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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생긴 일 (28) 카우아이 섬에 버려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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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릴레이 ] 한인작가 꽁트 릴레이 57
“종단연구가 뭐냐하면… 오랜 세월을 두고 같은 연구 대상자를 계속 추적 조사하는 연구’를 말해.”
레이가 선생님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필은 도무지 심각한 것은 질색이었다. 창 너머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삼각뿔처럼 생긴 카우아이의 산을 바라보았다. 레이가 상필의 손등을 토닥거리며 얘기를 좀 들으라는 몸짓을 해왔다.
그러면서 2차 세계대전 후 전쟁 후유증이 미 전역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을 때 유독 카우아이 섬 주민들 사이에 가난, 병, 범죄, 알콜 중독 등의 질환자들이 많다는 통계가 나오게 되었다는 얘기를 이었다.
“왜 유독 카우아이 섬 사람들이 문제가 많을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의 소아과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등이 참여 해서 연구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소위 ‘카우아이 섬의 종단연구’다. 이 연구는 구체적으로 1955년 이 섬에서 출생한 신생아 833명이 18세가 될 때까지 그 삶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때까지 사회과학자들은 ‘나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비행 청소년으로, 범죄자 혹은 중독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통설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결과는 이런 통설을 뒤집어놓았다. 놀랍게도 833명의 아이들 가운데 생활환경이 열악한 201명 중에 3분의 1에 해당하는 70여 아이들이 모범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환경과는 관계없이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연구진들은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보편적인 생각들이 편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열악한 환경 속의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카우아이 섬 연구에 참여했던 에미 워너 교수는 40년에 걸친 ‘카우아이섬 종단연구’를 정리하면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대로 성장한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아이 곁에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아이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의 긍정이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와우, 긍정의 힘? 무슨 학술연구가, 그것도 40여 년의 시간에 걸쳐 내린 결론이 겨우 그거야? 어른이라면 당장 알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학자들은 참으로 쓸모 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니까.”
“사회적 공감을 얻어내기가 그만큼 힘든 일이거든.”
“나 봐, 난 말야. 레이가 나를 인정해 주는 순간 태권도 실력이 발휘되는 것을 느꼈어. 레이가 봐 주기만 하면 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구. 레이의 눈빛을 보려고 나는 세수도 하고 수염도 깎고 옷도 멋진 것으로 고르고, 난 어쨌든 레이의 맘에 들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레이가 나를 봐 주니까 나 스스로 훌륭한 사람처럼 느낀단 말야. 이게 다 레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 아니겠어. 단 한 사람의 사랑이면 무한 힘이 되는 거잖아.” 상필이 떠들고 있는 동안 레이의 표정이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나는 이 섬에 버려진 아이였어. 지금 우리 부모가 이 섬으로 신혼여행을 왔을 때 바닷가에 버려져 있는 나를 발견했대.”
“뭐야, 레이는 태어날 때부터 수영을 잘하고 걷는 것보다 수영을 더 잘했다고 아버지가 그러시던데…”
”맞아. 날 발견 했을 때 한 살이 좀 넘었을 땐데, 그 아기가 수영을 하더래.” / “아, 레이,“
상필은 레이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나의 생모는 그 호텔의 하우스 키퍼였어. 20대의 미혼모였던 생모는 나를 키울 능력이 없어서 입양을 하려고 했는데 아무에게나 주고 싶지 않아서 사람을 찾고 있었나봐. 그러던 중에 신혼여행을 온 지금의 우리 엄마와 아버지를 보게 된거야. 어느 날 새벽 산책을 나가는 것을 보고는 나를 안고 그들 부부를 뒤좇아 나가서 바닷가 모래밭에 나를 내려 놓은거야. 물론 지금 우리 엄마 눈에 띤거지. 아이가 울지도 않고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이의 엄마나 아버지가 보이지 않더래. 엄마가 놀라서 얼른 나를 안고 파출소에 신고를 했대. 파출소에서는 내 목걸이에 적힌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고 금방 생모를 찾아냈는데, 아주 젊고 예쁜 엄마였대. 그 젊고 예쁜 아기 엄마가 울면서 자신의 아기를 입양해달라고 부탁을 하더래.”
“어떻게 그런 일이…”
“호놀룰루 집으로 아기를 안고 돌아와서 입양 수속을 마쳤대. 울 엄마는 아버지가 우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대. 엄마가 나를 입양해 준 게 너무 고마워서. 아버지는 나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한다고 그랬어.”
“불쌍한 레이. 아니, 행복한 레이.”
“난 물론 그때의 기억이 없어. 내가 15살이 되어 성인식을 가졌을 때 엄마가 내게 관한 애기를 해서 알게 되었어.” / “아, 불쌍한 레이…”
“난 그때 모래밭에 버려진 그 꼬마 아기를 상상하면서 너무 불쌍해서 막 울고 생모를 찾겠다고 날뛰었던 것 같애. 그런데 생모가 나를 입양시키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그 섬을 떠난 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됐대.”
상필은 레이의 건너편 식탁의자에 앉았다가 레이의 옆자리로 왔다. 그리고 레이를 꼭 안았다.
“그러니까 여기 카이아우 섬은 나의 출생지, 내 고향이나 다름없어.”
“레이가 이렇게 눈부시게 자란 모습을 생모가 봤어야 하는데…”
“내가 내 출생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은 상필씨에게 동정을 받기 위한 게 아니야. 나의 진실을 알리는거지. 나를 낳은 생모가 카우아이의 종단연구 대상자였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마음만 먹는다면 찾을 수도 있을거야. 엄마는 불우한 여성이었을텐데, 생모는 새 희망을 가졌을까.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게 지금의 생각이야. 생모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니까.”
“카우아이 아름다운 섬에 사건이 많군. 다행인 것은 ‘카우아이 섬의 종단연구’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 섬은 슾픔을 이겨내는 힘을 갖고 있나봐.”
상필은 레이를 위로하고 싶었는데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카이우아이, 화산 봉우리만큼이나, 주름진 계곡 만큼이나 상처가 많은 곳. 세상에 상처가 없는 곳이 어디 있을라구.
캡틴 쿡이 제일 먼저 땅을 밟고 하와이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곳, 정원의 섬으로 알려진 아름다운 섬, 사회학자들이 긍정의 힘을 발견한 곳, 그리고 레이가 태어난 곳이다.
“상필씨, 하와이 왕국 1세 왕의 이름 알아요?” 시들 것 같던 레이가 금새 생생해졌다.
“카메하하, 맞지?”
“맞아요. 맞는데 풀네임은 ‘칼라니 파이에아 우히 오 카레이키니 케알리쿠이 카메하메하 오 이올라니 이 카이위카 푸 카우이 카 리호리호 쿠누이아케아(Kalani Paiʻea Wohi o Kaleikini Kealiʻikui Kamehameha o ʻIolani i Kaiwikapu kauʻi Ka Liholiho Kūnuiākea).”
“정말 긴 이름이네. 왕은 그렇게 긴 이름을 가져야 하나? 긴 이름은 위험해.”
<계속>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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