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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데스크칼럼

‘설날’ - 우리 민족의 ‘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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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오피니언 댓글 0건 작성일 20-01-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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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상 칼럼 / 짧은 글 깊은 생각





내일(1월25일)이 ‘설날’이다. 우리 사람들은 보통 태양력 새해를 맞으면 어느 정도 기분이 들뜬다. 그러다가 잠깐 그 기분이 가라앉을 만하면 또 다시 월력(月曆)의 새해, 즉 고유 명절인 ‘설날’이 기다리고 있어 다시 한 번 마음이 설레곤 한다. 왠지 사람들은 이 ‘설날’을 맞아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을 더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었던 고향을 찾아 흩어졌던 부모 형제와 친지들을 만나고 덕담을 나누며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한 것은 결코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예부터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온 ‘전통문화’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추석과 더불어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이란 어떤 날일까? 우리 동포 2세들은 이 ‘설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의미와 어원을 새로이 간추려 자라나는 2세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설날의 의미 : 설날은 본래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돌아가신 조상님과 자손이 함께 영적으로 함께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설날은 곧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즐거운 여가의 의미도 함께 지닌다.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서 조상님을 기리며 함께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인 것이다.





설날의 어원(語源) :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 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설날은 묵은 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轉移)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 (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愼日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라는 것.





자료를 뒤적여 19세기 세시기(歲時記)인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등을 찾아보았다. 이에 따르면, 설날에 떡국과 만두를 먹는 것은 돈 많이 벌고 복 받으라는 중국 풍습에서 왔다고 전한다. 설날 음식으로 떡국이 등장하는데, 멥쌀로 만든 흰 가래떡을 동전모양으로 썰어 꿩고기 국물, 혹은 닭 국물에 넣어 먹는다고 적혀 있다(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밀도 있다). 동전 모양의 떡국은 돈을 벌고 부자 되라는 의미고, 하얀 가래떡은 지난해 묵은 때를 씻어내고 새해에는 순수하고 흠 없이 맞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허나 요즘은 이제 ‘설날’의 그런 풍속도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떡국을 끓이기 위해 부엌 방에 둘러앉아 가래떡을 손수 썰던 정겨운 풍경은 찾아보기가 드물고, 대신 마켓에서 사온 봉지 떡국, 봉지 만두 껍질들만 휴지통에 그득하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은 고향엘 가더라도, 좋게 말해 고향의 부모님 힘 든다는 핑계로 시장 떡과 시장 부침개, 과일 등을 미리미리 마련하여 그것으로 조상님 차례 상을 차리는 가구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심지어는 온 식구들이 스키장이나 레저 시설로 놀러 가 당일에는 5만 원짜리건 10만 원짜리건 맞춤 차례 상을 가져와 차례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가히 인스탄트 시대의 백미(白眉)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이렇게 마치 검둥개 목욕하듯 대충대충 차례를 지낸다고 하니 조상 음덕(蔭德)은 커녕 커가는 아이들이 뭘 배울지도 걱정이다





하기야 시대가 바뀌었는데 구닥다리 옛 풍속을 그리고 꿈꾸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옛날에는 모두가 오로지 먹고 입는 일이 최우선이었기에 허겁지겁 살다가 그나마 1년에 한두 번 명절을 맞으면 평소보다 좀 더 잘 먹고 잘 입고 즐겁게 노는 맛에 그 날을 그렇게 기다리곤 했지만, 요즘이야 먹고 입고 놀 거리가 온 사방에 지천이니, 따지고 보면 굳이 명절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젊은 부부들은 오래간만에 휴일을 맞아 신랑 각시가 오붓하게 여행도 하고 또 뭔가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그보다는 먼저 시골의 부모님이 마음에 걸리고 또 뭔가 선물 꾸러미라도 마련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으로 되레 명절이 싫어진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고 하니 씁쓸하다.





더구나 요즘엔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다 보니, 혹 이러다가 앞으로 명절 차례 상도 카톡으로 찍어 엄마 아버지 사진 앞에 테블릿 PC 올려놓고 지내지 않을까 누가 장담 하겠나? 허나, 잊지 말자. ‘설날’ 그 고유 풍습은 우리의 ‘얼’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이 점점 메마르고 정(情)도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지금 우리가 몸담아 숨 쉬며 살고 있는, 이 밑도 끝도 없이 광활한 아메리카는 특히 명절이 되면 모든 면에서 그나마 모국의 그것보다도 좀 더 삭막하다. 설사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설 맞이 잔치 마당도 적지 않지만, 왠지 이런 명절이 다가오면 공연히 마음이 더욱 침울해진다. *





손용상 논설위원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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