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라스 한인 동포사회에 오랫동안 미뤄졌던 숙제 하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달라스 한인문화센터(KCCD)의 쇄신 문제다.
이번엔 예전과 다르다. 막연한 약속이 아니다. 날짜가 있고, 조항이 있고, “도망가지 않겠다”는 공개 선언이 있다. 그 선언을 들으면서 오랜 답답함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이 기대가 또다시 실망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였다.
KCCD는 2013년 달라스 한인들의 꿈에서 출발했다. 안영호·정창수 공동위원장을 중심으로 한인문화센터 건립추진위원회(건추위)가 발족됐고, 동포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십시일반 모금운동이 이어졌고, 2014년 11월 약 150만 달러를 들여 마침내 건물을 매입했다.
그러나 설립의 열기가 가라앉은 자리에 남은 것은 불투명한 운영이었다. 결산공고는 13년간 단 세 번. 이사회는 비공개. 이사진은 동결. 동포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수익이 어디에 쓰이는지, 동포사회는 알 길이 없었다.
2018년 동포 간담회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지만 흐지부지됐다. 2023년 가을, 동포 사회의 개선 요구가 재차 높아지면서 KTN은 공론화에 앞장섰다. 2024년 2월, 비로소 건추위가 해체됐고 임시운영위원회가 발족됐다. 당시 정창수 이사장이 선출되면서 “정관 수립, 재정 공개, 실무 이사진 구성”을 약속했다. 하지만 올해 3월 정기 이사회가 열릴 때까지 실질적인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KTN은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동포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사로 담고, 공론화했다. 어떤 이들은 “왜 굳이 문제를 들추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답은 분명하다. 동포사회의 공동 자산이 투명하게 운영되는지 묻는 것은 언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침묵이 편할 때도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신뢰는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쌓인다. KTN이 이 문제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KCCD를 흔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포사회의 보물인 이 공간이 제 역할을 다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올해 3월, KTN은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의미 있는 발걸음이 시작됐다.
KCCD 설립을 이끌었던 안영호 현 고문이 DK 미디어그룹을 직접 찾아왔다. 13년 전 달라스 한인회장으로서 모금운동을 이끌고 건립을 추진했던 그였다. 그는 KCCD 건립 이후 운영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정창수 이사장과 함께 쇄신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로부터 보름 후, 이번엔 정창수 이사장이 직접 DK 미디어그룹을 찾아왔다. 그는 그동안의 비공개·불투명 운영에 대해 동포사회에 공식 사과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쇄신 로드맵을 내놓았다.
핵심은 이렇다. 이사진을 교체하고,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발족해 견제와 자문 역할을 담당한다. 정관은 개정되고, 웹사이트를 통해 이사 명단, 정관, 재무제표, 이사회 회의록이 상시 공개된다. 그리고 실행 마감일을 9월 30일로 못박았다. 스스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각오였다.
리더에게는 언제나 공과 과가 함께 존재한다. 한쪽만 보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먼저 ‘과(過)’를 짚어야 한다. 10년이 넘도록 동포들의 성금으로 설립된 KCCD 운영을 비공개로 유지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결산공고 13년에 단 세 번, 비공개 이사회, 센터장과 이사직 겸직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방치됐다. 그것이 쌓아올린 의혹과 불신은 당연한 결과다. 약속이 반복되고 이행되지 않았을 때 동포사회가 느낀 실망 역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무게다.
그러나 ‘공(功)’ 역시 분명히 있다. 15만 달라스 한인 동포에게 문화센터가 필요하다는 비전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모금운동을 이끌고, 동포들의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마침내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 건물이 오늘날 400만 달러 이상의 가치로 우리 공동체의 자산이 된 것, 그 씨앗을 심은 이들의 공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번에 보여준 태도 또한 기록해두고 싶다. 문제 지적에 변명으로 맞서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안영호 고문을 비롯한 이사진이 잡음 없이 스스로 퇴임을 선택한 것 역시 아름다운 내려놓음이다.
지위에 집착하지 않고 때가 되면 자리를 비워주는 것, 한인 사회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흐뭇한 일이다.
물론 동포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신뢰란 말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일을 실제로 해냈을 때 비로소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KCCD에 넘어갔다. 마감일을 스스로 선언한 이상, 그 날짜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KTN은 쇄신의 과정을 꼼꼼히 지켜볼 것이다. 언론의 역할은 칭찬만 하는 것도, 비판만 하는 것도 아니다. 바르게 가는 길은 응원하고, 빗나가는 조짐이 보이면 즉시 알리는 것, 그것이 동포사회를 위한 언론의 책임이다.
더 나아가, 이번 일은 한인사회에서 단체와 언론이 어떻게 함께 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당사자들은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며, 함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 이것이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이다. 서로 견제하되 서로 돕고, 비판하되 함께 성장하는 관계 — 그 관계가 쌓일 때 한인사회는 더 단단해진다.
KCCD가 진정 동포사회의 자산으로서 투명하게 운영되고, 달라스 한인 단체들을 지원하고, 커뮤니티를 위한 보석으로 더욱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설립을 이끈 분들의 초심이 이 공간 안에 살아 숨 쉬기를 바란다.
우리는 같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북텍사스 한인 동포들이다. 함께하고, 함께해야 할 운명을 나눈 공동체다. 그 공동체의 거점인 KCCD가 이번에는 진짜 달라지기를, 함께 믿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