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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설날’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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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제가 ‘설날’이었다. 누가 뭐라해도 우리 민족의 대 명절이었다. 연휴기간동안 본국에서는 코로나 와중에서도 나라가 들떠 고향 가는 길이 많이 막혔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요즘의 정치판이 아무리 짜증난다 하더라도 그 날만큼은 얼굴을 찌푸리기 보다는, 단지 정겨운 ‘명절’이라는 연유로 모두가 웃고 덕담으로 설날을 맞이하고 또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고국을 떠나 만리 이국에서 맞는 설날은 마음이 그리 넉넉한 그런 명절은 아닌 듯하다. 우리 주변 몇 군데 – 한인단체나 교회 관련 분들이 전해주는 ‘명절 잔치’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설날과는 아무 관계없는 이 메마른 만 리 이국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외롭고 쓸쓸한 사연들을 대하노라면 참으로 가슴속이 아리곤 한다.
차 한 잔을 놓고 베란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을 모아본다.
지금의 그분들은 어찌 보면 마치 내 어린 시절의 고모나 삼촌 같기도 하고 또는 모두가 그때의 섣달 그믐날 밤 큰집에 모여 앉았던 앞집, 새집, 앞 새집의 새댁들이나 아지매 아재비 같은 분들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렇듯 명절을 맞으면 그 분들 가슴 속에도 역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 손끝이 저려지고 그래서 더욱 연민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는 그 분들 뿐만 아니라 또 우리들에게도 다시는 그 시절의 정겨운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창 밖에 보이는 하늘의 색깔이 결코 밝아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찻잔을 놓고 울적한 마음으로 그 시절을 기억하는 연시조 한 편을 끄적여 지난 날 새해맞이를 새로이 추억하고자 한다.
설날 전야
까치 설 그믐날엔 밤 도와 분주하다
졸린 눈 비비다가 장지문 열어보니
눈 속에 붉은 홍시가 그림 속 선경이다
아랫목 술독에선 동동주 익어가고
툇마루 소쿠리엔 전(煎)지지미 그득했다
살강 위 양상군자(梁上君子)들 눈치 없이 살강 대
마루 밑 괭이 녀석 숨죽여 기다리고
뒤 뜨락 대숲 속을 숨어 부는 바람 소리
드넓은 대청마루가 폭풍 전 정적이다.
* 메모 : 그제가 설이었다. 추석 때도 그렇지만 어릴 적 기억으로는 까치 설인 명절 전야엔 밤이 이슥하도록 안방이나 대청마루가 유난히 부산했다. 할머니 치마폭에 안겨 깜박 잠이 들었다 깨면 미닫이 장지문 바깥은 설사 달빛이 없어도 뿌옇게 밝았다.
안방 구들목 술독에서는 술 익는 냄새가 달 지근했고, 툇마루 공간을 가득 채운 설음식은 그 냄새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천정 속을 기는 서생원들의 살강 댐이 유난히 귀를 모았다. 아, 그러나 그런 추억은 그야말로 이제는 모두가 전설처럼 우리들 머릿속에서 그림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더구나 만 리 이국에서랴.
손용상 논설위원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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