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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테헤란로를 기억하며 테헤란을 생각하다

KTN Editor
Last updated: 1월 30, 2026 5: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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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3월, 필자가 다니던 국민학교가 서초동으로 이전했다. 지금의 강남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당시 서초동은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도 그 즈음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을 했고, 말죽거리라 불리던 양재 사거리는 서울의 끝자락이었다. 등하굣길에 마주치던 지명들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고속버스터미널, 말죽거리, 그리고 테헤란로.

그 테헤란로가 지금은 서울, 그것도 강남의 심장부가 됐다. 대기업 본사와 금융기관, IT 기업들이 밀집한 공간이 됐고, 한국 경제의 한 단면을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이름만 놓고 보면 먼 중동의 도시 테헤란에서 따온 도로가, 반세기도 안 돼 한국 자본주의의 중심이 된 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테헤란이라는 이름이 지난 몇 주간 다시 세계 뉴스의 중심에 서 있다. 중동의 오래된 국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이, 또다시 시위와 긴장, 국제사회의 시선 속에 놓여 있다. 어린시절 테헤란로를 생각하며 현재의 뉴스를 접하다 보면, 지명 하나가 개인의 기억과 세계사의 격랑을 동시에 불러낸다.

이란이라는 나라는 한인 동포들에게 익숙한 나라가 아니다. 대개 떠올리는 것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미국과의 적대 관계, 핵 문제 정도다. 그러나 이란은 단순히 ‘분쟁 지역의 국가’로 축약하기에는 너무 길고 깊은 역사를 지닌 나라다.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다. 한때 지중해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문명국가였고, 동서 문명의 교차로였다. 지금의 이란인들이 자국을 ‘페르시아’의 연속선상에서 인식하는 이유다. 이슬람 이전부터 형성된 국가 정체성은 오늘날에도 이란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현대 이란의 결정적 전환점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이다. 그 이전 이란은 팔레비 국왕이 통치하는 왕정 국가였다. 특히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국왕 시절,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친미적이고 친서방적인 국가 중 하나였다. 석유 수익을 바탕으로 산업화와 서구화를 추진했고, 미국과 긴밀한 군사·경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의 이란은 오늘날 한국과도 꽤 가까운 나라였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이란에 진출했고, 에너지 협력도 활발했다. 서울과 테헤란이 자매도시가 된 것도 이 시기다. 1977년, 서울 강남의 간선도로에 ‘테헤란로’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에는 이런 외교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팔레비 왕조의 근대화는 시민들의 삶과 균열을 일으켰다. 급속한 서구화, 정치적 억압, 빈부 격차, 종교 세력의 소외가 쌓여 갔다. 결국 거리로 나온 것은 학생과 노동자, 성직자와 시민들이었다. 팔레비 국왕은 강력한 군과 정보기관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시민 혁명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친미·친서방 체제는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 왕정은 사라졌고, 시아파 성직자가 통치의 중심에 섰다. 최고지도자가 국가 위에 군림하는 신정 체제가 들어섰고, 반미·반서방 노선이 국가 정체성으로 굳어졌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런 체제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 전쟁은 8년 동안 이어졌고,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남겼다. 국제사회는 냉담했고, 이란은 스스로를 ‘고립된 혁명 국가’로 인식하게 됐다. 이후 이란은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핵 개발 논란, 중동 내 영향력 확대, 반미 연대는 모두 이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역사는 멈춰 있지 않는다. 이란 내부에서도 변화의 압력은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젊은 세대는 세계와 연결돼 있고, 경제 제재는 일상의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히잡 의무화와 종교 규율에 대한 반발, 정치적 자유에 대한 요구는 반복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최근 몇 주간 테헤란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시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중요한 점은, 이란의 시민 시위가 외부에서 조종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팔레비 국왕을 무너뜨린 것도 외세가 아니라 이란 시민들이었다. 지금의 체제 역시 내부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시간이 걸릴 뿐, 사회는 늘 변화의 압력을 축적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또 다른 나라가 떠오른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3대에 걸친 세습 통치를 이어가고 있는 북한이다. 한 나라의 권력이 근 80년 가까이 같은 혈통 안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특이한 사례다.

북한 역시 한때는 혁명 국가였다. 외세에 맞선 항일 혁명, 사회주의 이상을 내세웠다. 그러나 혁명은 세습으로 굳어졌고, 체제는 폐쇄됐다. 외부 정보는 차단됐고, 시민의 자유는 철저히 통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도 인간이 사는 사회다. 변화의 씨앗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란의 역사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다. 아무리 강력해 보이는 체제라도, 시민의 축적된 불만과 시대의 흐름을 영원히 거스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팔레비 국왕도 그랬고, 이슬람 공화국 체제 역시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언제쯤 자유의 햇살이 깃들 수 있을까. 그 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없다. 다만 역사는 반복해서 말해 준다. 변화는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내부의 균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서울의 테헤란로는 여전히 바쁘다. 출근길 인파가 몰리고, 빌딩 숲 사이로 새로운 기업들이 들어선다. 그 길의 이름이 중동의 한 도시에서 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가끔은 지명이 기억을 깨운다. 개인의 어린 시절과 세계사의 격동이 겹쳐지는 순간,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권력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 시민의 침묵은 언제까지 유지되는가. 그리고 자유는, 과연 어느 순간 스며드는가.

KTN 편집국장 유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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