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데스크칼럼
끝도 없이 민심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좀비들... 어찌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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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평(世評)은 이제 한국 시민사회는 ‘죽었다’고 말한다. 이른바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의 전 이사장 윤미향의 역대급 위선과 사기극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온 나라가 뒤죽박죽이다. 이를 둘러싼 추문은 한국 시민운동의 변질을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의’는 기억되지 않고 ‘불의’가 정의처럼 포장되고 있다.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이론을 증명하는 듯 하다.
사실 진보니 보수를 막론하고, 부르기 좋아 꽃 노래지 ‘시민운동’과 ‘현실정치’의 상호 침투는 필연적으로 시민단체의 권력화를 낳게 마련이다. 솔직히 시민운동이 운동가의 출세 지름길로 악용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리고 웬만하면 눈감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보수보다는 진보 진영에서 특히 더 두드러진다. 왜냐면 소위 보수는 어떤 사고를 치면 생리상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에 주춤거림이라도 하지만, 반면 진보(?) 깃발을 내세운 집단들은 수단과 방법을 먼저 가리기 보다는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 그 따위 것은 나중에 얼마든지 ‘자기 합리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몸에 배어있다.
근간 문 정권이 윤미향 사건에서 친여 언론. 시민단체들을 총동원해 여론 조작으로 교란작전을 펴는 걸 보면서 우리는 불과 몇 달 전의 조국 사태와 거의 똑같은 느낌을 갖는다. 왜일까? 이는 앞서 말했듯, 정권과 어용 시민단체들은 상호적 이해관계를 공유한 한 통속 한 몸이기 때문이다.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가 친(親)정부기구로 변신하고, 비영리단체(Non Profit Organization)가 이권단체로 타락하는 절차와 순서는 진보든 보수든 다 그 놈이 그 놈이다.
이에 대해, 정치비평가 한신대 윤평중 교수도 똑 같은 우려를 표시했다. “이번의 정의연 사건에서도 과거 조국 사태 때처럼 똑같이 진보시민단체가 총출동해 궁지에 몰린 살아 있는 권력을 엄호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정권과 시민운동이 이렇게 상습적으로 ‘초록 동색’의 프레임이 형성되면 결국 ‘시민사회는 국가에 의해 식민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의 식민화’…이거 무슨 말일까?. 윤교수는 이렇게 풀이한다.
-“세계사적으로 현대(modernity)는 국가와 시장을 견제하는 기능으로 제3의 독립 영역인 ‘시민사회조직’과 ‘시민운동’을 인정하고 권장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좋은 나라는 국가와 시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인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기능이 없으면, 현재의 중국과 북한처럼 국가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한다. 두 나라에 민주주의와 인권이 없는 건 시민사회 부재의 필연적 결과라고 보면 된다. 결국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의 식민화는 민주주의의 자기부정(否定)이자 중세 시대로 돌아가는 거대한 역사의 후퇴”라고 지적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 한국 사회는 어느 시점까지는 ‘강한 시민사회’ 조직들이 있어 나름 역할을 하면서 독재형 정권들을 몸으로 견제했었다. 그럼으로써 민주화 성취 등 특유의 ‘위대한 결실’을 맺기도 했다. 엄혹 했던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에도 그런 시민사회 조직들은 나름대로 존재해왔다. 그리고 때로는 일보 양보로 나라가 단기간에 근대화에 성공하도록 협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중산층을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그 이후에는 그 혜택을 본 중산층들이 더 강한 시민사회 조직으로 발전해 대망의 민주화를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한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즉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의 선(善)순환이었다고 할까. 따라서 결국 정상적인 시민사회나 그 조직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뭣보다 우선 순수하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엄격해야 한다. 그리고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 이를 위한 사회발전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은 그 동안 우리 시민사회가 그런대로 쌓아온 가상(嘉賞)한 현실을 제대로 올곧게 이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 조직들을 그냥 정치적인 이용물로 밖엔 보지 않았다. 특히 윤미향의 ‘정의연’은 반일(反日)을 위한 앞잡이로 쓰이면서 이용수 할머니 등 한 많은 위안부 출신 노인 분들을 철두철미 이용해먹도록 그냥 내팽개쳐 두었다. NGO라는 허울좋은 이름을 걸고 실제적으로는 정권과 야합해 서로 각자의 사적인 이득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온 것이었다.
그 동안 국가는 눈 감아주고, 그 사이 그들이 앞장서 대한민국의 독립적 시민사회의 토대를 양 날의 톱으로 썰고 있었다. NGO 수괴는 할머니들 ‘앵벌이’ 시킨 공로로 금 뱃지까지 달았다.
이제 어쩌다 진실이 밝혀지고 사회가 들끓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문 정권은 도리어 ‘정의연’ 사태를 거꾸로 봉대침소(棒大針小) 시키면서 친여 언론과 시민단체를 총동원해 탈진실(Post-truth)을 양산하는 진지전(陣地戰)에 나서고 있다. 되레 위안부 할머니들의 쓴 소리에 ‘토착 친일세력의 공세’라고 덮어씌운다. 뻑 하면 ‘정의’와 ‘인권’을 부르짖던 이 사기꾼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할수록 참 나쁘고 악질적인 사탄들이다. 어떻게 응징하면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하지만 반드시 기억하라. 민심의 공분(公憤)은 정권과 어용 시민단체들의 공동 전선을 일거에 무너뜨릴 것이다. 국가가 민심의 역린(逆鱗)을 건드릴 때 국가라는 배를 뒤집어버리는 게 우리 한국인이다. 한국 시민사회는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 행동을 함으로써 늘 역사의 물길을 바꾸어 왔다. 근간의 그야말로 ‘개땡땡’ 보다 더 추잡한 윤미향 사건은 우리 모든 대한민국 대내외 동포들에게 생사(生死)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진짜 시민사회는 아직 죽지 않았음을 믿어 마지 않는다. *
손용상 논설위원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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