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데스크칼럼
‘바보들의 행진’...시대를 뛰어 유령(幽靈)으로 나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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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행진’은 소설가 고(故) 최인호가 75년도 일간스포츠에 연재했던 장편(掌篇)소설이 원작이다. 철학과생 병태와 불문과생 영자를 주인공으로 80년 초반까지 한국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좌절을 그린, 최인호 특유의 재기 넘치는 신문 사설(社說)적 풍자 소설이었다. 훗날 영화감독 하길종이 메가폰을 잡아 최씨의 경쾌한 문장을 곁들여 당시 한국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했던 영화로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했다.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당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장발 단속 경관들과의 쫓고 쫓기는 경주, 청바지와 통기타와 생맥주 문화, 병태를 태운 입영열차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나타난 영자가 차창에 매달려 병태와 입맞춤하는 장면이다. 당시의 억압적 현실에서 스스로 바보로 치부하며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고뇌가 생생하게 가슴에 파고들었던 작품이었다. 더구나 병태가 장발 단속을 피해 달아날 때 들려오던 송창식의 노래 ‘왜 불러’는 압권이었다. 이 노래는 최인호 작사로 알려진 ‘고래사냥’(사실은 최작가의 동창작가인 장부일 교수가 서울대학신문에 발표했던 詩)과 함께 당시 대학생들은 술 자리에서 빠짐없이 즐겨 부르던 최고의 반찬이었다.
“우리들 가슴 속엔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이 노래는 그 뒤 하길종의 동명 영화에 삽입되어 극장가를 휩쓸자 당시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그래서인지 이 곡들은 지금도 시대를 뛰어 넘어 우리 가요의 대표적 노래로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옛추억에 젖어 낭만을 구가할 때가 아니다. 왜냐면 요즘은 또 다른 ‘바보들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행진은 아이 어른 민간 공무원 구분 없이 전 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당시는 사회 ‘이슈’가 위정자의 ‘민주화’요구를 바탕으로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대한 규탄이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반발하고 대학가가 뭉쳤고, 우여곡절 끝에 그 꿈을 이루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남북문제, 한일 경제충돌, 한미동맹 와해(瓦解) 등등... 현안(懸案)이 산더미로 쌓였지만 모두가 개처럼 뼈다귀만 빨고 있다. 우선’먹고 사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근본 대책 하나 없이 애매한 기업과 자영업자만 괴롭히다가 느닷없이 ‘극일(克日)’을 처방으로 내놓았다. ‘일제(日製) 안 사기 운동’ 같은 유치한 장난질로 대 국민 사기를 치고 있다. 또 김정은은 연일 미사일을 쏴대며 우리 국민들을 겁박하고 대통령을 조롱해도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는 희한한 나라. 내 조국이 언제’죽느냐 사느냐‘의 천 길 절벽 끝에 서 있는데도 그냥 남의 일이다. 그제는 정세형(달라스에도 왔던 犬種)이란 정신병자가 북 미사일을 “향후 핵포기를 대비해 미리 무기 빵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해괴한 요설(妖說)로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마치 약에 취한 듯 잠꼬대 헛소리들만 지껄이고 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이런 상황에 우리 젊은 친구들은 절반 이상이 그야말로’돈 케어‘이다. 장발 깎이기 싫어 반발하던 청년들이 당장 낼 모레 나라가 자빠질지 모르는 지경인데도 기개(氣槪)는 팔아먹고 잔머리 굴리며 놀고 먹는다. 행여 나라에서 ‘청년수당’ 얼마나 줄라나 눈치만 살핀다.. 4-50대도 대동소이 하다. 어느 놈이 나라를 잡아먹든 알게 뭐냐는 태도다. 그런가 하면 6-70대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제법 옛일을 거울삼아 걱정이나마 하더니 언제부턴지 나라에서 ’꽁돈‘ 준다는 사탕발림에 회까닥 해버렸다. 살아있을 때 ‘눈먼 돈” 받아 좀 편히 살다가 나 죽고 나면 알게 뭐냐는 태도다. 훗날 뒤치다꺼리 할 자식, 손주들 걱정은 뒷전이다. 다 함께 ‘바보’로 살겠다는 각오같이 보인다. 도무지 ’어른‘의 품성은 모두가 개 우리에 던져버렸나 싶다.
지금의 이런 현상은 좌익 586 집권세력이 지난 30년 동안 이빨 갈며 가꿔온 실과(實果)다. 그 순수했던 ‘민주화 운동‘을 뒷구멍으로 얼마나 철두철미 페인트 위장을 하며 방향을 교묘하게 비틀게 하였는지, 그리고 국민들을 얼마나 바보 되게 세뇌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아니, 알면서도 설마 막장까지야 가겠나...그리 생각하였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이제 곧 막장을 칠 것이다. 법치가 아예 말살되고, 언론 검열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뉴스마다 단추를 누르면’땡문’이 사람들에게 몸서리를 치게 할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 국민은 지난 70년 동안 세상에서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으로 반 이상이 끌려가게 생겼다. 그때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 최인호가 쓰고 하길종이 만든 70년대의 ‘바보들의 행진’이 해방 70주년 즈음에 유령처럼 다시 살아났다. 당시 일부 386 세대들이 지금의 586이란 거대한 더 붉어진 좌익 세력으로 새로이 둔갑하여 현재진행형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꼴을 보며 혹 소위 우익 보수라는 물건들은 어찌할까 한동안 지켜보았다. 결국 목에 가래만 더 많이 생겼다. 우익 보수라는 머저리 견자(犬子)들은 그 동안 뭘 하고 자빠져 놀았는지 솔직히 집권층보다 더 밉고 보기가 역겨워서다. 그들은 여전히 쌈질로 여념이 없고 궁민(窮民)들과 함께 또 한편의 ‘바보들의 행진’을 상영하고 있다.
어제가 8.15 광복절이었다 옛말에 유리를 거울 삼으면 의관을 바로 할 수 있고, 옛 것을 거울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 삼으면 충신과 간신을 가려낼 수 있다고 했다. 적어도 우리 해외동포 여러분들은 제발 ‘방관자’로 살지 말자. 광복 74년을 기화로 이제 소매 접어 팔 걷고 나라 자빠지는 건 죽기로 막아야 한다. 곧 법치(法治)가 무너지고 언론 검열이 칼춤을 추기 시작할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예쁜 고래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디디고 있는 땅 끝 절벽에서 시퍼런 바다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한다. 그것만이 광견(狂犬)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우리가 돼지우리의 철책을 벗어날 수 있는, 자유애국동포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
손용상 논설위원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당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장발 단속 경관들과의 쫓고 쫓기는 경주, 청바지와 통기타와 생맥주 문화, 병태를 태운 입영열차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나타난 영자가 차창에 매달려 병태와 입맞춤하는 장면이다. 당시의 억압적 현실에서 스스로 바보로 치부하며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고뇌가 생생하게 가슴에 파고들었던 작품이었다. 더구나 병태가 장발 단속을 피해 달아날 때 들려오던 송창식의 노래 ‘왜 불러’는 압권이었다. 이 노래는 최인호 작사로 알려진 ‘고래사냥’(사실은 최작가의 동창작가인 장부일 교수가 서울대학신문에 발표했던 詩)과 함께 당시 대학생들은 술 자리에서 빠짐없이 즐겨 부르던 최고의 반찬이었다.
“우리들 가슴 속엔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이 노래는 그 뒤 하길종의 동명 영화에 삽입되어 극장가를 휩쓸자 당시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그래서인지 이 곡들은 지금도 시대를 뛰어 넘어 우리 가요의 대표적 노래로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옛추억에 젖어 낭만을 구가할 때가 아니다. 왜냐면 요즘은 또 다른 ‘바보들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행진은 아이 어른 민간 공무원 구분 없이 전 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당시는 사회 ‘이슈’가 위정자의 ‘민주화’요구를 바탕으로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대한 규탄이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반발하고 대학가가 뭉쳤고, 우여곡절 끝에 그 꿈을 이루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남북문제, 한일 경제충돌, 한미동맹 와해(瓦解) 등등... 현안(懸案)이 산더미로 쌓였지만 모두가 개처럼 뼈다귀만 빨고 있다. 우선’먹고 사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근본 대책 하나 없이 애매한 기업과 자영업자만 괴롭히다가 느닷없이 ‘극일(克日)’을 처방으로 내놓았다. ‘일제(日製) 안 사기 운동’ 같은 유치한 장난질로 대 국민 사기를 치고 있다. 또 김정은은 연일 미사일을 쏴대며 우리 국민들을 겁박하고 대통령을 조롱해도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는 희한한 나라. 내 조국이 언제’죽느냐 사느냐‘의 천 길 절벽 끝에 서 있는데도 그냥 남의 일이다. 그제는 정세형(달라스에도 왔던 犬種)이란 정신병자가 북 미사일을 “향후 핵포기를 대비해 미리 무기 빵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해괴한 요설(妖說)로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마치 약에 취한 듯 잠꼬대 헛소리들만 지껄이고 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이런 상황에 우리 젊은 친구들은 절반 이상이 그야말로’돈 케어‘이다. 장발 깎이기 싫어 반발하던 청년들이 당장 낼 모레 나라가 자빠질지 모르는 지경인데도 기개(氣槪)는 팔아먹고 잔머리 굴리며 놀고 먹는다. 행여 나라에서 ‘청년수당’ 얼마나 줄라나 눈치만 살핀다.. 4-50대도 대동소이 하다. 어느 놈이 나라를 잡아먹든 알게 뭐냐는 태도다. 그런가 하면 6-70대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제법 옛일을 거울삼아 걱정이나마 하더니 언제부턴지 나라에서 ’꽁돈‘ 준다는 사탕발림에 회까닥 해버렸다. 살아있을 때 ‘눈먼 돈” 받아 좀 편히 살다가 나 죽고 나면 알게 뭐냐는 태도다. 훗날 뒤치다꺼리 할 자식, 손주들 걱정은 뒷전이다. 다 함께 ‘바보’로 살겠다는 각오같이 보인다. 도무지 ’어른‘의 품성은 모두가 개 우리에 던져버렸나 싶다.
지금의 이런 현상은 좌익 586 집권세력이 지난 30년 동안 이빨 갈며 가꿔온 실과(實果)다. 그 순수했던 ‘민주화 운동‘을 뒷구멍으로 얼마나 철두철미 페인트 위장을 하며 방향을 교묘하게 비틀게 하였는지, 그리고 국민들을 얼마나 바보 되게 세뇌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아니, 알면서도 설마 막장까지야 가겠나...그리 생각하였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이제 곧 막장을 칠 것이다. 법치가 아예 말살되고, 언론 검열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뉴스마다 단추를 누르면’땡문’이 사람들에게 몸서리를 치게 할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 국민은 지난 70년 동안 세상에서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으로 반 이상이 끌려가게 생겼다. 그때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 최인호가 쓰고 하길종이 만든 70년대의 ‘바보들의 행진’이 해방 70주년 즈음에 유령처럼 다시 살아났다. 당시 일부 386 세대들이 지금의 586이란 거대한 더 붉어진 좌익 세력으로 새로이 둔갑하여 현재진행형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꼴을 보며 혹 소위 우익 보수라는 물건들은 어찌할까 한동안 지켜보았다. 결국 목에 가래만 더 많이 생겼다. 우익 보수라는 머저리 견자(犬子)들은 그 동안 뭘 하고 자빠져 놀았는지 솔직히 집권층보다 더 밉고 보기가 역겨워서다. 그들은 여전히 쌈질로 여념이 없고 궁민(窮民)들과 함께 또 한편의 ‘바보들의 행진’을 상영하고 있다.
어제가 8.15 광복절이었다 옛말에 유리를 거울 삼으면 의관을 바로 할 수 있고, 옛 것을 거울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 삼으면 충신과 간신을 가려낼 수 있다고 했다. 적어도 우리 해외동포 여러분들은 제발 ‘방관자’로 살지 말자. 광복 74년을 기화로 이제 소매 접어 팔 걷고 나라 자빠지는 건 죽기로 막아야 한다. 곧 법치(法治)가 무너지고 언론 검열이 칼춤을 추기 시작할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예쁜 고래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디디고 있는 땅 끝 절벽에서 시퍼런 바다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한다. 그것만이 광견(狂犬)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우리가 돼지우리의 철책을 벗어날 수 있는, 자유애국동포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
손용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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