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그들의 ‘메이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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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어린 시절 순천에서 일본사람들이 살다 간 적산가옥에서 잠시 산 적이 있었다. ‘옥천’이라는 순천 시내를 관통하는 냇가가 있는 저전동이라는 동네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를 했던 곳인지, 그 집이 있던 골목길 안쪽은 거의가 다 그런 가옥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미국식 현관처럼 신발을 벗고 작은 마루를 지나면 거실에 해당하는 다다미방이 나오며, 방과 방사이는 벽이 아닌 아주 얇은 미닫이문으로 이루어진 편리한 집이었다.
그런데 비바람이라도 몰아치면 나무집이어서 그런지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요란했고 문을 열지 않으면 안에선 밖을, 밖에선 안을 잘 볼 수 없는 그런 구조였다. 집과 밖 사이에 마루와 마당이 있어 안팎이 잘 소통 할 수 있는 한옥과는 확연이 다른 구조였다. 그런데 오랜세월이 지나 문득 이 적산 가옥이 떠오른 것은 연일 보도되고 있는 심각한 한일 관계의 위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았던 집은 뭔지 모르게 그들처럼 이중적인 구조로 그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근간을 이루는 개인행동의 기본적 원리엔 다테야마와 혼네 (겉마음과 속마음),
메이와쿠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미혹’ 이란 뜻을 지닌 이 메이와쿠 정신은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정신으로 그들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수도 없이 이 메이와쿠 정신을 훈련받으며 자란다. 커서도 모든 인간관계의 근간엔 이 정신이 적용되는데, 그들은 어설픈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절대 신세를 지지 않으려 하며, 집단에서도 폐를 끼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그럴 경우 그런 사람은 단체나 집단에서 왕따(이지메)를 당하는데, 이런 걸 보면 왕따 문화가 왜 일본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들의 이런 정신은 대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같은 국가적 큰 재앙에서 특히 더 주목을 받는다. 이러한 위급상황에서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침착하게 질서를 지키고, 정부를 원망하기는커녕 말없이 정부의 지시를 기다린다. 심지어 고베 대지진때 손자가 바위에 깔려있는 상황에서도 손자의 할머니가 도리어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는 모습 등은 다른 나라에서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가 없는 광경이다. 심지어 열 살된 초등학생조차도 릴레이 마라톤을 하면서 넘어져 무릎에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끝까지 기어가서 다음 주자에게 막대를 전달하는 모습 등은 이들이 메이와쿠 훈련을 어려서부터 얼마나 철저하게 받고 자라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전 세계인들은 일본인들의 수준 높은 이타정신과 질서의식을 침이 마르도록 칭송을 한다. 그에 비해 무슨 일이 생길 때 마다 네 탓이요!를 관행적으로 하고 있는, 이웃나라 한국은 확연히 대조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정신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집단에서 왕따 당하는게 무섭고, 사회적 처벌과 불이익이 두려워 자기가 속한 공동체나 국가의 잘못된 점을 계속 묵과해 왔다. 그러다보니, 2차대전의 전범인데도 불구하고 이웃나라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강제징용은 물론 위안부 문제나 남경 학살 등 이웃나라에 끼친 홀로코스트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자기성찰이나 반성이 전혀 없다. 남에게 폐를 끼친 걸로 따지면 이것 보다 더 심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이웃의 인권을 유린하고, 성폭력을 저지르고, 사람을 생매장 한 인간 말종들이나 저지를 수 있는 만행을 가하고도 적반하장으로 큰소리를 치고 끊임없이 변명만 하고 있다. 지금도 이차대전 영화를 티브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보여주며, 네 조상들이 인류에게 얼마만한 잘못을 했는지를 경각시키는 독일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일본은 전범인데도 불구하고 죄 값을 치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은 되레 원폭 피해자라며 주객이 전도된 발상만 한다. 도리어 한국의 발전에 자신들의 지대한 공로가 있음을 공공연이 들먹이며, 학자들 중에는 일제 점령기로 인해 한국이 문명화되었다는 망언을 아끼지 않는 이도 있다. 결국 메이와쿠 정신은 자신들만을 위한 국내용인 것이다. 그들의 속마음은 이웃나라와의 상생이 아니라, 기회만 되면 이웃을 침략하여 지배하고자 하는 오래된 제국주의의 부활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에서, 남의나라에 강제로 징용되어 인생을 망친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주기는커녕, 도리어 그 나라에 경제보복이란 비겁한 수단을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일 더 극단적인 방법을 모색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을 죽기보다 싫어한다는, 예의 바른 일본국민들이 아베의 이러한 군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정치를 전폭적으로 지지를 하는 것도 참 속내가 보인다. 이건 단순히 경제보복이 아니라 개전준비를 위한 그들의 야심이 드러난 행보이다. 그러니 이 상황은 일본 사케 안마시고, 유니 클로우 티셔츠 한 장 안 사입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개인이 모여 국가를 이룬다고 할 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국가는 일본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나라이다. 살다보니 주변에서도 겸손을 가장하며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면서도, 기회가 되면 자신의 계산된 속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 제대로 된, 진정한 그들(일본인)의 메이와쿠 정신을 보고 싶다. 잘못은 뉘우치라고 있는 것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B059
어린 시절 순천에서 일본사람들이 살다 간 적산가옥에서 잠시 산 적이 있었다. ‘옥천’이라는 순천 시내를 관통하는 냇가가 있는 저전동이라는 동네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를 했던 곳인지, 그 집이 있던 골목길 안쪽은 거의가 다 그런 가옥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미국식 현관처럼 신발을 벗고 작은 마루를 지나면 거실에 해당하는 다다미방이 나오며, 방과 방사이는 벽이 아닌 아주 얇은 미닫이문으로 이루어진 편리한 집이었다.
그런데 비바람이라도 몰아치면 나무집이어서 그런지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요란했고 문을 열지 않으면 안에선 밖을, 밖에선 안을 잘 볼 수 없는 그런 구조였다. 집과 밖 사이에 마루와 마당이 있어 안팎이 잘 소통 할 수 있는 한옥과는 확연이 다른 구조였다. 그런데 오랜세월이 지나 문득 이 적산 가옥이 떠오른 것은 연일 보도되고 있는 심각한 한일 관계의 위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았던 집은 뭔지 모르게 그들처럼 이중적인 구조로 그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근간을 이루는 개인행동의 기본적 원리엔 다테야마와 혼네 (겉마음과 속마음),
메이와쿠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미혹’ 이란 뜻을 지닌 이 메이와쿠 정신은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정신으로 그들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수도 없이 이 메이와쿠 정신을 훈련받으며 자란다. 커서도 모든 인간관계의 근간엔 이 정신이 적용되는데, 그들은 어설픈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절대 신세를 지지 않으려 하며, 집단에서도 폐를 끼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그럴 경우 그런 사람은 단체나 집단에서 왕따(이지메)를 당하는데, 이런 걸 보면 왕따 문화가 왜 일본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들의 이런 정신은 대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같은 국가적 큰 재앙에서 특히 더 주목을 받는다. 이러한 위급상황에서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침착하게 질서를 지키고, 정부를 원망하기는커녕 말없이 정부의 지시를 기다린다. 심지어 고베 대지진때 손자가 바위에 깔려있는 상황에서도 손자의 할머니가 도리어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는 모습 등은 다른 나라에서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가 없는 광경이다. 심지어 열 살된 초등학생조차도 릴레이 마라톤을 하면서 넘어져 무릎에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끝까지 기어가서 다음 주자에게 막대를 전달하는 모습 등은 이들이 메이와쿠 훈련을 어려서부터 얼마나 철저하게 받고 자라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전 세계인들은 일본인들의 수준 높은 이타정신과 질서의식을 침이 마르도록 칭송을 한다. 그에 비해 무슨 일이 생길 때 마다 네 탓이요!를 관행적으로 하고 있는, 이웃나라 한국은 확연히 대조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정신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집단에서 왕따 당하는게 무섭고, 사회적 처벌과 불이익이 두려워 자기가 속한 공동체나 국가의 잘못된 점을 계속 묵과해 왔다. 그러다보니, 2차대전의 전범인데도 불구하고 이웃나라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강제징용은 물론 위안부 문제나 남경 학살 등 이웃나라에 끼친 홀로코스트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자기성찰이나 반성이 전혀 없다. 남에게 폐를 끼친 걸로 따지면 이것 보다 더 심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이웃의 인권을 유린하고, 성폭력을 저지르고, 사람을 생매장 한 인간 말종들이나 저지를 수 있는 만행을 가하고도 적반하장으로 큰소리를 치고 끊임없이 변명만 하고 있다. 지금도 이차대전 영화를 티브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보여주며, 네 조상들이 인류에게 얼마만한 잘못을 했는지를 경각시키는 독일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일본은 전범인데도 불구하고 죄 값을 치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은 되레 원폭 피해자라며 주객이 전도된 발상만 한다. 도리어 한국의 발전에 자신들의 지대한 공로가 있음을 공공연이 들먹이며, 학자들 중에는 일제 점령기로 인해 한국이 문명화되었다는 망언을 아끼지 않는 이도 있다. 결국 메이와쿠 정신은 자신들만을 위한 국내용인 것이다. 그들의 속마음은 이웃나라와의 상생이 아니라, 기회만 되면 이웃을 침략하여 지배하고자 하는 오래된 제국주의의 부활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에서, 남의나라에 강제로 징용되어 인생을 망친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주기는커녕, 도리어 그 나라에 경제보복이란 비겁한 수단을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일 더 극단적인 방법을 모색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을 죽기보다 싫어한다는, 예의 바른 일본국민들이 아베의 이러한 군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정치를 전폭적으로 지지를 하는 것도 참 속내가 보인다. 이건 단순히 경제보복이 아니라 개전준비를 위한 그들의 야심이 드러난 행보이다. 그러니 이 상황은 일본 사케 안마시고, 유니 클로우 티셔츠 한 장 안 사입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개인이 모여 국가를 이룬다고 할 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국가는 일본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나라이다. 살다보니 주변에서도 겸손을 가장하며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면서도, 기회가 되면 자신의 계산된 속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 제대로 된, 진정한 그들(일본인)의 메이와쿠 정신을 보고 싶다. 잘못은 뉘우치라고 있는 것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B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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