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코로나 19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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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이주 전 점심을 잘 먹은 후 넘치는 에너지로 지붕 위 처마를 손본다며 올라가더니 잔디밭위로 떨어졌다.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이층 발코니 기둥을 잡고 내려가다 당한 변이었다.
평소 같으면 패밀리 닥터에게 전화해서 정형외과 닥터를 볼 터인데 때가 때인지라 응급실로 갔다. 물론 둘 다 중무장을 하고 갔는데,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다행히 뼈가 안 부려져서 목발만 얻어가지고 나왔는데, 보험이 있는데도 700불이나 지불했다.
남편은 모처럼 트럼프가 보내준 공돈이 병원비로 나간 것이 무지하게 억울했는지, 어쨌든 이 일이 다 코로나 19 때문이라고 툴툴 거렸다. 여느 때 같으면 주말에도 항공사에 나가 일을 했을 터 인데 비행기들이 쉬는 바람에 집에 있게 된 게 원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남편은 퉁퉁 부은 발목 때문에 거의 이주 동안을 또 다른 스타일의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평상시 같으면 휴가 때 빼곤 남편과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을 일이 없던 나의 일상이 바뀐 것도 물론이다. 처음 이삼일은 화장실 가는 것 조차도 목발을 딛고 가야하니, 하루종일 붕대를 감았다 풀었다하며, 얼음찜질에 식사준비 몇 번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이런 나를 남편은 장난스레 여사님이라고 불렀다. 한국 요양병원에서 간병인들을 부르는 호칭을 흉내 내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코로나 19(?) 덕분에 환자와 여사님으로 졸지에 신분이 바뀌었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사님 호칭을 하루에도 수 십번씩 듣게 되었다.
그런데 평생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남편은 집에서 그냥 무위도식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지 평소에 안하던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화분갈이를 한달지 채소모종을 심거나 꽃이나 채소에 좋은 영양제를 사용할 때면 꼭 훈수를 두는 것이다.
그러나 나역시 코로나 사태 이후 집콕 하면서 유투브 스승들에게 배운 게 만만찮았다. 내 딴엔 코로나 19가 장기화 될 조짐이 보이자 자급자족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겨 흥미위주의 유투브 보다는 실생활에 도움이되는 유투브를 더 많이 시청하게 되었다.
가드닝 비법이나 홈 베이킹,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 비료 만드는 법등 평소엔 지나쳤던 유익한 동영상들이 차고 넘쳤다. 이주 내내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에서 제공한 오페라들을 섭렵하기도 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의 숫자를 볼 때마다 뭔가 살아있는 것이 내겐 필요했다. 하여 부엌 카운터 탑에 고구마, 양파 싹을 키우거나, 들꽃이나 뜰에 핀 장미, 난초 등을 부지런히 꽃병에 꽂아 두었다. 또한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계기로 가급적 육식을 줄이고 비건라이프를 살고자 노력하는 의미로 올해는 더 많은 채소를 심었다.
플래이노에 사는 지인이 갖다 준 여러 종류의 채소 씨앗 덕분에 지금 우리집 뒷마당 채소밭은 벌써 풍성하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 19는 인간이 만든 인재(人災)이다. 대량생산을 위해 동물들을 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집단 사육화 하고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그들의 영토를 침범하여 갈 곳 없어진 동물들이 인간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 각종 균을 퍼트리게 만들었다.
‘타이거 킹’이라는 다큐를 보면 호랑이 같은 야생동물 조차도 사육화시켜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무력화시키고 단지 비즈니스의 대상으로 만 삼는 인간모습을 보게 된다. 꼭 동물 애호가가 아닐지라도, 동물들을 잔인하게 대하는 인간은 인간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우리의 편리와 탐욕을 위하여 살아있는 생명체의 운명은 아랑곳 하지 않고 살아 왔다.
우리가 먹는 그 많은 육류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한 번 쯤은 돌아봐야 한다.
얼마 전 작은 아이는 코로나 19 때문에 미장원에 못가게 되자, 미용도구를 오더해서 직접 머리를 깍은 사진을 보내왔다. 나 역시 그로서리를 그렇게 자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평소 같으면 일주일 에 한 두번은 했던 자동차 주유를 3주만에 했다.
자가격리로 인해 공포와 지루함, 불안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도시의 하늘이 맑아지고 투명한 공기로 인해 자연이 돌아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도 부쩍 곰들의 숫자가 늘어났다고 한다. 인간에게 자신들의 영토를 내주었던 그들에게 코로나 가 모처럼 꿀 같은 휴식을 가져다 주었는지도 모른다.
저명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제 세상은 코로나 이전(BC)과 코로나 이후(AC)로 나뉠거라고 얘기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가져온 생태계 파괴가 인간에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우리는 이번 기회에 절실히 체험했다.
코로나 19 때문에 지금까지 지켜온 우리의 일상이 많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생태계 파괴가 계속 이어질 경우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재난이 닥쳐올지 두렵기도 하다. 자연의 경고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는 루소의 외침이 새삼 더 가슴에 와닿는 2020년 5월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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