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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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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대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사는 여자가 있다. 그럴 뿐 아니라, 세상이 깜짝 놀랄 겉과 속이 모두 젊고 세련된 에세이집을 펴낸 작가가 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내 나이가 어때서’란 노래와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전제는 현재 진행형으로 그렇게 살고 있을 때만이 가능한 수사라는 것을 절감한다. 주변에 내가 알고 있는 칠십대 대부분은 손주 육아나 지병관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살고 있다.
여행이나 골프를 주 취미로 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코로나 19 이후엔 그것도 여의치 않아 대부분 ‘방콕’하며 한국 TV이나 스마트폰에 의존하며 지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여기저기서 장애물들이 지뢰처럼 터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선생을 만난 것은 십 이년 전 쯤 문학회에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연세 든 분들이 꽤 되었다.
이민문학 동호회의 특성은 은퇴하고 나서야 시간여유가 되는지라 늦게 문학에 입문하는 분들이 많다. 나 역시 거의 50대가 되어서 등단을 했다. 그 때도 난 동호회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는 ‘인싸’가 아니라, 아웃사이더였다.
그런데 세 시간 거리인 킬린에서 사시는 선생은 한 달도 빠지지 않고 그 먼 거리를 운전해서 왔다. 그리곤 무거운 책들을 잔뜩 가지고 와서 소개하기도 하고, 읽으라고 나눠주시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서점 두 군데를 들러 꼭 책을 몇 권씩 또 사갔다. 어떤 날은 돈이 모자라 외상으로 책을 사가기도 했는데 워낙 단골인지라 서점 주인들과도 잘 아는 사이인 듯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학회 회원들 중에 에세이집이나 시집, 소설집을 출판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미주 문학캠프에 가면 그곳 회원들이 출판한 책들을 한 보따리씩 얻어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은 그 많은 책들을 다 읽고 꼭 소감이나 평을 꼼꼼하게 해주었다. 말이 쉽지 바쁜 이민생활에 남의 글을 그렇게 정성들여 읽고, 후평을 해준다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국내외 유명한 작가들 작품들 읽기도 시간이 모자란데, 하물며 어떤 한국작가의 말처럼, 가끔은 시디 신 덜 익은 과일냄새가 나기도 하는 초보 작가들의 작품까지 다 섭렵하는 일은 그야말로 업으로 삼지 않고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쨌든 선생의 독서량은 책의 질과 양을 떠나 엄청나다.
동서양 고전부터 한국의 근현대, 최근의 젊은 작가들 김애란이나, 김숨, 김금희, 작품까지 얘기를 하다보면 막힘이 없다. 물론 다독을 한다는 것이 남에게 자랑할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소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독서를 하는 것은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행위와 같다. 글을 쓴다면서도 독서의 무용론을 논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는 선생의 말을 들어보면, 독서의 중요성과 글에 앞서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언젠가 선생과 얘기 중에, 작가의 이름은 모르지만, 작품이 마음에 남는 작가야 말로 진정한 작가라는 말을 서로 한 적이 있다. 이제 인공지능도 글을 쓸 수 있는 시대다. 넘쳐 흐르는 것이 책이다. 몇 번 읽어도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시집이나 책들은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출판된 최정임 작가의 <책 읽는 여자>는 확연히 다르다. 작가는 타운신문에 <최정임의 책사랑 이야기>란 북 칼럼을 오랫동안 연재해왔는데, 이번 에세이집에는 그곳에 실린 글들 뿐 아니라, 작가의 이민역사라 할 만한 초창기 글부터 다양한 주제의 에세이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글을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같은 이민자로서 공감되는 글들이 참 많다. 작가가 생활의 방편으로 플리마켓이나 시식코너에서 일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나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미국에서만 겪을 수 있는 특수한 경험 등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플리마켓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텍사스 들판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시식코너엔 좋은 시 한 편을 카피해서 붙여놓는다는 선생은 그야말로 생활 속의 문학을 실천하는 문학 전도사이기도 하다. 킬린에서 가정도서관을 운영하며, 많은 책들을 이웃들과 나누기도 했다.
책은 총 5부로 나눠졌다. 1부는 ‘어머니는 푸른 어항에 금붕어 두 마리를 오래도록 길렀다’라는 부제에서 보듯이 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문학의 모태, 어머니,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와 프리마켓 에피소드가 들어있고, 2부는 이민생활의 애환과 가족이야기, 3부는 시식코너 풍경과 이웃들, 4부는 삶의 향기가 느껴지는 수필들, 5부는 독서, 그 즐거운 지적 탐험이 가득 들어있다.
그간 연재해온 글 70편 중에서 15편을 추린 것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위시한 다양한 책 소개가 들어있어, 이 여름 추천 책이 필요한 독자들에겐 좋은 정보가 될 것 같다.
20불을 주고 사서 봐도 하나도 아깝단 생각이 안들만큼 내용이 탄탄하고 다양하다. 우리 것에 대한 해박한 작가의 지식을 도자기나 놋그릇 설화, 녹차이야기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달라스에서 정말 좋은 책이 한 권 나왔다. ‘세종의 여자’란 별명이 아깝지 않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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