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데스크칼럼
정치의 시간, 정책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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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의 임기가 지난 1월 20일부터 시작되면서 미국정치가 상당히 안정화되는 느낌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불복과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그리고 이어지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2차 탄핵 발의에 이르기까지 “정치의 시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으로 “정책의 시간”이 사실상 시작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이민, 경제, 코로나 바이러스, 환경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주요 정책을 제시해오고 있다. 정책의 시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다행이다.
선거 기간에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선거가 후보자들에 대한 인물과 정책 평가와 더불어 상호 비난과 반목이 자연스럽게 집중되는 큰 정치적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의는 보다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획득한 승자만이 정해진 직책에서 헌법과 법에 의해 주어지는 권한을 행사하며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구조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자는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면 더이상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심지어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선거에 출마하는 모든 후보자들이 승리를 갈구하고, 선거가 정책과 비전을 바탕으로 한 차분하고 진지한 경쟁보다는 적대와 증오로 점철되는 이유이다. 굳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다음에 어떤 직책을 수행할 인물을 뽑는 선거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산고의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은 다행히 대선이 끝나고 새 행정부가 공식 출범하면서 정치의 시간보다는 정책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오랫동안 미국 정치와 선거를 연구하고 강의해 온 필자는 역설적이지만 “정치의 시간”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정치 본연이 갖고 있는 부정적 요소를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갈등과 증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 과정에서 점점 심화되기 때문이다.
사실 현실 정치에서 상호 신뢰와 협력이라는 용어는 더이상 찾기 어려워졌다. 더불어 많은 한국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다소 과열된 정치적 관심과 의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선거를 앞에 두면 많은 이들이 “누가” 이길 것인지를 묻고,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지를 물어온다.
원인과 이유, 과정보다는 승자가 누구냐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확신적 언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 솔직한 심정을 드러낸다면 필자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가급적 대답을 회피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방과 필자의 견해가 차이가 있으면 사소한 정치적 주제라도 불필요한 언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자칫 감정의 골이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지인이 한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 여러 번 필자의 견해를 물어본 일이 있다. 필자가 견해를 밝히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했지만, 결국 감정적인 논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그 지인과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일들은 필자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견해와 가치관이 조금 다른 지인들과 정치를 주제로 대화를 하다 보면 주위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이념, 가치관, 견해의 차이가 가까운 사람들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고, 감정에 상처를 주고, 심지어 인간관계까지 악화시키는 것이다. 정치를 주제로 한 대화와 논쟁이 가져올 수 있는 지극히 부정적인 결과인 셈이다.
반면에 정책의 시간은 정치의 시간에 비해서 굉장히 생산적이다. 정책은 행정부나 입법부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와 논쟁을 거쳐 만들어지는 정치의 산물과 결과이다. 어떤 분야에서 정책이 입안되고 결정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최종안이 결정되면 행정부는 그 정책을 집행하게 된다. 인물과 사건 위주의 정치의 영역과 달리 정책에서는 이른바 “좋은” 정책과 “나쁜” 정책이란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정치인이나 유권자 입장에서 본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거나 또는 본인이 선호하거나 선호하지 않는 정책만이 존재할 뿐이다. 만일 행정부나 의회가 본인이 선호하지 않는 어떤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게 되면 자신의 입장이나 기치관, 이념에 의거하여 비판적 시각에서 자신의 견해나 논리를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인들과도 정치인이나 정치적 사건보다 경제정책이든 이민 정책이든 정책 그 자체를 주제로 대화를 하거나 논쟁을 벌인다면 상대적으로 감정의 소모도 적어지고 이성적 소통이 가능해진다.
필자가 정치의 시간보다 정책의 시간을 반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처음 100일간은 “정치의 시간”이 아닌 “정책의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최장섭 논설위원
Texas A&M University-Commerce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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