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배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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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 오전에 나는 컨디션이 좀 꾸무럭해서 사우나나 할까 하고 헬스크럽엘 갔다. 근데 보통 때와는 달리 금요일인데도 불구하고 GYM도 그렇거니와 수영장 부근이 지나치게 한산했다.
수영장엔 나이 든 할머니 혼자 마치 휴가를 온 것처럼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나 역시 오랜만에 사우나와 월풀을 드나들며 붐비지 않는 한가한 수영장에서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러면서도 평소와는 다른 어떤 분위기가 감지되어 이게 뭔가 했다. 돌아오는 길에 가글액을 좀 살까 하고 코스코엘 들렸다. 그런데 그날 따라 주차공간을 찾기가 무척 힘이 들어 몇 바퀴를 돌다가 겨우 주차를 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코스코엘 들어가자 마자 입구에서부터 지나치게 사람이 많았다. 부활절도 멀었는데 이 인파는 뭐지 하면서도 난 레인코트 하나를 카트에 집어넣고 천천히 위생용품을 파는 곳으로 가려했다.
그런데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족히 한 삼사십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마치 전쟁통에 피난을 가는 사람들 마냥 카트에 물건들을 산더미처럼 싣고 지그재그로 줄을 서 있었다.
몇 십년 동안 이곳에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마침내 나는 코스코 샤핑을 포기하고 한가한 우리 동네 월마트엘 가기로 했다.
허나 예상과 달리, 동네 월마트 역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주차장 역시 이곳도 명절 정도의 차가 파킹되어 있었고, 카트를 밀고 나오는 사람들 역시 카트에 한 가득씩 화장지와 식료품들을 사들고 나왔다.
난 결국 그냥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알고보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 비상사태 선포 후 바로 밀려든 인파였다.
사실 그 전에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보도는 꾸준히 있었는데, 대통령의 긴급선언을 보자 시민들은 이제 바야흐로 전쟁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걸 피부로 절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의료장비와 마스크, 의료인력도 부족할 뿐더러 체계적인 방역시스템이 갖춰있지 않다는 보도는 날마다 시민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연을 하소연한 웨스트 버지니아 주민 이야기를 보면서, 정말 남 얘기 같지 않았다.
환자는 방역당국이 서로 책임전가를 하며 검사를 미루기만 해서 발병 후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검사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런 뒤 지인인 응급실 간호사 도움으로 겨우 검사를 받았는데 2주가 지나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병원측이 검사물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병원의 처사에 화가 난 환자의 아내는 이 사실을 페이스북에 올린 뒤 다른 주로 가려고 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이 엉터리 주 보건 시스템에 분노를 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주 상원의원이 발 벗고 나서서 부부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몇 주 사이 부인도 이미 감염자가 되었다.
난 이 사연을 보며, 현 미국의 의료실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케이스란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도 의료 선진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장비와 인력, 비싸기만 한 의료비에 서민들은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보험이 있어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데, 이런저런 부실한 시스템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이곳에서 동포들이 중병에 걸리면 의료 시스템이 잘 된 한국으로 건너가는 것은 이젠 거의 상식이 되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망가진 미국 의료 시스템과 위기의식이 별로 없는 미국민들의 지나친 낙천주의가 세계 1위의 코로나바이러스 국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처럼 빠른 검진 시스템과 확진자 동선추적이나 공개가 없어, 생필품을 사러 다닐 때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고 있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마스크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대통령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니 그저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라도 철저히 시행하는 수 밖에 없는데 한 달이 넘게 집콕만 하고 있으려니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많은 카운티와 주 정부가 이미 식품점, 약국, 자동차 바디샵처럼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외출을 금지 내지 자제해 달라고 행정명령을 내린 상태이다.
메릴랜드 주 같은 경우는 할 일 없이 거리를 다니다 적발되면 벌금이 5,000불이나 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작은 미생물이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저력으로 전 세계를 셧다운시키고 있다.
이제 확진자 숫자가 30만명이 넘게 된 미국은 패닉상태다. 사람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두기는 일상이 되었고, 결벽증 환자처럼 하루에도 수 십번씩 손을 씻거나, 장갑을 끼고 물건을 만지며, 집안 식구 누군가 기침만 좀 해도 잔뜩 긴장을 한다.
여느 때 같으면 정부에서 1,200불이나 되는 거금을 준다는데 기뻐 날뛰었겠지만, 수인(囚人)이 되어버린 입장에서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물론 일상이나 생필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거나 가족끼리 좀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등의 좋은 점도 있다. 그나마 SNS에 실린 재택근무 하는 주인이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개, 고양이 사진을 보면서 웃는다.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카뮈의 <페스트>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다. 질병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방식은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는 힘을 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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