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뉴노멀- 새 일상”에서의 자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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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집 앞 레드옼트리 높은 가지의 블루제이 가족. 뒷마당까지 세를 넓혀서 까마귀들이 얼씬도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킹버드에게 뒷마당을 내주고는 경계신호인지 아침마다 그악스럽다. 모킹버드 또한 만만하지 않아 둥지 틀 즈음 탐색 나왔던 큼지막한 까마귀를 모질게 쫒아버렸다. 피칸나무 우둠지에 집을 짓고는 각종 소리흉내와 날갯짓으로 진순에게 겁을 준다. 너구리, 파썸, 까마귀 잡던 시절도 있던 진순. 피칸나무 아래 집으로 쫓겨 간다. 여러 새들 특히 레드카드넬과 로빈, 슬픈 소리의 ‘mourning dove-애도비둘기’도 다녀가는 우리 집 뒷마당. 순리 따라 사는 자연에도 코비드19같은 복병이 있었을까. 코비드19가 천재(天災)가 아닐 수도 있다지만 우선은 최소의 희생으로 퇴치되기만을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조카가 보낸 카톡 결혼초청장. 마스크 쓰고 가족친지 일부만 참석하며 피로연을 못해도 순리 따라 식을 올리고 새 가정을 이루는 조카에게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내 ‘작은둥지’가 있는 스튜디오 살롱은 50여개의 방마다 미용케어 전문가들로 꽉 차 있었다.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 ‘감염 확률위험 순위 7단계’라니 봉쇄해제에도 10여명만 남았다. 그 마저도 각자 예약시간에 방문 닫고 일하니 한 건물 안에서도 얼굴보기가 어렵다.
엄마가 많이 아프던 ‘아이래시 케어’친구를 화장실 앞에서 몇 달 만에 만났다. 엄마가 어떠시냐는 물음에 고개를 떨군다. 심장질환으로 돌아가셨고 화장해서 아버지 옆에 묻어 달라고 하셨는데 코비드19로 화장예약이 밀려 두 달을 기다렸단다. 타주에서 형제들이 올수도 없는 상황이라 자기가족만 장례예배를 드렸다고 했다. 허그는 커녕 토닥여 줄 수도, 따듯하게 손잡아 줄 수도 없는 먹먹한 마음을 카드에 캐시를 담아 전했다.
‘싸이드주차장에 주차했음’ 손님의 전화 텍스트! 내 안경과 마스크와 페이스실드를 확인 후 싸이드도어로 가서 ‘푸시 바’를 등으로 밀어 문을 완전히 열자, 차안에서 기다리던 손님 L이 장갑에 고글과 마스크를 하고 들어선다. 눈으로 환하게 웃으며 마스크가 예쁘다고 칭찬하자 친구가 만들어 소포로 보냈단다. “마스크 착용!”을 도배하듯 붙여놓은 살롱의 안과 밖, 통로의 모든 액자장식과 대기용 소파와 화분들도 모두 치웠다. 텅텅 비었는데도 바닥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스티커를 붙였다. ‘턱스크’하던 일부 미용사들도 이제는 제대로 가린다. 마스크를 못 쓰겠다던 몇몇 손님도 이제는 적응이 됐나보다. 손님 보낸 후 방에 소독제를 뿌리고 잠시 밖에 있다가 다음손님을 데리고 와서 손에 소독제를 뿌린 후 네일을 시작한다.
신장의사 정기검진을 다녀왔다. 까다로운 질문 후 전화지시대로 빌딩 밖에 주차하고 다시 전화하니 로비로 들어오라 한다. 여행했느냐, 가족 중 코비드 환자 있느냐, 주위의 접촉자 중에 발병자가 있느냐 등 로비에서도 질문 후, 열 체크하고 손목에 방문객 표를 채워준다.
엘리베이터 안에도 구석마다 4명이 서야할 자리의 신발표시. 2층에서 내려 문 앞에서 또 전화 후 드디어 진료실. 이중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고 검사 후에 제발 마스크 없이 내년에 보자는 의사. 여전히 친절하고 밝은 여의사의 농담에 웃었다. CVS에서 드라이브 스루로 처방약을 받는데 늘 열리던 창문대신 손 벌리듯 열리는 작은 문. 그 곳으로 약과 돈을 주고받았다.
마스크와 핸드폰과 컴퓨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 코비드가 가져온 뉴노멀이다.
집 밖에 나서면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고 언택트(비대면)문화가 확산되어 각종 상거래는 물론 영상예배와 성경공부, 아이들 여름성경학교도 온라인으로 하는 세상이 되었다.
국립국어원은 뉴노멀을 ‘새 기준, 새 일상’으로 웨비나를 ‘화상 토론회’로 선정했고 온라인 개학, 화상회의, 원격진료 등을 새로운 표준어로 발표했다.
예배를 동영상이나 Zoom으로 드리다 보니 예배자세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한국 0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보너스은혜를 받는다. 우리 집에서 매주하던 수요일 영어성경과 오디오북 읽기를 Zoom으로 하니 린데일과 동부에서 세분이 더 참석하게 되었다. 기존 멤버와 시간과 지역을 초월해서 함께함에 은혜가 새롭다. 코비드19의 후유증도 많지만 성령의 자유케 하심으로 받는 은혜가 더 크다. 그로서리 앞에서 근 일 년 만에 만난 0목사님부부! 마스크 쓴 얼굴에 떨어져서 손 흔들며 인사해도 시절이 이래서 안타깝지만 건강하게 직접 뵐 수 있음이 감사했다. 지인 몇 분이 각자 커피와 빵을 준비해서 아침 7시 반, ‘조찬모임’을 우리 집 뒷마당에서 갖기로 했다. 물론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떨어져 앉아 만나지만 근 일 년 만에 만나는 ‘양로원의 네일 자원봉사멤버들’ 기대되고 즐겁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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