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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니하우의 큰 바다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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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0-06-0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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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생긴 일 (26)





“큰 바다사자라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되게 크네. 센프란시스코 어부들의 시장 피어 39에서 봤을 때는 이렇게 큰 줄 몰랐는데, 그때 이놈들이 떼로 있어서 그랬나. 이놈은 키가 3미터쯤 되는 것 같지? 몸무게는 500킬로는 되는 것 같군. 이 놈한테 깔리면 그냥 죽겠네. 분명 우리 둘이 옆에 있는 줄 알텐데 꿈쩍 않고 자고 있네. 천하태평이군. 그런데 니하우 섬이 바다사자의 서식지인가?”
“상필씨는 왜 이 바다사자한테 이놈 저놈 그래?”
“아니, 그럼 이분 저분 그래야 하나? 그런데 이놈은 암놈인가 수놈인가?”
“얘는 보이야.” / “어떻게 알아?”
“우선 몸집이 크잖아. 머리가 툭 튀어나왔고, 어깨에 갈기 털이 있어. 앞 지느러미 발은 길고 넓지.”
“레이는 바다사자에 대해서도 전문가야?”
“얘들은 우리 단체의 보호를 받고 있어. 멸종위기에 처해 있어서 생태계를 연구 중이야. 내 전공이 아니라서 모르겠는데 이 바다사자 몸 어딘가에 칩이 있을 걸. 그래서 얘들 추적이 가능하지.”
“얘들은 왜 멸종 위기에 있는데, 기후 때문인가?” / “아니, 사람들 극성 때문에. 어망에 걸려 잡혀 죽어.”
“사람들이 바다사자를 잡아서 뭐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바다사자를 포획해서 요리해 먹어. 북해도 산 바다사자 통조림도 있다니까. 가죽도 벗겨서 쓰고.”
“얘들 보니 순 비계덩이인데 일본인들이 왜 좋아할까?”
“먹어본 사람이 그러는데 돼지고기 삶은 것하고 비슷하다는데…”
“음, 알만하다 알만해. 새우젓하고 먹으면 되겠네.”
“무슨 소리야?” / “아냐, 아냐.”
상필은 바다사자 삶은 고기 맛이 돼지고기 같다고 해서 얼핏 돼지보쌈이 생각났으나 레이의 낮 빛을 보자 쑥스러워졌다.
“얘들은 야행성이라 낮에는 느긋하게 햇볕을 즐기고 잠을 자는지 명상을 하는지 가만히 있다가 밤이 되면 바다에 들어가 먹이를 찾아 활동하지. 얘들은 일부다처야. 다섯 이상의 암컷을 거느린데.”
“와우, 부럽다.” / “뭐라고?” / “아내가 여럿이면 좋잖아.” 레이가 상필을 빤히 쳐다보며 어이없어 했다.
“얘들은 뭘 먹고 이렇게 살이 쩠어? 무지 먹어야 할텐데…”
“바다사자들은 먹성이 좋아서 해조류는 다 먹어. 물고기, 새우, 문어, 오징어 등…”





레이의 손을 잡고 큰 바다사자를 들여다보는 동안 파도는 힘차게 밀려들었다가는 슬며시 풀어진다. 하늘과 바다가 구별 없이 푸르다. 태양은 꺼릴 것 없이 내려 쪼인다.
레이와 걷는 이 바닷가에서 상필은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는데 뭔가 뿌듯하다. 상필의 몸과 정신이 정화 되는 듯 했다.
모래밭이라고 생각하고 한참을 걸었는데 뭔가 감촉이 이상하고 바지직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상필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았다. 모랜 줄 알았는데 온통 조개껍데기였다.
“와우, 모래가 아니라 조개 껍데기네. 맨발로 걸으면 위험하겠다.”
“조개가 아니가 소라야. 소라 껍데기는 이지역의 특산물이야. 오랜 세월 폭풍우와 파도에 휩쓸리고 암초에 부딪혀서 소라껍질들은 각진 데가 없이 마모되었어. 유독 이곳에 소라 껍데기가 쌓이는 것은 이곳의 조류 때문이래. 하와이의 특산물이 꽃 레이잖아. 이곳에서는 소라 껍데기로 레이를 만들어. 정교하고 예쁘게 만들어서 보석취급을 해. 조그만 더 가면 소라 레이 만드는 할머니가 계셔.”





소라 목걸이를 만들고 있는 할머니는 나무로 만든 낡은 집에 살고 있었다. 흙 길 옆에 지어진 집은 비바람을 겨우 피할 수 있을까. 상필같은 사람이 쓰윽 밀면 힘 없이 넘어갈 듯 하다.
할머니는 현관문을 열어놓은 채 계단에 앉아 작은 소라를 바느질하듯 꿰고 있었다. 여러 개의 프라스틱 컨테이너에 소라 껍데기가 가득 차 있었다. 소라 껍데기를 나름 분류해 놓은 듯 크고 작고 붉고 하얀 그룹으로 나뉘어있었다.
할머니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지으며 레이를 맞이했다. “하이, 레이, my pretty lei”하며 레이를 끌어안았다.
할머니는 황토색 피부에 헐렁한 면바지와 알록달록한 티를 입고 있었다. 반백의 할머니는 60대로 보였는데 유난히 주름이 많이 진 분이었다.
살가죽과 뻐 사이의 살이 다빠져서일까. 상필은 이런 사람을 알라바마 주나 미시시피 주 그리고 텍사스 주의 시골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 치열하게 경쟁하고 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발버둥 치다가 나이 들어 저절로 힘이 빠져버린 사람들. 그들은 대게 이가 빠져 있었다.
앞니가 빠진 사람들은 대부분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린다. 늙으면 이가 빠지지만 보통은 의치를 해 넣는다. 그런데 미국에서 의치는 보험으로도 커버 안 되는데다가 비용이 너무 비싸 가난한 사람들은 해 볼 생각을 못한다.
이가 빠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 상필은 이들을 불구자라고 생각했다. 팔 다리가 없는 사람들만 불구가 아니라 이가 없는 사람도 일종의 불구자들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불구자가 되어 죽게 되지만… 할머니의 얼굴에서 모든 것을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편안함도 함께 있었다.
상필이 쌀알 만한 소라 껍데기로 만든 1미터 남짓한 목걸이를 집어들었다. 할머니가 웃으며 손뼉을 쳤다. 상필이 지갑을 열고 카드를 꺼냈다.
“No machine!”
상필이 카드를 집어넣고 100달러 짜리를 꺼냈다.
“Too much, too much!”
손사래를 치며 너무 많다고 안 받으려는 것을 소라 컨테이너에 올려놓았다. 2시간 정도 니하우 섬을 둘러보았다. 상필은 이 불쌍한 섬에 관심이 없어졌다. 둘은 제임스가 기다리고 있는 헬기 착륙장으로 왔다. 제임스가 두 사람을 확인하고는 먼저 헬기에 오르며 시동을 걸었다. 헬기가 큰 소음을 내며 떠올랐다.
“바이, 니하우” 하고 레이는 마치 친구하고 헤어지듯 인사를 했다.
“호놀룰루로 돌아가는 거야?“ / “카우아이 섬에 들려서 점심을 해야지.”
“하나 물어볼게 있어. 왜 클럽에서는 니하우 섬에서 캠프를 한다는 거야?”
“응, 그건 이사회의 결정이야. 클럽의 젊은 회원들이 하와이 곳곳을 다 알게 하자는 거지. “
“레이, 질문 하나 또. 난 말야, 큰 바다사자나 바다 새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자연환경 운동도 좋지만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
“오우, 마이 상필!” 레이가 갑자기 상필의 목을 끌어안으며 키스를 퍼부었다.
“상필, 어떻게 알았어? 상필은 하와이인들의 슬픔과 고통을 금방 이해한 거잖아. 고마워.” *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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