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워싱턴 대학에서 통계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학교에서는 통계학을 응용하는 분야도 반듯이 같이 공부해야 한다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통계상담이란 코스를 듣게 했다. 나같이 수학에만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필요한 과목이었다. 과목을 가르치는 주디 제(Zeh) 교수님이 나에게 주신 상담 과제는 봄철 미국 알래스카주 포인트 바로우(Point Barrow) 인근을 거쳐 북쪽으로 이동하는 북극고래의 개체수를 추정하는 문제였다. 고래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던 나는 우선 ‘모비-딕’이란 소설과 다른 고래에 관한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고래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피상담자인 생물학자 부루스(Bruce)와 란(Ron)이 말하는 고래 인구조사는 알래스카의 북쪽 땅끝인 바로우곶(Point Barrow)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땅끝을 지나 언 바다 위로 20마일을 가면 봄이 되어 녹기 시작하는 얼음 사이로 북극을 향해 바다가 뚫리는데 강같이 뚫린 바닷길을 통해 고래들이 북극해에 있는 풍성한 먹이를 찾아서 줄줄이 이민을 한다. 이민을 하는 북극고래(Bowhead whale)의 수를 셀 수는 있지만 안개, 얼음, 어둠 등으로 인해 눈으로 다 찾아내는 전수조사가 불가능하므로 시야가 흐리거나 밤 시간대 등으로 빠뜨린 고래의 수가 많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 수를 바로잡아 정확한 개수를 통계적으로 추정하고 신뢰구간을 구할 수 있느냐는 것이 이들의 질문이었다.
이 고래 인구 조사팀은 얼음 가장자리에 두세 개의 관측소를 세우고 고래를 관측하는데 뒤의 관측소에선 앞선 관측소가 놓친 고래의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관측할 때 고래의 위치와 날씨, 시간, 시계 등을 꼼꼼히 적어놓고 놓친 비율을 계산하려 한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놓친 고래의 비율을 위치, 날씨, 시간, 시계 등의 함수로 만들어 시야가 흐리거나 밤 시간대 등의 오차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제(Zeh) 교수님과 나는 ‘다항 분포(Multinomial Distribution)’ 모델을 적용해, 이 오차를 바로잡았고 이 연구 결과를 잘 알려진 Biometrics라는 통계학 저널에 발표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과제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피상담자들이 다음 과제를 들고 왔다. 고래들은 안개 등으로 시야가 흐려 전혀 볼 수 없어도 계속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날씨가 나빠 관측소를 설치할 수 없을 때나 관측할 수 있는 거리 밖에서 이민하는 고래 수는 어떻게 샐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볼 수는 없지만 이민하는 고래들의 인구라. 아무래도 인구조사 현장을 직접 보아야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았다.
현장 보기를 원하는 내 요청을 들어준 고래인구 조사팀이 보낸 비행기표는 시애틀에서 앵커리지까지 가서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로 바꾸어 바로우(Barrow)란 곳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이곳 원주민인 에스키모들은 유전 개발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얻은 경제력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되찾기 시작했고 자기 말을 가르치며 ‘고래사냥’이 중심이 된 그들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허용된 고래사냥의 쿼터를 늘리려 했다. 그것을 위해 많은 연구비를 들여 과학자들에게 용역을 주는 한편 고래사냥의 쿼터를 조정하는 국제 포경위원회에도 과학자들을 파견하여 그들의 처지를 대변하게 한다고 하였다.
도착한 바로우는 4월인데도 영하 30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약 20여 명의 고래 인구 조사팀은 바로우 읍내를 지나 바로우 곶(Point Barrow) 북쪽의 얼은 북극해 위에 베이스 텐트를 치고 있었다. 연구팀에서 준 에스키모 장갑과 파카를 걸치고 신발 위에 두꺼운 장화를 신고 나와서 스노모빌에 올랐다. 사방이 다 하얗게 빛나서 헬멧에 부착된 눈부심 방지 안경이 없이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언 바다는 평평한 곳이 아니었다. 수많은 얼음 바위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고 그사이를 돌아 30마일 정도 가서 10미터도 넘는 커다란 초록빛 얼음 바위 옆에 멈추었다. 꼭대기를 깎아 만든 조그만 자리에는 바람막이가 병풍처럼 쳐 있고 두 사람이 서서 50 야드 전방에 있는 얼음판이 갈라져 생긴 바닷길을 지나가는 고래를 세고 있었다. 잿빛의 얼음조각 사이로 두 마리 혹은 세 마리 짝지어 지나가는 고래들이 숨을 쉬러 물 위에 올라와서 분수를 뿜고 있었다.
얼음 위에 세워진 조사팀의 텐트는 생각보다 무척 크고 훈훈했다. 구석에 슬리핑백이 깔린 야전 침대가 있고 그 옆으로 기다란 책상 위에 녹음기 네 대가 계속 돌아가며 뭔가를 녹음하고 있었다. 세 개의 수중 마이크를 50미터 간격으로 바다에 넣고 고래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 소리가 지나간 위치를 계산하고 고래의 자취를 만들어 그 빈도를 인구조사에 이용하려 한다고 했다. 볼 수 있는 거리는 기껏해야 4킬로미터인데 들을 수 있는 거리는 최소 수십 킬로미터가 넘기 때문에 소리로 더 잘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헤드폰을 끼고 들어보니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 또 카나리아 같은 새 노래가 들려 왔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 소리도 들려왔다. 꼭 깊은 산중 숲속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멀리서 흐느끼는 듯이 들리는 플루트 소리가 혹등고래(humpback whale)의 노래라고 했다. 물속을 흐르는 물바람 소리 사이로 짧고 낮은 황소 울음소리가 내가 연구하는 활 같은 입을 가진 북극고래(bowhead whale)의 소리였다. 새 소리는 흰돌고래(beluga whale)의 노래, 시냇물 소리는 얼음 밑을 흐르는 바닷물 소리. 보이지 않는 물속에는 내가 처음 듣는 엄청난 소리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방문을 끝내고 나는 제 교수와 함께 고래의 울음소리가 발생하는 위치(Sound Location)를 통계학적 알고리즘으로 연결해 고래의 이동 궤적(“Whale Tracks”)을 탐지하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고래 소리를 통계적 모델링으로 시각화하여 멸종 위기종이었던 북극고래의 정확한 개체수를 밝히게 되었고 결과를 좋은 학술지에 발표할 수 있었다. 이 연구 덕택에 내 박사학위 논문은 몇 달 늦어졌지만 ‘고래들의 노래’는 나중에 시와 소설의 소재로 쓸 수 있었으니 고래들은 나에게 충분한 보상을 했다고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