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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수필] 소울 푸드, 닭볶음탕

Last updated: 2월 23, 2024 4: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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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이 나왔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백인 아이들 틈에서 까만 머리 동그란 얼굴의 아들은 멀리서도 잘 보였다. 

무거운 백팩을 맨 한쪽 어깨가 오늘따라 더 처져 보였다.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차로 곧장 걸어왔다. 낯빛이 어두웠다. 마음에 물둘레가 이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학교 잘 다녀왔어?”

  조수석 문을 여는 아이를 보며 일부러 환하게 웃어 보였다.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이는 느긋한 성격에 참을성이 많은 편이고 여간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언가 물어보면 대답은 거의 셋 중 하나다. Yes와 No 아니면 Maybe. 자세한 설명을 하는 일은 좀처럼 드물다. 그런 대화엔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큰아들 때부터 단련되어 이제는 그것도 익숙하다. 

찬찬히 물어보니 수학 선생님의 독특한 채점 방식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듯했다. 그 바람에 상위로 앞서 있던 자기가 억울하게 뒤처지게 된 모양이었다. 선생님 재량에 맡겨야 할 부분이었다. 속상한 아들을 격려하고 싶을 때 항상 하는 말을 건넸다.

  “오늘 저녁때 맛있는 거 먹자! 삼겹살 먹을까?”

  입가가 슬쩍 올라가며 고개를 끄덕였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저녁 먹을 즈음이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큰아들은 타주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방학 중엔 인턴십을 나가니 함께 있는 날이 일 년에 며칠 되지 않는다. 

아들이 돌아오는 날에는 음식 준비로 마음이 분주하다. 그렇다고 요리를 잘하는 엄마는 아니다. 사실 요리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도 아이가 집에 도착하면 우선 밥상부터 차려준다. 

오랜 시간 타지에서 지내며 헛헛했을 뱃속을 따뜻한 엄마 음식으로 채워주고 싶어서다. 

  큰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고추장 두부조림이다. 두꺼운 세라믹 뚝배기에 뚝뚝 썰어 놓은 두부를 담는다. 두부에 매콤하고 고소한 고추장 양념을 바르고 그 위에 두부를 한 칸 더 올린다. 

그렇게 양념을 발라가며 두부를 쌓은 다음 뚜껑을 닫고 은근한 불로 한 시간쯤 졸인다. 조리법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만들기는 까다롭다. 

불을 조금만 세게 올려도 바닥에 있는 두부가 금세 타서 탄내가 전체에 배어 버리기 때문이다. 끓고 있는 양념을 두부에 끼얹어 가며 정성스럽게 졸이다 보면 문득 배우는 게 있다. 연약한 두부의 사정을 봐가며 불 조절을 하고 따뜻한 국물로 감싸주어야 전체에 제맛이 드는 것처럼 자식 사랑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리라. 

음식으로 마음을 전하는 건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다. 

부모님이 다툰 다음 날 아침상에 콩나물죽이 오르면 그 싸움은 어머니가 이긴 것이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콩나물죽으로 어머니는 화해의 손을 내미셨고 아버지는 맛있게 드시는 것으로 말없이 그 손을 잡았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해외 장거리 비행을 다녀오면 어머니는 항상 닭볶음탕을 해놓고 기다리셨다. 

내가 김포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분주히 일할 때 어머니는 시장에서 싱싱한 닭을 고르고 계셨을 것이다. 

해외 스테이션에 머물다 밤샘 비행을 마치고 지쳐 돌아올 때면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타국에서 낯선 팀원들과 며칠을 지낸 데다 비행기에서 힘껏 에너지를 써버리고 난 후의 탈진이었을 것이다. 

도착이 이른 아침이건 늦은 밤이건 현관에 들어서면 매콤한 닭볶음탕 냄새가 온 집안에 퍼져 팡파르처럼 나를 반겨 주었다. 그것은 반복하여 먹어도 질리는 법 없이 마음까지 배부르게 채워주었다. 

식탁에 함께 앉은 어머니가 맛나게 뼈를 발라 먹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그 비행은 해피엔딩이 되었다. 

이제 어머니는 여든이 훌쩍 넘어 기력이 약해졌지만, 내가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열무김치를 담고 머위 들깨탕을 준비하신다. 

여름에 찾아가니 메뉴가 그렇게 바뀌었다. 자식을 키워보니 정성을 다해 차린 밥상은 음식 그 이상임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한 끼 밥상으로 드러난 마음이 말보다 더 힘이 있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가족을 어루만지고 따뜻하게 이야기를 건넨다. 

   엄마가 구워 준 삼겹살을 배불리 먹은 아들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 

숙제한다고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내일은 닭볶음탕을 해 먹어야겠다. 고춧가루 양념이 빨갛게 끓어오르고 달큰한 매운내가 온 집안에 진동하면 그리운 어머니가 떠오를 것이다. 

  우리 아들의 소울 푸드는 고추장 두부조림이 될까. 어머니만큼만 나도 해냈으면 좋겠다. 

백경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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