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지방선거 앞두고 또 현금살포…견제 없는 권력이 완성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견제와 균형이다. 어느 한 세력이 모든 권력을 독점할 때,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실질은 사라진다. 다수결이 곧 민주주의라는 착각 속에서, 절차와 견제는 ‘걸림돌’로 취급되기 시작한다. 선출된 권력이라도 무한정 허용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 정치가 그 위험한 경계선에 서 있다.
출발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자충수였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는 헌정 질서를 뒤흔든 어처구니없는 사태였다. 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려 했던 그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고, 한국 민주주의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계엄은 불과 몇 시간 만에 국회의 해제 요구로 철회됐지만, 그 파장은 오래갔다. 탄핵 정국이 이어졌고, 보수 진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열에 빠졌다. 수십 년간 쌓아온 보수의 정치적 자산이 단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 내렸다.
그 혼란이 만들어준 반사이익을 가장 크게 챙긴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사법 리스크라는 치명적 약점도, 진행 중이던 재판도 선거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위기가 팬덤을 결집시켰고, ‘피해자 서사’가 동정 여론을 끌어모았다. 정치적 약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전환되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그 힘이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계엄이라는 전임자의 실책이 이재명 정부 탄생의 가장 큰 산파 역할을 한 셈이다.
문제는 집권 이후다.
이재명 정부는 압도적 국회 다수 의석을 손에 쥔 채 출범했다. 입법 독주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야당이 제동을 걸 틈도 없이 굵직한 법안들이 줄줄이 처리됐다. 전 국민 지원금이 전격 집행됐고,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사법 체계 전반의 개편이 입법 단계까지 밀어붙여졌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 권한을 여러 기관에 나누는 작업이 숨 가쁘게 진행됐다. 국회 다수를 등에 업은 입법 권력이 사실상 국정 전반을 주도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집권 전까지 여러 건의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사법 개편이 그 리스크를 다루던 기존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이것은 단순한 제도 개혁이 아니다. 자신을 옥죄던 사법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내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개혁의 명분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그 수혜자가 개혁을 주도하는 당사자라면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법부 독립성에 대한 우려는 단순한 야당의 반발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에 관한 문제다.
재정 운용은 어떤가. 집권 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현금성 지원금이 이미 한 차례 집행됐다. 그리고 이제 중동 이란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를 명분으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이 또다시 편성되고 있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현금성 지원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시점이 예사롭지 않다. 6월 지방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둔 지금이다. 국제 유가 불안이라는 실제 위기 상황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서민 가계에 타격을 준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위기 대응의 방식이 하필 선거 직전, 또다시 전 국민 현금 살포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교한 취약계층 지원이 아닌 광범위한 현금 배포는 재정 효율성보다 정치적 효과를 우선한 결정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위기가 생길 때마다 지갑을 여는 것이 이 정부의 패턴이 되고 있다. 지원금은 표로 돌아오고, 그 표는 다음 지출의 명분이 된다. 이 순환이 반복될수록 재정 건전성은 뒷전으로 밀린다. 한국의 국가 채무는 이미 1,100조 원을 넘어섰다. 지금 뿌려지는 돈의 청구서는 결국 우리 자녀 세대가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 포퓰리즘의 달콤함 뒤에 남는 것은 언제나 다음 세대의 몫이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현금 공약,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추경 카드. 이것이 진정한 민생 정책인지, 아니면 표를 사는 정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제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역 민심의 표현이 아니다. 만약 여당이 주요 광역단체장까지 석권한다면, 행정부·입법부·지방권력이 하나의 축으로 완전히 정렬되는 구조가 완성된다. 견제할 야당은 없고, 제동을 걸 사법부는 개편 중이며, 언론 환경도 우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권력까지 같은 깃발 아래 놓이는 순간, 이 나라에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역사적으로 그런 구조가 만들어진 사회에서 권력은 자정 능력을 잃었다. 그 결말이 어땠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선거 직전 뿌려지는 현금이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는 수단으로 작동한다면, 그 선거 결과를 과연 순수한 민의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을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권력은 언제나 명분 속에서 출발한다. 사법 개혁도, 민생 지원도, 그 자체로는 반박하기 어려운 이름들이다. 그러나 모든 권력이 한 방향으로 정렬될 때, 그 명분은 누구도 검증하지 못하는 독백이 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어느 진영에서 나오든 위험하다. 그것이 역사가 반복해서 가르쳐준 교훈이다. 윤석열의 계엄이 잘못이었듯, 그 반작용으로 탄생한 권력도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
6월 지방선거, 한국 유권자들의 선택이 어느 때보다 무겁다.



아제 할일 없으면 발닦고 주무세요. 헛소리 지껄이지 마시고 당신이 말하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는 모두 다 검찰이 조작한 거라는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지 않습니까?괜히 대한민국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보수, 사실은 친일 잔존 수구 세력들이 하는 망언이나 퍼나르지 마시고 고만 쉬세요.
밝혀진 조작이 조작일수도… 의견만 씁시다.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님의 의견만 주장하면 될 것을… 발을 닦으라는 등 헛소리 지껄이지 말라는 등.. 오바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