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2세, 부모도 몰랐던 ‘중간 아동기’의 특별함
아기 때는 첫걸음마 하나에도 온 가족이 환호하고, 사춘기가 되면 부모들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 사이, 6세부터 12세 사이의 시기는 상대적으로 조용히 지나간다. 눈에 띄는 이정표가 적어 자칫 무심코 흘려보내기 쉽지만, 전문가들은 이 시기야말로 아이의 사고력과 정서, 자아상이 가장 활발하게 자라는 때라고 말한다. 신체 성장이 잠시 완만해지는 사이,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아기도, 사춘기도 아닌 ‘그냥 아이’로 지내는 이 몇 년의 가치는, 지나고 나서야 뒤늦게 실감하는 부모가 많다.
■ 눈에 띄지 않아도 가장 중요한 성장이 일어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시기는 신체적으로는 성장 속도가 완만해지지만, 인지·정서 발달은 오히려 속도를 낸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따르던 아이가 스스로 궁금한 것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고, 우정도 한층 깊어진다. “뭘 해야 해?”라고 묻던 아이가 “이게 왜 이런지 알고 싶어”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동시에 또래와 자신을 비교하는 일도 늘어난다. “친구들에 비해 나는 얼마나 잘하고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는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아이가 자신의 능력과 가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는 결정적 시기로 본다. 청소년기까지 이어질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의 기초가 이 무렵에 대부분 다져진다는 것이다. 큰 이정표보다는 매일매일 부모나 보호자와 주고받는 사소한 대화와 반응이, 아이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조용히 빚어간다는 설명이다. 겉으로는 특별한 사건이 없어 보여도, 아이 안에서는 평생 지니고 갈 자아상의 뼈대가 세워지고 있는 셈이다.
■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시기

이 시기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스스로 발견해 나간다. 오디오북을 종일 듣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발레나 레고에 푹 빠지는 아이도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를 배우고, 시를 써보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악기를 독학하고, 좋아하는 만화 전집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으며 직접 이야기를 지어보기도 한다. 부모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골라낸 취미라는 점이, 이 시기 몰입을 특별하게 만든다.
어른의 걱정거리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남의 시선을 아직 크게 의식하지 않는 이 시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연히 마주친 취미 하나가 평생 함께할 관심사로 자리 잡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자기 발견과 취미 형성에 가장 좋은 때’로 꼽는다. 부모가 억지로 이끌지 않아도, 아이는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 자기 자리를 스스로 찾아간다. 한 가지에 오래 빠져 있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것으로 관심을 옮기기도 하는데, 이 역시 아직 탐색이 끝나지 않았다는 자연스러운 신호로 보면 된다.
■ 대화가 깊어지고, 여전히 손을 잡고 싶어 한다

이 시기 아이들과의 대화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다.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제법 진지하고 파고드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어려운 주제라도 아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주면, 예상보다 훨씬 깊이 있는 질문이 돌아오기도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와 한층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동시에 이 시기는 묘하게 모순적이다. 동네를 자전거로 씽씽 달리고, 어린 동생을 봐주고, 복잡한 만들기도 설명서만 보고 척척 해내는가 하면, 화장실에 혼자 가기 무서워 부모 손을 붙잡기도 한다. 사람들 앞에서 부모의 뽀뽀를 받아주고, 여전히 부모와 손을 꼭 잡고 걷고 싶어 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부쩍 늘었지만, 아직은 부모를 완전히 놓지 않은 시기. 독립과 의존 사이, 두 세계의 좋은 점을 동시에 누리는 짧은 시절인 셈이다. 몇 년만 지나도 쉽게 손을 내밀지 않을지 모른다는 걸 알기에, 부모 입장에서는 이 시절이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 가족이 함께 노는 시간도 달라진다

카드 게임이나 보드게임의 규칙을 스스로 익히고, 어느새 어른을 이기기 시작하는 것도 이 시기다. 체스판 앞에서 진지하게 수를 고민하고, 저녁 내내 이어지는 보드게임 한 판에 온 가족이 웃고 다투며 몰입한다. 유아기 놀이처럼 어른이 일부러 져줄 필요가 없어지고, 아이의 실력 자체가 놀이의 재미를 키운다. 여행이나 외식, 영화 관람처럼 예전엔 번거롭던 일들도 한결 수월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모차와 기저귀 가방 없이 온 가족이 훌쩍 떠날 수 있게 되는 것도, 부모 입장에서는 새삼 반가운 변화다.
언젠가는 화장실 갈 때 손을 잡아주는 일도, 무릎에 앉히고 뽀뽀를 해 주는 일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지금 입은 캐릭터 잠옷은 훗날 동생에게 물려주는 옷이 될 것이다. 함께 짓던 이불 요새도, 사이좋게 다투던 보드게임 판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화려한 이정표 없이 지나가는 이 시기가, 돌아보면 가장 그리운 시절로 남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