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고대진] 운동은 뭘 하십니까?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8-30 11:35

본문

칼럼니스트 고대진
칼럼니스트 고대진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을 만나면 이야기의 중심이 건강이다. 아픈 곳은 없는지 어떤 운동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지 라는 질문이 많다. 샌안토니오에 살 때는 같은 동네에 살던 분에게 학생 때 운동을 많이 하셨느냐고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그것은 건강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학생운동을 많이 한 소위 운동권 출신이냐는 질문이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런 운동요? 열심히 했지요 하고 웃어넘겼지만 그런 운동도 운동이었다.


사실 난 어렸을 때 작은 키에 몸도 약해서 자주 학교도 빠질 정도로 병치레가 잦았다. 작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들과 싸움을 많이 했다. 많이 맞고 많이 때리고 피 흘리고 하는 나에게 아버지가 유도를 시키셨다. 맞고 다니지 말라고. 유도를 한다는 소문이 난 뒤로는 시비 거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삶이 좀 편해진 것 같다. 그 뒤로도 호신용 운동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 검도까지 배웠다. 검도는 공군 사관학교 수학 교관으로 있을 때 체육교관으로 있던 선배에게 부탁해 학생들과 함께 배웠는데 인기가 없는 수학 교관을 가르치려는 생도들에게 주로 맞아주는 역할을 했다. 한 수 부탁드린다면서 대련 도전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상대해줘야 했는데 나보다 몇 년 더 배운 녀석들에게 다리 부위에 가격을 받아 퍼런 멍 자국을 달고 다녔다. 이 생도들과 수영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내 다리를 퍼렇게 멍들게 했던 생도에게 내가 한 수 배울까 하며 물속 깊이 끌고 가 물을 많이 먹였던 생각이 난다. 내가 물개라는 별명을 가진 교관인 것을 알고는 검도 훈련에서 다시는 “한 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뭐든지 시작하면 열심히 빠져버리는 성격이라서 대학에 입학하면서 테니스에 미친 듯 몰두하고 열심히 연습하였다. 물론 타고난 재능이 별로 없는 나는 노력으로만 선수 생활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테니스를 배우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이 많아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과 대표 선수로 뽑히기도 했고 리치먼드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도 몇 번 했으니 꽤 오래 즐겼던 운동이었다. 마누라와 연애할 때도 테니스를 가르쳐주며 시작했다. 손을 잡고 허리를 돌려주며 이렇게 저렇게 아주 상냥하게 가르치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야 나에겐 못한다고 소리 지르며 야단하더니 여자들에겐 손까지 잡으며 상냥하게 가르치네.”“그러니까 연애를 하지 소리나 지르면 누가 나에게 오겠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했지 결혼하게 한다는 말은 없던데?” “음- 고래와 춤추다 보면 정이 들기 마련이지.”


결혼 뒤 테니스장을 자주 찾았다. 키도 크고 다리가 길어서인지 빨리 공을 받아넘기고 운동신경이 나보다 나은 것 같았다. 가끔 시합할 때는 내기를 했다. 오늘 설거지는 누구? 청소는? 빨래는? 한 두 점 접어주고도 이기는 날 보면서 약이 오른 마누라. “내기 시합하면 당신 눈빛이 달라져. 한 번 져주면 안 돼?“ ”안 돼.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 ”옛날에는 안 그랬잖아“ ”응 그때는 스포츠 정신보다 더 중요한 정신이 있었거든.“ ”무슨 정신인데?“ ”응 사랑의 정신.“


버지니아 리치먼드에서는 운동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테니스 대회에 나가면 일등보다는 이등 삼등을 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마라톤이다. 오래 뛰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만들기 위해서다. 13.1 마일을 달리는 반 마라톤을 완주하고 마라톤은 포기하고 말았지만 테니스 대회에서는 우승하게 된 이야기. 더운 리치먼드의 8월에 테니스 대회는 여섯 개임을 하루에 끝내야 했다. 대부분의 선수가 다섯 게임을 하고 나서는 쥐가 나거나 기진맥진해 기권해버리고 말았는데 난 아직도 몇 게임을 더 할 수 있는 듯 펄펄 날랐다. 사실 나도 엄청나게 지쳐 있었는데 지친 표정을 하지 않고 펄펄 날 듯이 뛰는 나에게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대가 포기하고 만 것이다. 힘든 우승을 하고 집에 와보니 마누라도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었다. 여자대회 우승이었다. 참석자가 3명인 여자대회에선 2번만 이기면 우승이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우승해?“ ”우승이라고 다 같은 우승이냐?“ ”어떻게 다른데? 트로피는 같은데.“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면서 다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테니스를 하던 친구들이 골프로 바꾸기 시작하고 골프를 하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거의 중독이 될 정도의 골프의 매력은 칠수록 배울 것이 더 나온다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치면 칠수록 더 좋아질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에 계속 연습도 하고 시간을 보낸다. 몇 달 레슨을 받고 시작해본 골프는 나에겐 맞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교수라는 직업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이면 충분한 운동을 할 수 있는 테니스와 비교가 되었다. 내가 있던 대학에서도 골프를 하다가 빠져 테뉴어(종신교수)를 못 받아 다른 곳으로 가거나 정교수 승진을 못 하고 만년 부교수로 남는 사람이 많았다. 아직도 골프의 매력을 못 느끼고 있는 나를 보고 골프에 싱글 핸디인 동생은 이해를 할 수 없단다. ”은퇴하고 시간도 많은데 왜 안 해요?“ ”은퇴해도 바쁘긴 마찬가지야. 나중에 천국 넓은 푸른 풀밭에서나 하려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며칠째 비가 올 듯 하늘이 잔뜩 흐렸더니, 오늘도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어느새 수확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수영장에 빠져 떠다니는 후박나무 잎을 건져내다가, 의사가 해주었던 비타민 D 부족이라는 말이 떠올라 오랜만에 텃밭에 앉아봅니다. 텃밭에서 마주…
    문학 2024-10-18 
    한국의 추석을 생각하면 높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가을꽃과 풍성한 오곡백과, 넉넉하고 둥근 보름달이 연상되었다. 지구도 중증을 앓는지 올 추석엔 폭염주의보를 보내어 그런 가을 풍경은 기대할 수 없었다. 체감온도가 33℃ 이상이다 보니 모든 사람이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문학 2024-10-11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lt;순대와 생…
    문학 2024-10-04 
    들판에 하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멀게 느껴지며, 여름내 피고 지던 야생 해바라기가 시들어갈 즈음이면 추석무렵이다. 미국 와서 강산이 몇 번 변할 만큼 살았는데도 난 아직도 한국의 절기를 고집한다. 예전에는 쩔쩔끓는 날씨에 ‘처서’나 ‘백로’를…
    문학 2024-09-27 
    매일 아침 선물을 받는다.선물은 언제나 침대에서 내려와 한 걸음쯤 떨어진 바닥에 놓여있다. 나는 그것을 무심히 집어 올린다. 하지만, 시간을 가늠키 어려운 어느 아침, 창밖으로 시커먼 구름이 비를 쏟아내는 광경을 보거나 혹은 동트기 전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
    문학 2024-09-20 
    드디어 &lt;한솔문학&gt; 10호가 발간되어 내 손에 들어왔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예상보다 훨씬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 작은 문예지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정성을 담고 있는지 생각하니, 그동안의 복잡했던 마음이 차차 가…
    문학 2024-09-13 
    올해도 엘에이 ‘미주한국문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여름문학캠프에 다녀왔다. 캠프 후엔 강사들과 함께 문학기행을 가는데, 여행지가4대 캐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딸이 가보고 싶다 하여 데라고 갔다. 달라스에서 엘에이행 첫 비행기를 타면 2시간 시차가 있기 때문에 아침 …
    문학 2024-09-06 
    <div style="mso-element:para-border-div;border:none black 1.0pt;mso-border-alt: none black 0in;padding:1.0pt 4.0pt 1.0pt 4.0pt"> ◈…
    문학 2024-08-30 
    크루즈 여행은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여행 형태중 하나이다. 특히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미 대륙을 여행하는데 드는 자동차여행 경비와 비교를 해보면 특히 비용면에서 그렇단 생각이 든다.한 일 주일정도를 그저 그런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고, 별 세 개 짜리 숙소에서 잠을…
    문학 2024-08-23 
    위키 백과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33%는 기독교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은 많아도 성경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은 몹시 어려워 보인다. 하나님이 사람 마음속을 훤히 아신다는 부분이 가장 난감하다. 하나님은 외모 말고…
    문학 2024-08-16 
    큰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집에 왔다. 나의 온 세상이었던 아이가 자라 그의 온 세상을 품고 온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과 함께 온 그 작은 생명체는 조용했던 집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두 주 전부터 데이케어에 다니기 시작한 손자는, 아빠가 눈에 보이지 않으…
    문학 2024-08-09 
    K팝의 인기를 공연장에서 가면 실감하게 된다.지난 28일, 8인조 보이 그룹 ATEEZ(에이티즈) 2024 월드 투어 ‘Towards the Light:Will to Power” 달라스 공연이 알링턴에 있는 ‘Texas Rangers Globe Life Field’에서…
    문학 2024-08-02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lt;순대와 생…
    문학 2024-07-26 
    아크로 폴리스의 중심부인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언덕위에 세워져있다. 이 신전은 기원전 5세기 경에 델로스동맹의 수장 페리 클래스가 페르시아 침략을 물리친 기념으로 건립했는데,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파르테논은 ‘처…
    문학 2024-07-19 
    “고향이 어디예요?” 고향을 묻는 이에게 서울이라고 답할 때면 가슴 밑바닥에 소리 죽인 한숨 같은 게 있었다. “에이 서울이 무슨 고향인가요. 고향이 없네.”하며 누군가 물색없이 굴 때도 비쭉 웃고 말았다. 중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었다. …
    문학 2024-07-12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