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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사탕수수밭 노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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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EWS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0-11-0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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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가 카우아이 섬을 낮게 선회하고는 고도를 높혔다. 상필은 이제 어디로 가는지 레이에게 묻지 않는다. 뭐든 레이에게 맡겨놓은 상태였다.

그냥 따른다는 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넘실대는 하와이의 푸른 바다를 내려다 보다가 상필이 잠깐 잠든 사이 헬기가 올드 하와이안 클럽의 옥상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췄다.

“여기가 어디지? 벌써 왔나?” / “저녁식사는 6시에.”

레이가 상필을 어느 방에 안내하고는 다급히 나가버렸다. 상필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레이가 상필을 흔들어 깨웠다. 깊이 잠이 들었나 보았다. 

 “잠시 휴식하라고 했지 자라고 했어?”

레이가 뾰족하게 말하며 진짜 마누라라도 된 것처럼 옷을 갈아입으라고 내밀었다. 레이는 어느 새 진홍의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턱시도, 뭐 이런걸 다 입지. 사실 상필은 그때까지 턱시도를 입어본 적이 없다.

“턱시도? 이거 결혼식 때나 입는 걸로 아는데.”

“올드 하와이안 클럽의 디랙터, 나의 신모이신 마하리 님이 저녁을 한턱 쏜다고 하셨어. 정장을 하고 싶어서. 내 옷 어때?” / “멋있어. 멋있어. 레이는 정말 예뻐. 특히 빨강색이 잘 어울려. ” 

상필이 레이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두 뼘이나 될까 황홀했다. 한국의 또래 친구들이 예쁜 여자친구를 소개하며 으시대는 걸 보면서 ‘못난 새끼들’이라고 했는데, 미안, 자랑스런 그런 기분 알겠다.

카메하메하 1세와 왕실 가족의 거대한 벽화가 있는 그랜드 볼 룸으로 갔다. 레이의 신모 뚱뚱한 마하리가 두 팔을 벌려 격하게 환영했다.

“수고 많았어요.” / “그냥 관광 했는데요.”

식탁에 앉자 마하리는 이것 저것을 물어오며 상필과 레이가 어쩜 그리 잘 어울리는 한 쌍이냐는 것으로 끝내고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휴우!” / “힘들었어?”

마하리는 상필이 마치 자기 사위라도 된다는 듯 마구 휘둘렀다. ‘레이한테 잘 해야 돼’하며 어깨를 칠 때는 상필이 넘어질 뻔 했으니까. 상필과 레이가 비로소 구속에서 풀려난 듯 여유를 갖고 커피를 들었다.

“이 커피 하와이  ‘코나 커피’야. 맛이 어때?” / “엉? 커피 맛은 다 같지않아? ”

상필이 설탕을 서너 스푼이나 커피에 넣고는 작은 스푼으로 저어서 후루룩 마셨다.

“상필 씨는 때로 무식해, 설탕을 그렇게 많이 넣다니, 그러니 커피 맛을 모르는 거지. 이거 알아요? 내가 어렸을 적에 읽은 책인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이가 새까맣게 썩어있었다는 거.” / “엥? 여왕께서 이를 잘 안닦으셨나?”

“그게 아니고 여왕은 설탕 애호가로 평소에 설탕을 많이 드셔서 설탕의 당분 때문에 이가 삭아서 그랬다는 거예요.”

“그 고귀하신 분이 왜 그토록 건강에 안 좋은 설탕을 상습하셨을까? 과다한 설탕 섭취는 당뇨병, 비만, 그리고 충치같은 질병을 낳는다는 것, 요새는 어린애들도 아는데…”

“그 당시 설탕은 화이트골드(White Gold)라 해서 아주 귀한 물건이었지. 왕이나 귀족들만 먹을 수 있었어.” / “맞아. 나도 그 쯤은 알지.”

 “엘리자베스 여왕과 귀족들이 달달한 설탕 맛을 즐기고 있을 때 그 설탕을 만들기 위해서 아프리카의 수백만의 흑인노예들이 팔려나가는 슬픈 역사가 전개 된거지.”

 

영국은 카리비안 지역 자마이카, 바베도스 같은 곳을 식민지로 만들고 그 곳에 설탕 플렌테이션을 만든다. 설탕 생산의 문제는 재배와 가공이 노동 집약적이라는 것이다. 키가 5미터나 되고 수분을 머금은 무거운 사탕수수를 자르고 으깨고, 농축시키고 끓이고 해서 정제로 만드는 이런 노동을 원주민들 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었다. 그래서 동원된 것이 아프리카의 노예들이었다. 

대부분 아프리카의 노예들은 어이없게도 무작위로 잡혀온 보통 마을 사람들이었고, 이들 노예잡이들 역시 같은 이웃들이었다. 잡혀온 노예들은 노예상인들한테 넘겨 겼고 노예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배에 실리어 카리브 해안 사탕수수 농장에 팔렸다. 

사탕수수 업자들은 노예무역에서 이익을 챙기고 설탕을 고가에 팔아서 이익을 챙겨 이중삼중의 이익을 봤다. 기록에 의하연 어느 영국 사업가의 개인 소유의 노예가 2,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매가 매를 잡는다는 얘기군.” 

설탕 플랜테이션은 아프리카 노예들이 없었다면 번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뭐든 합법적인 것을 좋아하는 영국은 노예제도를 합법화 하고, 합법적으로 노예무역을 시작했다. 

노예제도는 캐리비안 지역의 영국의 식민지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고, 1807년도에 노예무역이 금지될 때까지 350만 명의 노예들을 아프리카에서 실어 날랐다. 현재 자마이카 인구의 대부분은 이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후손들이다.

 

1931년 영국 연방이 성립할 때까지 전 세계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인구와, 전세계 면적의 1/4에 해당하는 영토를 차지하여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얻은 나라 영국. 지구 어디를 가나 유니언 잭 깃발이 휘날렸으니, 그 깃발은 짓밣힌 자들의 함성이었다.  

“그런데, 레이는 설탕과 아프리카 노예에 얽힌 이야기를 어찌 그리도 잘 알아?”

“응, 대학에서  ‘하와이 주 사탕수수 농장’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알았어.”

“그렇구나. 그럼 하와이 사탕수수 밭도 노예들이?”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은 1825년 캐리비안 지역에서 사탕수수 재배업에 종사하던 윌킨슨(John Wilkinson)이 처음으로 시작을 했어. 그 때는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대신 노동계약서를 쓰기는 했지만 엄청 불공정한 것이었지. 당시 사탕수수는 하와이 섬에 야생으로 자라고 있었는데, 윌킨슨이 조직적으로 대규모의 사탕수수 재배 농장을 경영한거지. 이를 위해 1852년 중국 광동 지역의  노동자가 오고 이어서 일본, 그 다음 1903년에 한국인들의 노동이민이 시작된 거야.”

“여왕의 설탕 사랑이 세계를 움직였군.” / “누군가의 욕심이 누군가의 눈물이 되는 일은 많지요.” **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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