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둔화와 견고한 고용 지표에도 관세 인상 및 서비스 물가 반등이 변수로 부상

국내 경제가 연착륙이라는 목표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오며 장기화된 고물가와 고금리에 지친 시장에 희망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지표들을 살펴보면, 인플레이션은 수치상 눈에 띄게 둔화되었고, 실업률은 역사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경제 성장 또한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가파른 금리 인상의 여파로 인해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결과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상황은 매우 의미 있는 변화이자 경제 정책의 승리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며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주요 지표들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최종 목표로 삼는 물가 상승률 2% 안착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경기 둔화 없이 물가를 안정시키는 이른바 ‘연착륙’이 현실화 될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착시 현상에 그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2026년 초 현재 경제계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확실히 안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나,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마지막 고비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물가 둔화 흐름 속 다시 꿈틀대는 제품 가격
지난 2월 13일 노동부가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는 전년 대비 2.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1년 3월 이후 약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로, 한때 7%를 상회하며 가계를 압박했던 고물가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가전제품과 중고차 등 상품 가격의 안정세가 전체적인 물가 상승을 억제했다. 하지만 연준이 정책 결정의 핵심 지표로 삼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여전히 3% 근처에서 강한 저항선을 형성하고 있다. 물가 상승폭의 감소 속도가 당초 기대보다 완만해지면서 2% 목표치까지의 ‘마지막 구간(Last Mile)’이 예상보다 험난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올해 초부터 기업들은 다시 제품 가격을 올리며 가격 인상 랠리를 재개하고 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 Co.)와 맥코믹(McCormick & Co.) 등 주요 제조사들은 관세 인상과 누적된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청바지, 향신료, 산업용 제품 등의 가격을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알베르토 카발로(Alberto Cavallo) 교수의 실시간 데이터에 따르면, 수입 상품의 가격은 지난해 11월 말 저점을 찍은 이후 현재까지 약 2.3% 상승했다.
◈연준 금리 정책의 딜레마
연준 내부에서도 향후 금리 경로를 놓고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공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위원들 사이에서는 ‘성급한 승리 선언’이 물가 상승 재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계심이 가득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2%를 향해 지속 가능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더 큰 확신이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재차 강조했다.
반면 일부 완화론자들은 실물 경제가 고금리의 누적된 압박을 견디는 데 한계가 오고 있다며, 침체를 막기 위한 선제적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결정의 불확실성은 금융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핵심 요인이 된다. 특히 2026년 5월로 예정된 연준 의장의 임기 만료와 맞물려 정책 기조의 연속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금리를 너무 일찍 내리면 물가가 다시 튀어 오르는 사태를 겪을 수 있고, 반대로 너무 늦게 내리면 불필요한 경기 침체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결국 물가 안착을 확인하려는 연준과 금리 인하를 고대하는 시장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고용 시장, 숨겨진 둔화의 신호
고용 지표 역시 표면적으로는 연착륙의 강력한 증거가 되고 있다. 2월 11일 발표된 1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은 13만 명 증가했으며, 실업률은 4.3%로 안정적인 범위를 유지했다. 대규모 해고 사태 없이 노동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은 경제의 기초 체력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세부 통계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최근 발표된 2025년 연간 고용 수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신규 고용은 실제로는 약 1만 5천 명 수준에 그쳤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당초 발표되었던 수치보다 크게 하향 조정된 것으로, 고용 시장의 열기가 대중의 인식보다 훨씬 빠르게 식어왔음을 의미한다.
현재의 긍정적인 고용시장의 흐름은 신규 채용의 확대보다는 기업들이 숙련된 인력을 잃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대응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특히 고용 성장이 의료와 공공 서비스 분야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점은 커다란 불안 요소다. 기술직이나 제조업, 소매업 분야에서는 오히려 신규 채용이 위축되는 경향이 뚜렷하며, 이는 고용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은 올라간 최저임금과 건강보험료 부담을 호소하며, 더 이상 비용을 흡수하기 어려운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인 동포 경제의 현주소
이러한 거시 경제의 흐름은 텍사스 지역 한인 사회와 자영업자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달라스 인근의 상권은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견조한 유동 인구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원가 상승과 인건비 압박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동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금융 비용의 향방이다. 연착륙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면 연준은 하반기부터 점진적인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는 주택 구입을 계획 중인 가정이나 사업 확장을 위해 융자가 필요한 자영업자들에게 단비가 될 전망이다.
다만 물가가 확실히 안착했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고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이므로 당분간은 이자 부담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사이먼 윤 부동산 대표는 “여전히 셀러와 바이어 모두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지난 2년동안 높은 금리로 인해 미뤄왔던 수요층이 천천히 시장으로 나올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둘째, 사업 운영 원가 부담이다. 관세 정책 변화로 인한 수입 물품의 원가 상승은 식당과 마켓 등 유통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지표상 물가는 안정되고 있다지만, 실제 도매 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어서 마진율 확보를 위한 경영 효율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특히 식자재 가격의 불확실성은 한인 요식업계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한인 마트 업계 관계자 L 상무는 “정부 통계상 물가 상승률은 높지 않다고 나오지만, 현장에서 고객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훨씬 높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밝혔었다.
◈과거 사례를 통해 본 연착륙의 난제
과거의 경험은 연착륙이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인지 잘 보여준다.
1990년대 초반 앨런 그린스펀 의장 시절의 성공적인 연착륙 사례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사이클은 결국 경기 침체로 마감되었다.
특히 1970년대의 ‘스탑 앤 고(Stop-and-Go)’ 정책 실패는 물가를 확실히 잡지 못한 채 금리를 내렸을 때 어떤 재앙이 닥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반면교사다.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의 안정세에 취하기보다,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지연된 충격’에 대비하는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들은 이미 비용 절감을 위해 공급업체와 재협상을 벌이거나 비수익 품목을 과감히 정리하는 등 생존 전략을 짜고 있다.
우리 동포 사회 역시 이러한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보수적인 자금 운용과 함께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기 회복의 온기가 모든 경제 주체에게 고루 퍼질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광진 기자 ⓒ K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