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데스크칼럼

[권두칼럼] ‘설날’을 보내며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오피니언 댓글 0건 조회 2,115회 작성일 22-02-04 09:29

본문

어제 그제가 ‘설날’이었다. 누가 뭐라해도 우리 민족의 대 명절이었다. 연휴기간동안 본국에서는 코로나 와중에서도 나라가 들떠 고향 가는 길이 많이 막혔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요즘의 정치판이 아무리 짜증난다 하더라도 그 날만큼은 얼굴을 찌푸리기 보다는, 단지 정겨운 ‘명절’이라는 연유로 모두가 웃고 덕담으로 설날을 맞이하고 또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고국을 떠나 만리 이국에서 맞는 설날은 마음이 그리 넉넉한 그런 명절은 아닌 듯하다. 우리 주변 몇 군데 – 한인단체나 교회 관련 분들이 전해주는 ‘명절 잔치’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설날과는 아무 관계없는 이 메마른 만 리 이국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외롭고 쓸쓸한 사연들을 대하노라면 참으로 가슴속이 아리곤 한다. 

차 한 잔을 놓고 베란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을 모아본다. 

지금의 그분들은 어찌 보면 마치 내 어린 시절의 고모나 삼촌 같기도 하고 또는 모두가 그때의 섣달 그믐날 밤 큰집에 모여 앉았던 앞집, 새집, 앞 새집의 새댁들이나 아지매 아재비 같은 분들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렇듯 명절을 맞으면 그 분들 가슴 속에도 역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 손끝이 저려지고 그래서 더욱 연민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는 그 분들 뿐만 아니라 또 우리들에게도 다시는 그 시절의 정겨운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창 밖에 보이는 하늘의 색깔이 결코 밝아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찻잔을 놓고 울적한 마음으로 그 시절을 기억하는 연시조 한 편을 끄적여 지난 날 새해맞이를 새로이 추억하고자 한다. 

 

설날 전야

 

까치 설 그믐날엔 밤 도와 분주하다 

졸린 눈 비비다가 장지문 열어보니 

눈 속에 붉은 홍시가 그림 속 선경이다

 

아랫목 술독에선 동동주 익어가고 

툇마루 소쿠리엔 전(煎)지지미 그득했다 

살강 위 양상군자(梁上君子)들 눈치 없이 살강 대

 

마루 밑 괭이 녀석 숨죽여 기다리고

뒤 뜨락 대숲 속을 숨어 부는 바람 소리 

드넓은 대청마루가 폭풍 전 정적이다. 

 

* 메모 : 그제가 설이었다. 추석 때도 그렇지만 어릴 적 기억으로는 까치 설인 명절 전야엔 밤이 이슥하도록 안방이나 대청마루가 유난히 부산했다. 할머니 치마폭에 안겨 깜박 잠이 들었다 깨면 미닫이 장지문 바깥은 설사 달빛이 없어도 뿌옇게 밝았다. 

안방 구들목 술독에서는 술 익는 냄새가 달 지근했고, 툇마루 공간을 가득 채운 설음식은 그 냄새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천정 속을 기는 서생원들의 살강 댐이 유난히 귀를 모았다. 아, 그러나 그런 추억은 그야말로 이제는 모두가 전설처럼 우리들 머릿속에서 그림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더구나 만 리 이국에서랴. 

 

손용상 논설위원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데스크칼럼 목록
    블라디미르는 이렇게 말한다. –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다. 그러니 우린 뭐든 거동을 하면서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거지. 뭐랄까 언뜻 보기에는 이…
    2022-03-18 
    3월 9일 실시된 20대 한국 대통령 선거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누르고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번 대선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 불가의 혼전이었다. 여론조사 발표가 금지된 투표 2주전부터 여론조사 기관별로 두 후보…
    2022-03-11 
    한국 대선이 불과 5일 남았다. 야권의 대선 후보인 윤석열과 안철수 간의 후보 단일화로 ‘정권교체’를 갈망하던 국민들의 열망도 하마터면 허망한 물거품이 될 뻔했다.그러다가 3일 새벽 극적으로 윤.안 두 후보가 손을 잡았다. 그동안 대다수 네티즌들은 안철수를 상습적 ‘연…
    2022-03-04 
    한국 대선이 불과 5일 남았다. 야권의 대선 후보인 윤석열과 안철수 간의 후보 단일화로 ‘정권교체’를 갈망하던 국민들의 열망도 하마터면 허망한 물거품이 될 뻔했다.그러다가 3일 새벽 극적으로 윤.안 두 후보가 손을 잡았다. 그동안 대다수 네티즌들은 안철수를 상습적 ‘연…
    2022-03-04 
    3월 9일 실시되는 20대 한국 대통령 선거가 불과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15일부터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어 각 당 대선 후보들의 유세와 광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대선 승리를 위해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의 지지를 최대한으로 얻기 위해 후보들은 각종…
    2022-02-25 
    사람이 지닌 ‘성품과 본능’에 대한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특히 권력을 쥐는 사람들의 그것은 그 사람의 타고난 인성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는 동안 가시밭 역경을 이겨내면 “그 사람 잘 참고 이겨내는 것을 보니 성품이 참 좋네…
    2022-02-18 
    사회학 용어에 ‘화이트 라이(white lie)’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좋은 뜻의 악의 없는 거짓말을 말한다.말하자면 남이 산 물건에 대해 “이거 어제 샀는데 어때?”하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왕 산 물건인데 “좋은데”라고 답해주는 것. 또는 결혼식…
    2022-02-11 
    어제 그제가 ‘설날’이었다. 누가 뭐라해도 우리 민족의 대 명절이었다. 연휴기간동안 본국에서는 코로나 와중에서도 나라가 들떠 고향 가는 길이 많이 막혔다고 전한다.사람들은 요즘의 정치판이 아무리 짜증난다 하더라도 그 날만큼은 얼굴을 찌푸리기 보다는, 단지 정겨운 ‘명절…
    2022-02-04 
    미국의 경제 기류가 심상찮다. COVID-19의 장기화와 공급망 위기, 그리고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안정적인 경제 성장에 이미 적신호가 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실제로 작년 12월에 발표된 인플레이션은 6.8%로 지난 40년간 최고치를 나타냈다. 다행히도 같은 시기…
    2022-01-28 
    임기 종료를 불과 5개월여 남긴 문재인 정부가 종전 선언을 통해 남북관계 진전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기려 마지막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이다. 관련국 중 아무도 진정한 관심이 없고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그런데도 대통령은 집요하다. 반세기에 걸친 북한의 ‘한반도 평화협…
    2022-01-21 
    강한 ‘자신감’만이 ‘희망’을 만든다.보통 우리 인생은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삶이라는 것… 선현(先賢)들의 말이다. 지난 한 해 나는 그 중에서도 무엇을 얻었나 보다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를 먼저 생각해…
    2022-01-14 
    신축년(辛丑年)이 가고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왔다.2022년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 라고 한다. 명리학에 따르면 10개의 천간 중 임(壬)이란 글자는 음양오행 중 검은색을 띠는 수(水)의 기운이며, 12개의 지지 중 인(寅)이란 글자는 동물 중 호랑이를 뜻하고…
    2022-01-07 
    한국 대통령 선거가 70여일 남은 시점에서 각종 언론매체에서 대선관련 보도가 뉴스의 주요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대선 후보자와 그 배우자, 선거캠프와 정책공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기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 교체냐를 두…
    2021-12-30 
    다자대결 구도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지난 22일 나왔다.두 후보의 ‘가족 리스크’가 나란히 불거진 이후 실시된 조사다.리얼미터가 지난 20∼21일 전국 1천27명을 대상으로 대선 후보 지지도를…
    2021-12-23 
    고국의 대통령 선거가 3개월도 안 남았다. 이제 서서히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언론에 의하면 여야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여전하고 표심을 못 정한 사람들이 약 20% 수준이라 한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이 보도에 따른 후보 지지율 등의 %가 여론 조사기관마다…
    2021-12-17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