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도 아닌 초여름, 6월에 나는 난데없는 알러지와 고투 중이다. 나이가 드니 면역력이 점점 약해지는지, 걸핏하면 눈이 가렵고 진물이 생기더니, 급기야 그 주변 피부까지 부어오르고 발개지는 날이 잦아졌다. 처음 얼굴이 부어오르기 시작한 날은 유도화 가지치기를 한 날이었다. 지난 겨울 한파로 죽은 가지들이 그대로 있는 것이 너무 보기 싫어서 시작했는데 자고 나니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있었다. 병원가서 스테로이드 주사도 맞아보고 항히스타민제도 복용을 해봤지만 그때뿐이고 밖에 오래있거나, 외출해서 돌아오면 같은 증상이 다시 반복되었다. 의사는 알러지는 특성이 같은 부위에 반복되는 습성이 있다고 했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는데, 일단 집에만 있으면 증상이 덜하다. 그런 연유로 나는 올여름, 외출을 되도록 삼가고 집에 콕 들여 박혀 책이나 읽을 작정이다.
요즘은 책 소개 채널이 참 다양해졌다. <편집자k>처럼 대형출판사 편집자 출신 유튜버가 그동안 성공한 책 선정 안목을 발휘하여 책 소개를 하는 채널도 있고, 각 분야의 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북튜브인 김겨울의 <겨울서점>, 최근 세계 문학전집 시리즈 600권째 책을 발행한 민음사의 젊은 편집자들이 만든 <민음사 tv> 아나운서 이혜성이 책 추천이나 독서 토론, 작가와의 인터뷰를 주로 하는 <이혜성의 1% 북클럽> 등등 수도 없이 많다. 사실 독자 입장에서 국내외 할 것없이 하루에도 수백 권씩 나오는 책들 중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는 즐거운 고민 중 하나지만, 막상 책 주문을 하려면 책에 대한 정보 없이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특히 주문한 책이 예상과 다를 경우 그냥 책장에 방치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나만의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
첫째는 알라딘처럼 대형 인터넷 서점에서 제공하는 신간에 대한 미리보기를 이용한다. 주로 책 머리 3,4페이지를 보여주는데 그것만 읽어도 책의 성격을 대충 알 수 있고 내 취향과 맞는지도 감이 온다. 그리고 둘째는 책 전문 유튜버들이 소개하는 책이다. 이런 책은 당연히 검증된 경우가 많고, 범위도 다양하다. 베스트 셀러가 아니더라도 책을 좋아하는 고급독자들이 추천하는 것이라 일단 신뢰가 가는 점도 있다. 셋째는 지금 읽는 책과 연관성이 있는 책이다. 모든 책들은 책 속에 역사, 건축, 예술, 종교등 수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어 알고리즘을 형성한다. 우연이 계속 필연을 만드는 이유이다. 그 외, 장기간 스테디셀러인 경우는 인생 책인 경우가 많다. 이번에 읽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같은 경우가 그랬다.
1965년도에 출간된 이 책은 처음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작가가 사망한 이후에도 한동안 잊혀졌던 이 책은 2006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빈티지 틀래식스 편에서 다시 출간되면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건 고독하게 살다가 간 한 남자가 지닌 인생의 태도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 스토너는 성공보다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는 남자이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을 공부하길 원하는 부모의 뜻과 달리 우연히 들었던 문학 강의에 매료되어, 그는 영문학도의 길로 들어서며 교수가 된다. 세속적인 아내와 출세에 눈이 먼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갈등과 회의를 느끼지만, 그 어떤 역경에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다. 이 책은 뭔지 모르게 슬프고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그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요즘 가장 각광받은 미국작가인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도 추천할 만한 단편집이다.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미국인들의 삶을 진정으로 알고 싶은 이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작가는 겉으론 즐겁고 아무렇지 않은 듯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안에 있는, 상처와 비밀의 기억들을 아주 섬세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들려준다. 고급 미슐랭 식당에서 잘 차려진 정찬을 먹고 나오는 기분이 들며 세련된 작중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그 외 북튜버를 보고 구입한 책들이 여러 권 있다. 그중 월남전 참전 용사였던 팀 오브라이언이 월남전 동료들을 소재로 쓴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해양 생물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사브리나 임블러가 열 가지 바다 생물의 삶을 인간의 삶과 엮은 <빛은 얼마나 깊이 스미는가>는 참 흥미롭다. 중국계 어머니를 둔 혼혈아인 저자가 생물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특이한 시각이 감탄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소낙비에 해바라기가 젖고, 밤이면 개구리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과일나무는 소리 없이 익어가고, 텍사스 석양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때가 이때가 아닌가 싶다. 6월의 달력이 며칠 남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