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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고대진] 고구마 귀신

Last updated: 1월 17, 2026 12: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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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오늘같이 비가 부슬부슬 오는 저녁 무렵이었어. 홀로 건넛마을 ‘조수’로 가려고 오솔길을 걸어가던 우리 동네 아주머니가 앞에서 걷고 있는 흰옷을 입은 여자를 보고 같이 가려고 걸음을 빨리해서 쫓아갔어. 조금만 더 가서 길모퉁이를 돌면 거의 따라잡을 만한데 막상 모퉁이에 와서 보면 앞에 가던 사람은 벌써 한참 더 앞에 가고 있었던 거야. 또 따라가면서 “아주망 고치 가게 마씨(아주머니 같이 가요)” 하고 발걸음을 빠르게 하면서 앞에 있는 모퉁이까지 가면 그 사람은 다시 한참을 더 앞에 벌써 가 있는 것이었지. 한참을 따라가다 생각했어. 비가 오는 날 저렇게 빨리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나 하고 보니 치마가 땅에 닿지도 않고 미끄러지듯 가는 것이야. 갑자기 머리털이 쭈뼛쭈뼛 솟아오르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거라. 옆을 보니 성황당 근처인 거야. 아이고 귀신이구나 하고 보니 앞서가던 사람은 보이지 않고 비만 추적추적 오는 거라. 그 아주망 그날로 돌아와 비실비실 앓아 누웠당 그냥 죽어부렀져.“

사촌 형의 이야기를 듣던 우리는 모두 이불 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 무서워 오줌도 참다가 밥 먹으라고 야단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부엌으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어릴 때 비가 오면 방에 모여 이불 안에서 사촌 형이나 누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로 위 이야기 같은 귀신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무서워하면서도 재미있어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것을 보니 굉장히 감동을 하였던 것 같다. 이야기 끝이 너무 허무해서 우리는 다시 이야기해달라고 졸랐다. “그 아주망 진짜 죽어부런?” 하면 사촌 형의 이야기는 ”어~ 진짜는 그 아주망 집에 돌아온 뒤 너무 아파서 심방(무당)을 찾아가 물었더니 굿을 해야 한다고 했어. 귀신이 사라진 곳에 가서 굿을 하는데 심방(무당)에게도 흰 옷을 입은 여자가 나타나 앞을 가더라는 거야. 손에 고구마를 들고서 빠른 걸음을 걷는 여자에게 다가가서 ”어디 감수광“ 했더니 아래서 토벌대가 오고 있는데, 가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하면서 ”빨리 가서 아이에게 고구마라도 먹이고 산에 올라야 하는데…“라면서 앞을 가더라는 거야. 아니 무슨 토벌대? 하고 물어보는데 없어져 버린 거라.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근처에서 4.3 당시 토벌대를 피해 도망가다가 총에 맞아 죽은 아주머니가 있었다는 거라. 돌담에 묻은 피가 그때까지도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지. 죽은 지 얼마 뒤에 그 마을에 있는 산자락에서 토벌대를 피해 동굴 속에 숨었던 아이들이 굶어서 죽어있는 걸 발견했고. 그래서 그 산자락에서는 아직도 비가 오면 ‘배고파 배고파’하며 아이들 우는 소리가 들린대.” 

아직도 잊지 않고 추적추적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이런 이야기는 아마 4.3 사건 때 제주도에서 벌어진 참혹한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던 일들을 귀신 이야기로 바꾸어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을마다 기억하고 있던 진실을 말하면 빨갱이로 몰려 죽을까 봐 겁나고 또 들어주는 사람도 전해줄 사람도 없으니 그 원한이 어디로 갈 수 있었을까? 살아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서도 굶는 아이에게 고구마를 먹이겠다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다시 창조되어 어린아이들의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4.3 당시 희생된 열 살 미만의 아이들의 수가 무려 700명이 된다니 마을마다 귀신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 같다.


아직도 생각나는 첫 번째 이야기는 줄거리가 우리의 인생살이와 비슷하여서 잊히지 않고 생각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귀신을 쫓아가던 동네 아주머니의 경험과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해보았기 때문이다. 귀신은 아니지만, 앞에 보이는 것을 부지런히 쫓아가다가 겨우 따라잡을 만하면 그것은 벌써 한참 앞에 가 있고 또 겨우 따라잡을 무렵이 되면 앞에 가던 그것은 더 앞에 가 있고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운동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거나 공부하거나 뭘 하든지 이런 경험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골프를 하는 동생의 말에 의하면 골프를 시작하고 점수를 줄이려고 열심히 운동하다 보면 거의 목표하는 점수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점수라는 것이 그 자리에 있지 않고 한참 멀리 가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쫓아왔는데 그건 어느새 모퉁이를 돌아 저만치 가고 있는 거다. 갑자기 내가 뭐에 홀린 것 아닐까 하면서 정신을 차려야지 하고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쫓아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어느새 나이가 70이 넘어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아직도 잡을 수 없는 것을 계속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산 사람을 위한 굿이라도 한번 해야 할 것 같다는 동생의 말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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