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캠핑을 자주 가게 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은 파이오니아 후손들 답게, 미국엔 캠핑족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캠핑산업은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호황을 이루었다. 당시 미국에 있는 캠핑장, 특히 그랜드 캐넌이나 요세미티 처럼 내셔널 캠핑장 같은 경우 몇 달전에 예약을 해야, 겨우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캠핑카도 부르는 것이 값이었고, 원하는 모델은 몇 달을 기다려야 살 수 있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팬데믹 동안 캠핑카로 여행을 떠나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시기에 은퇴한 시니어나 젊은 층 할 것없이 각자 모터홈이나 밴이나 트럭을 개조한 자기만의 캠핑카로 전 세계를 누비거나 전국을 여행하는 유튜버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미국과 달리 조금만 달려도 산이나 바다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캠핑촌처럼 보였다. 가다가 바다를 만나면 낚시를 하고, 농촌에선 일손을 돕기도 하면서, 경치가 좋은 곳이면 아무 곳에나 머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유행이 한 풀 꺽여서 문닫는 캠핑장들이 줄을 잇고, 비싸게 산 캠핑용품들은 당근마켓에서도 인기가 없다고 하니, 너무 이른 격세지감인 것 같다.
캠핑카를 사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내셔날 파크와 스테이트 파크 패스를 구입하는 일이었다. 내셔널 파크 같은 경우 한 번 구입하면 평생 쓸 수 있는 것이어서 퍽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계획은 가까운 주립공원부터 내셔널 파크까지 두루 다녀볼 생각이지만, 미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넓고 기름값도 들쑥날쑥해서, 다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왠만한 내셔널 파크는 거의 다녀왔지만, 그때는 주로 단체관광이었다. 장시간을 달려 가이드가 허락한 시간내에서 주마간산식으로 점 만 찍고 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캠핑카로 다니면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천천히 구석구석을 더 가볼 수 있을 것이다. 별들이 총총한 곳이나, 오로라를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조금 더 머물면서 말이다.
지난 노동절 휴일엔 오스틴 부근 매키니 폴 주립공원을 갔다. 예상대로 캠핑 사이트는 이미 예약이 꽉 차있어서, 트레일 하이킹만 하고 왔다. 캠핑카가 좋은 점은 걷다가 힘들면 들어와서 좀 쉬다가 다시 하이킹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간식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있고, 나이들면 화장실을 자주가게 되는데, 그점도 편하다. 이 주립공원은 자연 풀장이 있어서 여름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인데, 올해는 계속된 가뭄으로 인해 물이 별로 없었다. 다음날은 다행히 예약이 가능한 바스타드 주립공원으로 향했다. 몇 년전 화재와 홍수로 캠핑왔던 학생들 인명피해가 있던 곳인데, 공원전체에 소나무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화재로 인해 오래된 소나무 군락이 군데군데 불에 타서 형체만 남은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하이킹을 하면서 어린 솔잎 몇 개를 손에 쥐고 향내를 맡으니 솔 특유의 향기가 참 좋다. 어떤 향수도 이 솔향만 못할 것 같다. 산이 없는 텍사스에 오래살다 보니, 산길 비슷한 길을 만나게 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 공원의 트레일 코스가 그랬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인데, 사방이 소나무요, 저 멀리 보이는 건 푸른하늘에 둥실 떠 있는 무심한 흰구름 뿐이다.
미국 캠핑장은 참 조용하다. 규제의 나라 답게,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참 많다. 거기에 올여름은 극심한 건조함과 가뭄으로 대부분의 캠핑장은 모닥불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긴 이 주립공원은 어딜 가나 솔잎이 수북히 깔려있어, 천둥만 쳐도 불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이 솔잎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 강진 큰댁의 정제를 떠올렸다. 큰어머니는 큰 가마솥에 국이나 물을 끓일 때 마른 솔잎을 아궁이 불쏘시개로 썼는데, 나는 한번 불이 붙으면 불꽃이 우르르 치솟는 모습이 재미있어, 마른 솔잎를 아궁이에 자꾸 집어 넣다가 야단을 맞았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남도로 내려갈수록 소나무가 많은데, 텍사스도 그런 것 같다. 얼마 전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도 유명한 소나무들이 등장한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시름을 달랬다는 영월 청령포 관음송과 , 가지가 아래로 낮게 드리워져 마치 단종 어소를 향해 예를 갖추고 절을 하는 듯한 모습을 지녔다는 충절의 엄흥도 소나무가 그것이다.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언젠가부터 우리는 하늘 한번 쳐다볼 시간이 없고, 숲속을 걸을 여유조차도 없다. 빅테이크가 만든 세상에서 그들의 부속품처럼 종일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소셜 미디어를 기웃거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나는 없고, 그저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것들에 의해 휘둘리며 살아간다. 디지털 아니 AI를 모르면 바보요, 아날로그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디지털을 몰랐던 예전 세대들이 과연 우리보다 더 불행했는지는 의문이다.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 면에서 당분간 나는 캠핑 예찬론자가 되기로 했다.언제 변덕이 생겨 마음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드디어 텍사스에도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