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미니멀 라이프

페이지 정보

작성자 NEWS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0-07-17 10:02

본문

[문학에세이]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그러니까, 삼 일에 걸쳐 가지치기가 끝났다. 집 앞과 뒤란 화단에 있는 작은 나무들을 반으로 쳐냈다. 

둥글었던 모양새도 사각형으로 바꿨다. 작은 나무들이라고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덤불처럼 수북해졌다. 

 

낮에 흘려서 들은 얘기가 마음에 꽂혀 밤새 잠을 설쳤다. 신경 안 쓰고 살겠노라 마음은 먹었지만 나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인지라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삐죽삐죽 가시 달린 생각들이 가지에 가지를 치고 올라와 숲을 이루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우선 내가 살아야 하니 잘라내는 게 상책이 아닌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서성이다가 전지가위를 찾아들었다. 그동안 몸이 아주 편했던 모양이다. 잡생각이 들어와 똬리를 틀어도 몰랐다. 

 

오랜만에 가위질하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일단 키를 반으로 쳐내기로 했다. 큰 가지들은 손 가위로 먼저 잘라내고 잔가지들은 양손으로 하는 큰 가위로 자르기로 했다.

작년 같았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어깨에서 팔꿈치, 손목까지 난동을 부려 간신히 어르고 다독이면서 살지 않았던가. 코비드 19로 힘들다고 원망만 했는데 그 덕에 좋아진 것도 있다. 

교정을 받으며 겨우 일만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젠 큰 전지가위를 양손으로 쥐고 척척 가지를 쳐내고 있으니 신이 났다.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잘 안 보인다. 그럴 땐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나서 보면 한 눈에 들어온다. 

작년 가을에 나무 깎는 사람들을 불러 잘라내고 다듬었는데 그동안 참 많이도 자랐다. 끊어진 가지에서 다시 길을 내고 올라오는 가지들. 조용하게 제자리에서 자라는 나무가 제일 예쁘다. 

하지만, 나무를 자를 때마다 통째로 뽑아내고 싶은 나무가 있다. 도대체 정원수로는 부적합한 나무를 왜 심은걸까. 그런 나무는 다른 나무 속까지 터를 넓혀 사방으로 뿌리를 뻗었다. 

다른 나무가 몸살을 앓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섭게 번지며 없는 틈도 만들어서 밀고 올라온다.

우리 집 앞마당 가에는 큰 물푸레나무 두 그루가 있다. 같은 날 똑같이 심었을 텐데 잎이 올라오고, 단풍이 들고 또 잎이지는 순서까지 다르다. 집 쪽으로 붙어 있는 나무가 매년 모든 일을 먼저 한다. 무슨 일이든 말 안 해도 척척 미리 알아서 하는 사람같다. 

작년에는 길쪽으로 붙어있는 나무가 오랫동안 잎이 올라오지 않아 죽은 줄 알고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늦잠을 잤던 모양이었다. 시작이 늦긴 했지만, 그런대로 제시간 다 채우고 늦게라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성실한 사람같았다.

뒤란에 있는 백목련은 밑동부터 올라온 가지 두 개가 나란히 잘 자라고 있다. 두 가지가 크고 작지도 않은 게 꼭 단짝 친구같다. 대문 앞에는 큰 가지가 세 개였던 소나무가 있었다. 중간크기의 가지 하나가 말라서 잘라냈더니 몇 해를 시름시름 앓다가 송두리째 죽고 말았다. 

시기와 질투로 무너지고 마는 관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가에 있는 옆집 단풍나무도 그렇다. 봄이 다 올 때까지 잎을 떨구지 않는다. 잔뜩 심통이 났든지 아니면 욕심이 많아 내려놓을 줄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가슴에 씨를 뿌려놓으면 물도 주고 햇빛도 주어 잘 자라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냥 내버려두고 방치해두면 예쁘게 뿌리를 내릴 수가 없다.

가끔 삐죽삐죽 올라오는 웃자란 가지도 다듬어 주고 사랑을 줘야 건강하게 좋은 향을 품고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토양이 맞지 않는 곳에 씨를 뿌리면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결국 거두는 것도 씨를 뿌린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거둘 때는 상처가 남지 않도록, 잔뿌리가 남지 않도록 마무리를 잘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때로는 슬프지만,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말벌소리만 무성한 잔가지에는 열매는커녕 작은 새 둥지 하나 틀지 못한다.  둘째 날이었다. 첫날과 다르게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중무장을 했는데도 그만 손등을 벌에 쏘이고 말았다.

우리 집 추녀 밑 작은 나무숲에 집을 짓고 살았나 보다. 그곳에서 알을 낳고 새끼 벌들을 키우며 가정을 꾸렸던가 보다. 그걸 첫날 내가 가지를 치면서 집을 허물어 버린 게 분명하다. 보복이었다. 

하지만 허방에 지은 집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쯤은 벌들도 알고 있었으리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를 공격해서 얻는 게 뭐가 있을까. 아마 그건 충격에 대한 대가였다. 그리고 아픈 것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기겁하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니 식구들이 난리가 났다. 하지 말라고 하니까 기어이 또 나갔다고 알코올로 문질러 닦아주면서 야단법석, 잔소리에 귀가 더 아프다. 식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5분 만에 접고 말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잠잠해진 틈을 타 다시 나갔더니 남편이 따라 나왔다. 전기톱으로 하면 쉬운 일을 왜 혼자 하느라 법석을 떠냐며 벌게진 내 얼굴을 보며 전깃줄이나 잡으라고 통박을 준다. 

 

나를 다듬는 일에 왜 남의 도움이 필요한가. 남을 깎고 다듬으려 하기보다는 나를 자르는 것이 쉬운 일임을 이 나이 먹고서야 알게 되었다. 돌아보면 다 내 탓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 사과의 말을 듣고 싶으면 상대방 말을 막아선 안 된다. 

받고 싶으면 먼저 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지치기하면서 참으로 많은 걸 배웠다. 슬픈 일, 안 좋은 일에 함께 슬퍼해 주고 위로해주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쁜 일에 진정으로 기뻐해 주고 축하해주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인정하기로 했다. 

이젠 원하지 않아도 미니멀 라이프를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생활이 그러하니 관계 또한 당연해진 만큼 생각도 미니멀해져야 할 때인 것 같다.  

 

끊어진 길에

다시 길을 놓기 위해

가지들을 친다

숨을 고른다

 

잘라내도

다시 돋는 인연, 그 잔상들

때로는

덧나고 진물도 흘렀지만

견딘 만큼 고요해진 수형을 만난다

 

잘리면서 잡혀가는 

조금은 가벼워진 무게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나를 본다

 

오늘도 

나의 잔가지들을 잘라내야 하겠다

 

숨을 고른다

김미희, (가지치기) 전문

 

김미희시인 /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문학에세이]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그러니까, 삼 일에 걸쳐 가지치기가 끝났다. 집 앞과 뒤란 화단에 있는 작은 나무들을 반으로 쳐냈다.둥글었던 모양새도 사각형으로 바꿨다. 작은 나무들이라고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덤불처럼 수북해졌다.낮에 흘려서 들은 얘기가 …
    문학 2020-07-17 
    매일매일 쌀을 씻지만 내가 그동안 제대로 하고 있었는지 모르셨다면 오늘 칼럼을 통해 제대로 된 쌀 씻기와 쌀뜨물 활용법을 적극 이용해 보세요. 작은 변화가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쌀 씻을 때는 쌀 먼저? 물 먼저?쌀을 씻으실 때, 밥솥에 쌀을 먼저 넣고 물을…
    문학 2020-07-17 
    주님을 거역하면 추방될 것이다.때는 1800년대, 페르가 덴마크 최고 기술대학 합격통지서를 받는다. 목사이신 아버지는 페르가 자신의 뜻대로 결정한 것에 불만을 표하면서 한 푼도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그리고 코펜하겐으로 떠나는 페르에게 아버지는 주안에서 몸 가짐을…
    문학 2020-07-17 
    올해도 어김없이 이곳 텍사스의 무더운 여름은 시작되었다.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개인 세무보고 연장 마감인 7월 15일은 지켜질 것이다. 통상적으로 4월 15일이 마감일이나 올해는 3개월 자동연장을 해준 셈이다.물론 기존처럼 10월 15일까지 연장도 가능하지만 이는 …
    회계 2020-07-10 
    미란과 지숙은 대학을 졸업한 지 이십 년 만에 휴스턴에서 만나게 되었다. 영국에 사는 미란의 언니가 남편직장 때문에 휴스턴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미란이 친정엄마를 모시고 휴스턴을 방문한 것이다.미란의 형부는 정유회사를 다니는 영국인이었다. 팔십년 대초 많은 간호사들이…
    문학 2020-07-10 
    부동산 투자에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정보를 선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남보다 빨리 고급정보를 입수해서 결단력을 가지고 결행해야 한다.하지만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장이 과열되고 나서야 뒤늦게 투자에 나서 상투를 잡거나 실패하…
    부동산 2020-07-10 
    주식시장으로 자본 유입이 확대되고 실업률이 점차 낮아지고 있어서 이제 바닥을 찍은 경제가 회복모드로 바뀌고 있다는 낙관론이 퍼지고 있다.그러나 경제환경의 변화와 관계없이 사업체를 경영을 하고 있는 많은 한인 사업가들은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있다.이렇게 사업…
    리빙 2020-07-03 
    임산부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세들에는 허리통증, 골반통증, 구토, 소화불량, 손저림등이 있습니다. 임신기간 중 약물의 사용은 태아나 산모에게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카이로프랙틱 치료는 임신 중 발생하는 여러 증상들을 부작용 없이 …
    리빙 2020-07-03 
    ‘벌써 다 왔어?”“그러엄. 니하우 섬과 카우아이 섬은 27킬로 떨어져있어.”“수영해서 갈 수도 있겠네.”헬기가 니하우마를 떠나 30분도 안되어 카우아이 섬의 리후에(Lihue) 공항에 수직으로 착륙했다. ‘Welcome to the Garden Island’라는 매우…
    문학 2020-07-03 
    코로나 19 사망자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은 다름 아닌 ‘기저질환’일 것입니다. 이는 사망자 대다수가 기저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보건기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 세포에서 증가되는 전환효소(ACE2)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결합하면서 …
    문학 2020-07-03 
    「넌 자유다, 사무엘」1856년 버지니아 리치몬드, 깊은 밤중에 사무엘이 동료인 빅핸드와 함께 어머니, 아내, 아들의 쇠사슬을 풀어주고 도망을 간다. 잠시 후 농장의 노예관리인이 이를 발견하고 뒤를 쫓는다.그런데 얼마를 가다가 빅핸드가 자신이 뒤쫓는 자들을 유도하겠다고…
    문학 2020-07-03 
    집보험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보상의 범위가 넓은데. 손해가 발생할 경우 크게 네 가지 영역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집 건축물, 개인 소유물, 집 주인 책임보험 그리고 보험처리가 진행되는 동안 집에서 지낼 수 없게 된 경우에 들어가는 추가 생계비용 등이다. 집…
    리빙 2020-06-26 
    오늘도 여권은 오지 않았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주지 않는 것이 신의 뜻인가 보다고 아쉬운 생각을 저편으로 몰아넣기에는 여전히 안타깝고 속상하다. 이왕에 주시는 거면 크게 한번 쓰시지 하며 투덜거리는데 “꿈에도 그려본 적 없었던 큰 상을 받아놓고 툴툴대기에는 욕심이 너…
    문학 2020-06-26 
    무더운 여름철에 저렴한 가격으로 사랑받는 과일이 바로 수박입니다. 특히 텍사스에서는 더운 여름 더위해소 끝판왕인 수박의 인기가 참 많습니다.수박은 수분함량이 90% 이상으로 갈증해소에 무척 좋고, 또 과당 및 포도당 등이 함유되어 있어서 더위에 지친 몸의 피로를 빨리 …
    문학 2020-06-26 
    절박함은 전진하는 자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가장 귀중한 벗이다. 그 절박함이 불가능한 꿈을 당신의 꿈으로 이룰 수 있게 할 것이다.자신이 이룰 수 없을 정도의 큰 꿈을 가지고 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 날 그 꿈을 이룬 그날을 보게 될 것이다. 마치 내일 죽을 것처…
    부동산 2020-06-26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