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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되찾은 소중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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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8-0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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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시인 / 수필가
김미희 시인 / 수필가

 큰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집에 왔다. 나의 온 세상이었던 아이가 자라 그의 온 세상을 품고 온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과 함께 온 그 작은 생명체는 조용했던 집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두 주 전부터 데이케어에 다니기 시작한 손자는, 아빠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 작은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동시에 이 맹목적인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인류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이유는 이런 사랑 덕분일 것이다.


 아이의 방문은 온 가족을 단숨에 행복으로 몰아넣었다. 작은 손자 앞에서 모두가 싱글벙글하며 바보가 된 것처럼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아이의 반짝이는 눈에는 세상의 모든 호기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이 그렇게 궁금한지, 쉴 새 없이 종알거리며 묻고 대답하는 듯한 그 작은 입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아이를 중심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세 시간을 보냈다. 손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그 시간은 오랜만에 맛본 진정한 행복이었다.


 나는 문득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해가 뜨면 일하러 나가고, 겨우 잠만 자러 들어오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이민 초기의 삶이 아마 모두 같았을 것이다. 큰애가 잠든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고집을 부려 데리고 잤지만, 몇 시간 못 자는 잠이라도 편히 자라는 엄마의 성화에 작은 아이는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서 작은 아이는 할머니가 엄마인 줄 알고 자랐다. 작은 아이는 유난히 낯가림이 심했다. 내가 안으려 하면 울면서 할머니만 찾았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며 아이와 함께 울곤 했다. 그런 시절을 떠올리니, 아이들이 세상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고 행동하고 말을 했던 순간들을 놓친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내가 손자의 등장에 더욱 애정을 느낀 이유는, 아마도 내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일에 치여,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우리는 아이들을 굶기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았던 것 같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해 챙 넓은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일만 생각하고 오늘을 희생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첫 걸음마를 떼고, 처음 말을 하는 순간들을 제대로 함께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평생의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손자를 통해 그때 놓쳤던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금 경험하고 있다. 이 작은 생명체가 집안에 들어오면서, 나는 다시 한번 어린 시절의 아이들처럼 순수하고 맑은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손자가 좋아한다는 음악을 틀어주자, 아이는 조용해졌다. 궁둥이를 밀어 아빠 무릎에 앉더니, 귀를 쫑긋 세우고 음악에 맞춰 손짓을 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시늉을 시작했다. 몇 곡이 계속 이어져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 작은 아이의 손짓과 몸짓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과거에는 놓치고 살았던 이런 작은 행복들을 이제 와서 다시금 경험하게 되는 것이 마치 새로운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손자가 떠난 뒤, 집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아이가 놀다 간 자리는 텅 빈 운동장처럼 쓸쓸해 보였다. 아이를 맞이할 준비로 분주했던 몸은 이내 천근만근이 되어 침대에 누웠다. 식구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코스트코에 가서 손자와 아들이 먹을 연어와 수박을 사고, 계란을 삶느라 난리를 치던 남편도 피곤한지 조용해졌다. 다들 오수에 빠진 모양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세월의 흐름은 아이들을 키울 때 느끼지 못했던 작은 행복들을 이제서야 깨닫게 해준다. 과거의 아쉬움을 이제라도 손자를 통해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가지만, 동시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손자가 남기고 간 그 따뜻한 시간들이,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이내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보았다. 손자의 손길이 닿았던 장난감들이 여전히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문득, 장난감 하나를 주워들자 손자의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작은 후회의 씨앗이 그 순간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손자가 준 이 새로운 경험은 단순히 기쁨에 그치지 않고,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달라졌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나의 사랑과 애정은 그대로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자라고, 손자 손녀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나는 또 다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 역할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아쉬움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기쁨과 성장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이렇게 세대를 이어가며 서로의 삶에 의미를 더하게 될 것이다. 손자의 방문은 내게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그날 밤, 손자의 웃음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소중한 기억들을 마음 속에 새겼다. 앞으로도 시간이 흐르겠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존재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손자와 함께 보낸 이 시간이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미래의 또 다른 세대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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