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하나님의 솜씨, 자연에서의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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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이육사의 <청포도>의 계절 7월이 가고 있다.
19세기 미국의 자연주의 수필가인 존 버로우즈는 “나는 위안 받고 치유되고 감각이 새롭게 되기 위해 자연으로 간다.”고 했다. ‘바닷병’ 걸렸던 때가 생각이 났다.
이민초기 좌충우돌의 시간. 잘 생각하며 결정했음에도 어쩌다보니 사오년을 해마다 이사해야 했다. 이사한다고 쉬면 수입이 없으니 계속 일해야 했고 짐을 옮겨 주면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정리해야 했다. 이민뿌리 내리느라 주 60시간 일하며 끙끙대는 동안 10대에 온 아이들은 훌쩍 커서 대학을 가니 가족여행 할 여유도 기회도 없이 생존만을 위해 살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바다가 그리웠다. 바닷소리가 듣고 싶었다. 산을 더 좋아했고 고향도 아닌 바다를 왜 그리 가고 싶었는지. 하늘과 맞닿은 바다의 수평선이 보고 싶었다. 바다냄새가 그리웠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엄마와 아기가 사는 내 나라의 바다가 눈에 아물거렸다. 손님과 동료들의 휴가이야기를 듣다보면 오영수의 <갯마을> 해순처럼 “수수밭에 가면 수숫대가 모두 미역발 같고, 콩밭에 가면 콩밭이 왼통 바다만 같고……” 하듯 파도소리가 듣고 싶어 해순처럼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독립기념일과 다음 날에 걸쳐 오프를 어렵게 얻었다. 달라스에서 가장 가깝고 맑은 바다라는 코퍼스크리스티로 향했다. 지도책을 보는 나는 내비게이션이 되고 남편은 운전을 했다. 종일 걸려 도착한 해안가의 장성급 호텔에서 바다가 보이는 방을 값만 물어만 보고 돌아서는데 등이 따가웠다. 마침 넓지 않은 도로 건너편에 자그마한 2층짜리 모텔이 보였다. 기라성 같은 두 호텔사이로 바다가 보일만한 창이 있었다. 서둘러 방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종일 일을 마친 해가 ‘나도 14시간을 숨 가쁘게 일했노라’며 수평선 너머로 몸을 쉬러가는 중이었다. 장엄하고 황홀한 일몰! 종일 일하며 어디에 숨겼다가 풀어냈을까. 잘 익은 수박 속살 같은 빛을! 바다를 마주한 창으로 제법 들리는 파도소리! 잠이 드는 게 아까워서 밤새 들으려고 버티다가 어느 결에 깨어보니 바다는 아침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더 멋진 바다를 보려면 사우스파드레 아일랜드로 가란다. 주저 없이 출발했다. 파드레는 ‘내 아버지, 내 주인’이라는 뜻이니 ‘내 아버지 하나님의 섬’으로 가는 두어 시간은 설레기만 했다. 54킬로의 긴 해변이라는데, 어쩌다가 간혹 눈에 띄는 사람들. 북대서양의 멕시코 만에 있는 맑고 고운바다는 잔잔하다가도 한 번씩 출렁거리며 넘실대는 청년 같은 바다였다. 그 물에 몸을 담그면 ‘스머프’가 될 것 같았다. 막힌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모래만 밟아보고 돌아서는 아쉬운 길을 물새들이 배웅해 주었다. 10여 시간 또 부지런히 밟아 집에 도착했고 물론 여독도 없이 다음날 아침부터 일을 시작했다. ‘바닷병 환자’의 치유를 위해 남편은 1박2일간 20시간이 넘도록 핸들을 잡아야했다.
큰아들이 시애틀에 둥지를 튼 후로는 일 년에 한번 아들네가 준비한대로 유명하다는 여러 곳을 다녔다. 스트레스 없는 편안한 여행이다. 워싱턴 주도인 올림피아와 타코마 특히 시애틀의 디셉션 패스 그리고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더 북쪽까지 바다가 구불구불 도시 깊숙이 따라 들어와 있어 강인지 바단지 헷갈리게 하는 특이한 곳이다.
밴쿠버 시내 근처 숲 위에 자리 잡은 캐필라노 현수교는 1889년 숲 위에 지어진 137m 길이로 캐필라노 강에 있는 흔들다리다. 136m 위에 있어 숲의 경관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또 스탠리 공원은 아름다운 방파제가 있는 거대한 도시 공원으로 해변산책로를 차로만 둘러보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유리같이 고요한 호수 같은 바다, Deep Cove의 해변에 있는 총천연색 카누들은 주위의 풍광과 어우러져 이색적으로 아름다웠다.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레이첼 카슨은“자연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기쁨을 나누고 발견의 모험을 하는 곳, 그래서 자연을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우리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자연과 사귀라”고 권한다. 달라스 집에 와서도 장난감을 제쳐놓고 나뭇잎, 꽃잎, 나뭇가지, 작은 돌, 도토리 등을 가지고 놀던 자연을 좋아하는 손녀와 함께 즐길 수 있음이 행복이었다.
남편도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만드신 이세상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능하면 많이 보고 싶다고 하니 부창부수(夫唱婦隨)인 셈이다. 한국에서 목회할 때 봄가을이면 전교인 관광으로 대형버스를 몇 대 씩 대절해 진해의 벚꽃, 설악산, 단양 팔경 등을 다녀오곤 했다. 자연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누리는 복된 시간들 이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20)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이육사의 <청포도>의 계절 7월이 가고 있다.
19세기 미국의 자연주의 수필가인 존 버로우즈는 “나는 위안 받고 치유되고 감각이 새롭게 되기 위해 자연으로 간다.”고 했다. ‘바닷병’ 걸렸던 때가 생각이 났다.
이민초기 좌충우돌의 시간. 잘 생각하며 결정했음에도 어쩌다보니 사오년을 해마다 이사해야 했다. 이사한다고 쉬면 수입이 없으니 계속 일해야 했고 짐을 옮겨 주면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정리해야 했다. 이민뿌리 내리느라 주 60시간 일하며 끙끙대는 동안 10대에 온 아이들은 훌쩍 커서 대학을 가니 가족여행 할 여유도 기회도 없이 생존만을 위해 살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바다가 그리웠다. 바닷소리가 듣고 싶었다. 산을 더 좋아했고 고향도 아닌 바다를 왜 그리 가고 싶었는지. 하늘과 맞닿은 바다의 수평선이 보고 싶었다. 바다냄새가 그리웠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엄마와 아기가 사는 내 나라의 바다가 눈에 아물거렸다. 손님과 동료들의 휴가이야기를 듣다보면 오영수의 <갯마을> 해순처럼 “수수밭에 가면 수숫대가 모두 미역발 같고, 콩밭에 가면 콩밭이 왼통 바다만 같고……” 하듯 파도소리가 듣고 싶어 해순처럼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독립기념일과 다음 날에 걸쳐 오프를 어렵게 얻었다. 달라스에서 가장 가깝고 맑은 바다라는 코퍼스크리스티로 향했다. 지도책을 보는 나는 내비게이션이 되고 남편은 운전을 했다. 종일 걸려 도착한 해안가의 장성급 호텔에서 바다가 보이는 방을 값만 물어만 보고 돌아서는데 등이 따가웠다. 마침 넓지 않은 도로 건너편에 자그마한 2층짜리 모텔이 보였다. 기라성 같은 두 호텔사이로 바다가 보일만한 창이 있었다. 서둘러 방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종일 일을 마친 해가 ‘나도 14시간을 숨 가쁘게 일했노라’며 수평선 너머로 몸을 쉬러가는 중이었다. 장엄하고 황홀한 일몰! 종일 일하며 어디에 숨겼다가 풀어냈을까. 잘 익은 수박 속살 같은 빛을! 바다를 마주한 창으로 제법 들리는 파도소리! 잠이 드는 게 아까워서 밤새 들으려고 버티다가 어느 결에 깨어보니 바다는 아침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더 멋진 바다를 보려면 사우스파드레 아일랜드로 가란다. 주저 없이 출발했다. 파드레는 ‘내 아버지, 내 주인’이라는 뜻이니 ‘내 아버지 하나님의 섬’으로 가는 두어 시간은 설레기만 했다. 54킬로의 긴 해변이라는데, 어쩌다가 간혹 눈에 띄는 사람들. 북대서양의 멕시코 만에 있는 맑고 고운바다는 잔잔하다가도 한 번씩 출렁거리며 넘실대는 청년 같은 바다였다. 그 물에 몸을 담그면 ‘스머프’가 될 것 같았다. 막힌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모래만 밟아보고 돌아서는 아쉬운 길을 물새들이 배웅해 주었다. 10여 시간 또 부지런히 밟아 집에 도착했고 물론 여독도 없이 다음날 아침부터 일을 시작했다. ‘바닷병 환자’의 치유를 위해 남편은 1박2일간 20시간이 넘도록 핸들을 잡아야했다.
큰아들이 시애틀에 둥지를 튼 후로는 일 년에 한번 아들네가 준비한대로 유명하다는 여러 곳을 다녔다. 스트레스 없는 편안한 여행이다. 워싱턴 주도인 올림피아와 타코마 특히 시애틀의 디셉션 패스 그리고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더 북쪽까지 바다가 구불구불 도시 깊숙이 따라 들어와 있어 강인지 바단지 헷갈리게 하는 특이한 곳이다.
밴쿠버 시내 근처 숲 위에 자리 잡은 캐필라노 현수교는 1889년 숲 위에 지어진 137m 길이로 캐필라노 강에 있는 흔들다리다. 136m 위에 있어 숲의 경관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또 스탠리 공원은 아름다운 방파제가 있는 거대한 도시 공원으로 해변산책로를 차로만 둘러보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유리같이 고요한 호수 같은 바다, Deep Cove의 해변에 있는 총천연색 카누들은 주위의 풍광과 어우러져 이색적으로 아름다웠다.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레이첼 카슨은“자연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기쁨을 나누고 발견의 모험을 하는 곳, 그래서 자연을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우리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자연과 사귀라”고 권한다. 달라스 집에 와서도 장난감을 제쳐놓고 나뭇잎, 꽃잎, 나뭇가지, 작은 돌, 도토리 등을 가지고 놀던 자연을 좋아하는 손녀와 함께 즐길 수 있음이 행복이었다.
남편도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만드신 이세상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능하면 많이 보고 싶다고 하니 부창부수(夫唱婦隨)인 셈이다. 한국에서 목회할 때 봄가을이면 전교인 관광으로 대형버스를 몇 대 씩 대절해 진해의 벚꽃, 설악산, 단양 팔경 등을 다녀오곤 했다. 자연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누리는 복된 시간들 이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20)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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