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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소담 한꼬집’ ] Trick or T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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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1-11-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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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Halloween)만 되면 마녀가 장난을 치는지 기온이 뚝 떨어지곤 했었다. 

내내 덥던 날씨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쌀쌀해져서 얇디얇은 코스튬을 입은 아이들이 감기 걸리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는데, 올해는 걸어 다니기 딱 좋은 날씨였다. 

할로윈의 백미는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코스튬을 입고 캔디를 얻으러 이웃집에 돌아다니는 것을 말하는데, 작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캔디를 얻으러 온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고스란히 남은 캔디로 식구들이 당 충전을 하느라고 바빴다.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지만,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작정했는지 온 동네 주민이 아이들과 함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온 가족이 코스튬을 갖춰 입고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보였다. 머스탱 팍으로 이사 온 후 가장 분주하고 즐거운 할로윈을 보낸 것 같다. 

 

남편과 장을 보면서 캔디를 얼마나 사야 할지 고민하다가 올해는 백신도 맞았고 마스크 벗은 사람도 많으니 남더라도 넉넉히 준비하기로 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안 그랬다면 늦게 온 아이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뻔했다. 

남편이 혼자 먹으려고 몰래 빼놓은 M&M’s 까지 몽땅 털어주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시간은 보통 밤 8시면 끝나는데, 간혹 늦게 퇴근하는 부모님들이 계셔서 그 후에 오기도 한다. 마지막 꼬마 손님까지 섭섭지 않게 나눠주고 나니 마음이 흐뭇했다. 

딸이 어릴 땐 할로윈 준비가 아주 큰 연례행사였다. 임박해서 코스튬을 사려면 마음에 드는 걸 살 수 없어서 한 달 전부터 발품을 팔아야 했다. 매년 좋아하는 캐릭터가 바뀌다보니 공주의상부터 해적 의상까지 다양한 옷을 사주어야 했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를 도는 건 늘 내 몫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에 없는 할로윈 문화가 신기하고 재밌어서 아이보다 내가 더 즐겼던 것 같다. 나도 딸과 똑같은 공주 코스튬을 입고 사탕을 얻으러 가고 싶었다. 

내년엔 꼭 사 입어야지 했다가도 그 돈이면 대체 쌀이 몇 포대지 하고 생각하면 결국 내건 사지 못했다. 딸은 생각보다 빨리 시들해져서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것보다 나눠 주는 것을 더 즐거워했다. 그래서 동네를 도는 즐거움은 사라졌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병정 코스튬을 보자마자 홀딱 반해서 누를까 말까 고민했었다. 그걸 입고 사탕을 나눠 주면 재밌을 것 같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코스튬 타령을 했다. 

살 걸 그랬다고. “에이~ 사지 그랬어.”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쩌면 늘 내 편을 들어주는 남편의 그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 안엔 자라다 만 아이가 들었는지 지금도 공주옷을 보면 설렌다. 나도 내년엔 공주옷을 입고 사탕을 나눠줄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작년까지 사탕을 나누어주던 딸은 올가을에 길었던 온라인 수업을 끝내고 대학교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친구같던 딸이 없으니 올해는 남편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생전 그런 건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탕 얻으러 온 아이들에게 코스튬이 멋지다며 칭찬도 하고 함께 온 부모님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지붕 가장자리에 설치한 조명을 할로윈 칼라에 맞춰 켜놓았더니 분위기도 그럴싸했다. 이맘때면 동네를 산책하는 일이 즐겁다. 할로윈 장식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황색 호박으로 장식하기도 하고, 나무에 해골이나 유령 형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기도 하고, 눈에서 불이 나오는 유령을 세우고 으스스한 음악을 틀어놓은 집도 있다. 

 

교회에선 귀신놀음이라며 할로윈 행사에 참여하는 걸 자제시켰다. 대신에 할렐루야 데이 등으로 명칭을 바꾸어 교회에서 게임도 하고 사탕을 나눠주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자랐는데 할로윈 추억 없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엄마와 함께 커다란 호박 속을 파내고 작은 톱으로 눈 코 입을 잘라 잭 오 랜턴(Jack-O’-Lantern)을 만들어 불을 켜보고, 사탕을 얻으러 동네를 돌아다녔던 시간은 평생 유년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할로윈에 마녀나 귀신분장을 하고 트릭 오어 트릿을 외쳤던 사람들이 모두 귀신이 들렸거나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신밟기나 달집 태우기를 했던 것처럼 문화는 문화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에 사는 지인이 요즘 유치원에서 할로윈 행사를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분별없이 남의 나라 문화를 들여오는 게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영어를 가르치는 유치원에서 미국문화 체험 학습으로 할로윈 파티를 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많다 보니 젊은이들도 변형된 할로윈 파티를 한다는데 고가의 코스튬이 없어서 못 팔 정도라니 놀랍긴 하다. 

밸런타인 데이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던 것처럼 할로윈도 어느 순간 그렇게 자리 잡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올바른 문화의식은 필요하다고 본다. 

 

책장에는 해적옷을 입은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이 있다.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시간이 그립기도 하고 웃음이 그려지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사진과 추억만 남는 것 같다.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2021년 시월의 마지막 밤도 이렇게 깊어간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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