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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2025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Last updated: 11월 24, 2025 2: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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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역사와 전통의 이상 문학상 주관사가 바뀌고 난 뒤 출간된 2025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나는 지난 6월 서울 방문길에 사왔다. 사실 내가 사보고 싶은 책은 따로 있었는데, 숙소 부근에 있던 양재동 동네서점엘 갔더니, 정말이지 서적이 별로 없었다.그 서점의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책은 모두 어린이와 수험생들을 위한 학습지와 문제지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젊은 서점 주인에게 “왜 이렇게 책이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은 요즘은 책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주문만 받는다고 하였다. 나는 강남 한복판에 있는 그 수많은 성형외과, 미용실, 카페, 식당, 명품옷가게를 잠시 떠올렸다. 할 수 없이 나는 그 서점에 있었던 유일한 소설집과 시집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정호승시인의 <슬픔이 택배로 왔다> 두 권을 씁쓸한 마음으로 구입했다. 주인은 웃으며, 서점을 하다 망한 친구가 줬다며, 다른 서점 상호가 찍힌 백에 그 책들을 넣어 주었다.  


2025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젊은 신예작가 예소연이 쓴 < 그 개와 혁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 당선작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한국문단의 세대교체가 이미 이루어졌고, 흐름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86세대 민주화운동 출신 아버지를 둔 주인공은 아버지를 태수씨라고 부르며, 아버지세대가 지니고있는 이념과 혁명의 모순을 유머와 풍자로 서술하며, 진짜 혁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아버지의 유언으로 개를 장례식장에 데리고 오는데, 이는 혁명은 거룩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으며, 개와 같이 마구 뛰어놀며 다정한 온기를 서로 나누는 일이라는 걸 말해준다. 

작가 예소연은 문학적 자서전에서 늘 삶에 드리워진 작은 우울의 근원에 대해 깊이 고심해왔다고 말한다. 작가는 또한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삶에 대해서 그 이해할 수 없음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 존재했던 분명한 선택과 의지, 체념, 미약한 사랑 등이 소설이 된다고 했다. 예소연은 역대 이상문학상 수상자 중 가장 젊은 작가이다. 그래서인지 거침없는 문장과 빠른 전개가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금방 빠져들게 한다.


우수상을 받는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는 한국 계층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주인공과 피터는 서울의 한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금호동 달동네 출신인 반면, 피터는 대치동 출신으로 체육시간에 롤렉스 시계를 잃어버려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금수저이다. 둘은 20년 뒤 뉴욕에서 만나는데, 피터는 예전에 말한 장래희망처럼 맨하탄 대형로펌의 국제변호사가 되어 있었고, 주인공은 소설가로 아직도 공부를 하고있는 중이다. 허리케인이 와서 주인공의 아파트가 물에 잠기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피터는 예상대로 펜트하우스에 살면서 저세상 사람인듯한 미모의 와이프와 뉴욕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저녁으로 랍스타를 먹으면서 주인공은 여전히 롤렉스를 차고 있는 피터의 팔목을 보면서, 그제야 피터는 롤렉스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잃어버린다는 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뜻이고,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건 잃어버려도 괜찮다는 뜻인 것이다. 피터는 자신과 달리 영원히 롤렉스를 찰 수 있는 계층인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자 주인공은 갑자기 버터가 들어간 랍스타 맛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세월이 흘러도 좁혀질 수 없는 미묘한 계층 간의 간극을 작가는 담담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그려나간다. 소설 말미 주인공은 미주 한인 신문 사이트에서 피터 초이라는 변호사가 60억원의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기사를 읽는다. 기사에 사진은 없기에 나는 내가 아는 피터 초이 일리가 없다고 애써 결론을 내린다. 제목 허리케인 나이트는 혼돈과 의심, 욕망을 상징한다.


김기태의 <일렉트릭 픽션>도 흥미롭다. 조그만 중소기업의 계약직으로 일하는 주인공은 8년째 재계약을 하고 있다. 직원들은 그를 볼 때 실무사님이라고 부르지만, 그가 없을 때는 “있잖아, 그 사무보조” 라고 칭한다. 회사 창립일 때 직원 모두 양복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지만, 그가 없는 것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는 그림자처럼 익명으로 사는데 익숙해있다. 또한 소시민으로서 자신의 처지에 맞게 처신하는 법도 잘 알고 있다. 소설 서두에 그는 ‘사람은 전기로 산다’ 라고 말한다. 그 전기, 곧 에너지를 찾기 위해 그는 핀란드어를 배우고 에어프라이어 요리, 무협드라마 시청, 화엄경 필사를 시도하다가 종내 전자 기타를 배우기로 종착한다. 


흔히 소설을 그 사회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요즈음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2025년 대한민국이 보인다. 그야말로 문화강국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나라는 소설 분야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을 시작으로 황금기를 맞고 있다. 자기 감정이나 의견에 솔직하고 감성적이고, 문학적 스타일이 뚜렷한 젊은 작가들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해나의 <혼모노> 나 이희주의 <사과와 링고>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손보미< 폭우>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푸르렀던 칸나잎이 누렇게 시들어있다. 계절은 어느덧 겨울을 향하여 가고 있다. 간절한 혁명들이 찬바람에 실려 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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