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여행 마지막 날, 인천공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체크인을 하고 검색대쪽으로 가려는데, 가이드가 급히 나를 쫓아왔다. 그러더니 가이드는 내게 은근한 목소리로 고객님만 주는 거라며, 보이차 캡슐이 들어있는 작은 캔을 내밀었다. 더불어 미국 잘 돌아가시라는 인사와 함께, 여행사사이트 평 좀 잘해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나는 얼떨떨결에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하고, 이 친절한 조선족 가이드에게 남은 위안화를 팁으로 주었다. 그러자 가이드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는 시늉을 하더니, 다음번 중국 여행에도 꼭 자기를 찾아 달라며, 활짝 웃으며 사라졌다.
첫날 자신을 오은옥이라고 소개한 이 상하이 여행가이드는 가이드 경력 십 오년차, 조선족 기혼 여성이다. 통통한 몸매에 금복주처럼 늘 웃음을 달고 다니는데, 자칭 상하이 여행가이드 중 본인이 제일 인기 있는 가이드란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복받은 분들이냐며, 자화자찬도 서슴치 않았다. 그녀는 확실히 여느 가이드들과는 달랐다. 친절하고 센스가 있었으며, 친화력도 뛰어나 일행 모두와 금방 친해졌고, 무엇보다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다. 식사때면 가끔 맥주를 쏘는 기분파이기도 했다.
그녀는 흑룡강성 조선족 출신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부모는 돈 벌러 대도시로 나가고, 조부모 아래서 성장했는데, 당시 할아버지에게서 야단맞고 배운 조선말 덕분에 여행가이드가 될 수 있었다며, 감격어린 표정을 짓곤 했다 이 천년대 이후 중국 여행이 붐을 이루면서, 가이드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 우연히 상하이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운좋게 천직을 얻은 것이다. 그 후 관광온 한인들과의 인연으로 친정 식구와 남편이 모두 한국에 나가서 살게 되었고, 열심히 일한 결과, 경기도에 사둔 아파트도 한 채 있다고 자랑했다. 그녀는 모든 조선족들의 소망은 코리안 드림을 이루는 것이라며, 자신도 아들이 대학 입학을 하고 나면 한국으로 나가 살 계획이라고 했다.
나는 그간 드라마나 뉴스 등을 통해 조선족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가까이서 조선족과 말을 나누어 본 것은 몇 년 전 어머니가 계셨던 요양원 간병인과 이 가이드가 처음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북한식 억양이 들어간 우리말을 쓰며, 예전 시절 동네에서 흔히 보는 수더분한 아줌마나 고모, 이모 인상인데, 뭔지 모르게 오랜 디아스포라를 연상시키는 그들 특유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부자가 된 조국에 잘 섞이는 것 같으면서도, 물 위에 뜬 기름 같기도 한데 그건 아마도 오랜 국외자 생활의 결과일 것이다.
중국 조선족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한중 수교가 이후부터인데, 그 후 이런저런 이유로 코리안 드림을 찾아 넘어온 조선족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60-70만을 헤아리고, 지금은 중국내 조선족의 약 40프로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들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때 삶의 터전을 찾아 만주나 중국으로 건너가 정착한 한인들의 후손이니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우리와 뿌리와 같다.
하지만,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가 썩 밝은 것만도 아니다.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이 한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거나, 인신매매등 흉악범죄에 연루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소수민족 학교를 졸업한 경우 중국내에서 명문 대학을 가기란 하늘의 별따기인데, 이유는 중국의 사교육을 시킬만한 재정적 여력이 없을뿐더러, 필수과목 중 하나인 어문(중국어 및 작문) 실력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사실 중국 공산당은 문맹률을 퇴치하기 위해 복잡한 한자를 간소화한 <간자체>를 1950년대 중반부터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때 배운 그 한자와는 글씨체가 전혀 다른 한자이다. 하여 우리는 중국 여행을 다니면서, 예상과 달리 간판이나 표지를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우리가 배운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아무튼 한민족의 타고난 근성인 근면과 성실, 억척스러움, 자식에 대한 교육열을 가이드 은옥씨도 타고난 듯하다. 명절 때 친정식구와 남편을 만나러 한국을 나가도, 짬을 내어 아는 사장님 고깃집에서 알바를 하고 온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놀면 뭐해요, 한 이삼일 일 하면 비행기 값은 건지는데요.”
은옥씨는 일행 중 유일하게 미국에서 간 우리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유독 이런 질문을 자주했다.
“미국은 살기 어때요, 정말 살기 좋은 나라겠지요?”
나는 그녀가 준 보이차 캡슐을 물병에 타며, 나는 정말 살기 좋은 나라에서, 잘 살고 있는가를 반문해본다. 그녀의 <코리안 드림>처럼 우리의 <아메리칸 드림> 역시 안녕한지를 묻고 또 물어본다. 잦은 비바람으로 봄꽃이 지고, 후덥지근한 열기 가득한 텍사스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