 왔고 갑자기 추웠다고. 비가 오는 날은 엄마가 더 보고 싶다고. 그런 날은 왜 그리 시장기가 도는지 모르겠다고. 아마 “밥은 먹었어?” 하며 엄마한테 걸려오던 전화가 목소리가 그리워 그러는가 보다고. 주절대다 보니 꽃다발만큼 담아온 후회는 바닥이 나고 애써 집에 두고 온 후회가 밀려옵니다. 무늬만 막내딸이지 꼭 사내 같아서 엄마한테 애교 섞은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았습니다.

엄마는 3주 동안 병원에 계시다 가셨습니다. 일 마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엄마한테 들러 큰오빠가 밤샘하러 올 때까지 엄마랑 둘이 있었지요. 병실 안에 들어서면서 오빠는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부터 했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하셔서 거의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어떻게 해야할 지. 매순간 안타깝고 당황스러웠던 나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오빠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이 나이 먹도록 뭐가 그리 쑥스러워 엄마한테조차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는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모릅니다. 매일 밤 남편은 내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말했어?”라고요. “아니, 오늘도 못 했어.”라고 답하고는 나 자신이 밉고 또 서러워 울다 지쳐 잠이 들곤 했습니다. 숙제였습니다. 그래서 연습을 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말문이 터졌습니다. “엄마, 사랑해!” 처음 그 말을 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왜 그리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엄마, 사랑해!” 하고는 한 잔 올렸습니다.
“엄마도 나 사랑하지?” 하며 내 잔도 채웠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술상 앞에서 사랑이라는 안주를 놓고 할 줄도 모르는 푸념 섞은 응석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미리 간다고 말씀이라도 해주지 아무 말도 못하고 가시니 좋으냐고 혀 짧은소리도 했습니다.
“엄마한테는 내가 꽃이었지?”
“이제 생각해보니 나한테도 엄마가 꽃이었어. 엄마만큼 이쁜 꽃이 없더라고. 그립고 보고 싶은 꽃이 없더라고. 그리고 엄마 미안해. 이제서 말하지만, 나 다 알고 있었어. 엄마는 막내딸을 제일 사랑했다는 거. 알고 있으면서 아들들, 오빠들만 챙긴다고 그냥 억지 부렸던 거야. 엄마 가시기 전에 이 말을 해드리지 못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 후련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아들들밖에 모른다고 쏘아붙이고 모진 소리를 했습니다. 몇 달 동안 찾아가기는커녕 전화도 안 했습니다. 가끔 걸려오는 전화도 볼멘소리로 답하는 게 다였지요. 하지만 다 알고 가셨겠지요. 사랑은 그런 거니까요.

사랑, 하고 안 하고는 S극과 N극의 차이지요. 또한, 알면서도 못하는 그 말. 하고 싶어도 못하는 말. 그 어느 말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그 말.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무작정 눈치채고 마는. 그냥 알아버리고 마는. 그게 바로 그 말이 지닌 힘이지요. 죽을 때까지 지병처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해야 하는 꾀병이지요. 때론 무심히 때론 필사적으로 모습을 드러내 조躁와 울鬱의 경계를 기어코 사수하고야 마는 불치병이지요.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마더’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비록 비틀어진 방식이었지만 아들을 지켜낸 엄마(김혜자 분)가 수감된 범인을 찾아가 “엄마 없어?”라고 묻고는 하염없이 처연하게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봉준호 감독은 프레임 속에, 프레임 속에 또 프레임 속에 넣어 묘사를 했습니다. 마치 이것은 끝나지 않을, 대를 이어 지켜진, 지켜질 엄마의 사랑을 프레임 속에 가두어놓은 것 같아 나도 덩달아 소리 내 울고 말았습니다. “엄마 없어?”라고 묻던 그 얼굴이 떠올라 또 눈물이 납니다. “아 그렇지, 이제 지켜줄 엄마가 내게도 없지.”

나는 여전히 서툽니다. 사랑이라는 말 앞에서 수줍어 주춤거립니다. 가슴이 일렁이고 귓불이 달아오릅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그 말 앞에서 서성이지만은 않으렵니다. 무엇이든 다 낫게 하는 묘약, 내 사랑의 묘약도 호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아껴두지 않으렵니다. “사랑해!” 이 말은 아무리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관계를 이어주는 마음의 체온이니까요. *

 

비 오는 오후에
걸려온 전화

밥은 먹었어?
낡은 우산 펴는 소리다

거친 아흔 해를 받쳐낸 늙은 우산
접고 있던 주름살을 펴고
은이빨 반짝이리라

부러진 살을 타고 내리는 빗물이
처진 어깨를 토닥거린다

젖는다

김미희, (낡은 우산)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B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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