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스페인 여행기1 (달라스에서 마드리드까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12-01 13:26

본문

미국이나 한국이나 해외여행이 일반화 되면서 유럽이나 웬만한 아시아국가 여행은 안 해 본 사람이 별반 없을 정도로 흔한 일이 되었다. 그 사이 코비드를 거치며 본의 아니게 칩거에 들어간 여행객들이 작년부터 다시 공항으로 쏟아져 나와, 지금 세계는 어느 공항을 가든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예전엔 젊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세대에 상관없이, 특히 은퇴해서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생긴 베이비부머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우리의 경우는 아직 은퇴 전이긴 한데, 암튼 건강할 때 여행을 열심히 다니자는 편에 속한다. 때마침 남편의 밀린 휴가도 있어, 여기저기를 알아보다가 유럽으로 가는 직항 노선중 스페인 ‘마드리드’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보다는 가깝지만 그래도 9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니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닌데, 그래도 스페인은 평소에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한 곳이어서 쉽게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집집마다 여행을 가면 역할분담이 자연스레 나뉘어지는데 우리 집은 비행기예약은 남편이 볼거리, 호텔 예약담당은 항상 내가 한다. 특히 처음 가 본 도시는 지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호텔예약이 쉬운데, 요즈음은 관광지에서 호텔까지 거리가 자세히 표시되어 있어, 예전처럼 관광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예약을 하는 실수는 없다. 게다가 여행을 자주 다녀보니, 관광지에 근접한 곳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걷기도 쉬울뿐더러, 택시나 지하철 타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잡은 호텔도 마드리드 중심가에 있어, 마드리드 왕궁, 프라도 미술관, 마요르 광장이 모두 걸어서 십분 거리였다.

비행기는 달라스에서 오후 5시 45분 출발했는데 다음날 오전 9시경에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인데도 공항 안은 번잡했는데, 짐 찾는 곳까지 가는 공항 안 풍경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나라답게 공항 천정이 끝없는 곡선형의 물결이었다. 곳곳엔 그들이 자랑하는 피카소나 미로, 고야풍의 벽화가 보이고, 다른 공항처럼 지나치게 꾸민 흔적이 없어 외려 더 예술적인 느낌이 나는 공항이었다. 입국 후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곧장 숙소로 와서 먼저 몇 시간 잠을 푹 잤다. 

이번여행은 작은아들도 동행했는데 우리보다 그 녀석이 더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드르렁 코를 골았다. 

셋이니 트윈베드 2개와 벙크베드 하나인 숙소였다. 더구나 스페인은 저녁을 파는 식당이 주로 오후 7시 이후에 문을 연다 하니 천천히 일어나서 저녁부터 먹을 요량이었다. 오후 5시쯤 우리는 걸어서 마요르광장까지 갔다. 스페인이 정복한 남미의 도시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스페인의 도시들은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마드리드만 해도 유명한 광장이 몇 군데나 되는데, 스페인광장, 마요르광장, 솔 광장이 그곳이다. 

광장 중심엔 영웅의 동상이 우뚝 서있고, 그 주변의 웅장한 건물들 꼭대기엔 노란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스페인 국기가 나부낀다. 광장 한 켠에는 야외 카페가 즐비하고, 살찐 비둘기들이 그 주변을 종종거리고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인증 샷을 찍고 바로 샌 미구엘 시장으로 갔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란 프로그램에서 본 시장이었다. 

각종 해산물과 하몽 같은 스페인 특산물, 와인이나 맥주를 파는 곳으로 퇴근길 시민들이 한잔하고 가는 장소인지, 무척 사람들로 붐볐다. 하몽 한 접시와 맥주를 들고 테이블을 찾았지만, 서서 먹는 곳임에도 빈 테이블 찾기가 쉽지 않았다. 4년 동안 숙성했다는 하몽은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연어카나페와 게살 살라드, 각종 올리브도 모두 맛이 훌룡했다. 싱싱한 굴과 새우, 삶은 오징어등 우리들 입맛에 친숙한 해산물도 많았는데, 지중해가 가까워서 인지 해산물요리가 우리나라처럼 발달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 미국 같으면 집에 앉아 티브이나 볼 시간에 서울처럼 활기를 띄고 있는 도시에 머문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밤에 신변의 위험을 걱정하지 않고, 오래된 도시의 뒷골목을 느긋하게 걸어본 것이 얼마만 인지 모르겠다. 

작년 가을 창덕궁 후원을 걷고는 처음인 것 같다. 마드리드는 일찌감치 도시가 된 곳이라 건물 사이사이에 오래된 골목이 많다. 그날 우리는 수도원 뒤 쪽에 있는 빈 공터를 지나게 되었다. 

그곳엔 어스름한 가로등아래 철제 조각상이 세 개 설치되어 있었다. 멀리서 거리악사의 기타소리가 들리고, 퇴근길의 행인들은 익숙한 그 길을 무심코 지나갔다. 

관광객인 우리만이 그 빈 터의 적요가 너무 좋아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이런 곳은 언젠가 한 번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노마드처럼 정처없이 세계의 어느 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지금은 잃어버린 추억의 느낌이나 장소를 찾아가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이 빈터는 유년시절의 아주 오래된 골목을 연상시켜 주었다. 

신자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길을 걷다가 성당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는 버릇이 있다. 그날 저녁 아들이 먼저 발견한 산타마리아 성당은 평일 저녁미사인데도 주교님이 미사를 집전했다. 

성당안의 제대는 축일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스페인의 주님은 참으로 왕처럼 대접을 받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미사예식은 세계 공통이라 그날 난 스페인어 미사를 보고 나왔다. 미사를 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단지 신자들의 기도가 무슨말인지 잘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전쟁중지나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였으리라, 아니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을 것이라 확신한다. 

유난히 머리가 검고 영화배우처럼 예쁜 중년여인과 부군인 듯한 점잖은 신사가 했으니 말이다. 미사를 보고 나오는 길, 성당의 종소리 아래, 엎드려 구걸하는 메스티조여자의 목소리가 유난히 슬프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지인이 페이스북에 캡처한 사진과 함께 스미싱을 조심하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아는 이의 핸드폰 번호로 문자가 왔는데, 짧게 요약하자면 자기가 재혼을 하게 되었으니 와서 축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진짜인 줄 알고 하마터면 첨부한 주소 링크를 누를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문학 2024-02-09 
    지난 밤 하늘에서 내려보았던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야경을 뒤로한 채로 어느 도시보다 일찍 찾아온 라스베가스의 아침은 사막 한 가운에 피어 오르는 거대한 태양의 그림자를 길게 품은 채로 거칠 것 없는 대지의 위대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태양의 빛을 대지가 …
    문학 2024-02-02 
    안녕하세요! 오늘 소개드릴 식품은 ‘굴’ 입니다. 정확하게 말씀 드리자면 ‘냉동굴’(이하 ‘굴’)입니다. 아시안 마트 등에는 항상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상품입니다.냉동굴은 보기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사실 브랜드 이름만 다르지 거의 대부분이 한국에서 수입해서…
    문학 2024-02-02 
    미국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시작할 때다. 모든 것이 잘 다듬어진 미국 도시의 깨끗함과 정리된 풍경은 나를 압도했다. 그러나 늘 엽서나 그림에 나오는 도시의 모습을 보며 지내다 보니 모든 풍경이 항상 정리된 그림 같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좀 여유 있…
    문학 2024-02-02 
    한밤 중에 갑자기 종아리에 쥐가 나서 잠을 깬다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아주 가끔은 쥐가 날 수도 있지만 이런 증상을 오랜 기간 동안 자주 겪는 분들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쥐가 나고 근육이 경직되는 원인과 예방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리빙 2024-02-02 
    1월29일 월요일부터 IRS는 2023년도분 개인세무보고서 접수를 시작하였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세무보고 시즌에 돌입하는 때이다.IRS는 오는 4월15일까지 약 1억4천6백만 개인세무보고서 접수를 예상하고 있다. 개인 세무보고의 가장 중요한 서류중 하나인 W-2 양식도…
    회계 2024-02-02 
    ChatGPT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AI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번 AI가 불러온 신산업 혁명은 반짝하고 잊혀진 수많은 기술처럼 단기 트렌드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AI는 개인의 삶과 산업지형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며 우리는 적응해야만 한다.신산업 혁명은 기존 …
    부동산 2024-02-02 
    해발 7000피트에 위치한 인구 8000명 정도의 캘리포니아의 조그만 스키 도시인 맘모스 레이크스(Mammoth Lakes)의 아침은 매우 아름답고 특별합니다.그 아름다운 풍경을 놓칠세라 서둘러 숙소 밖으로 나갔더니 촘촘히 내린 새벽 이슬 사이로 간간히 찍힌 발자국은 …
    문학 2024-01-27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나라별 새해에 먹는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떡국입니다. 떡국에 들어가는 가래떡의 긴 모양은 길게 무병장수하라는 의미와 가래떡을 동전 모양으로 썰어서 물질적인 풍요를 기원하는 음식입니다.떡국을 먹어 야 한살…
    문학 2024-01-26 
    백화점 업계는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을 잡아내기 위해서 구석 구석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또한 손님을 가장한 백화점 직원들이 손 버릇 나쁜 사람들을 잡아내기 위하여 쉽게 도난의 타겟이되는 구역을 세밀하게 살핀다고 한다.이와는 내용이 다르지만 보험 업계도 비슷한 문제와 씨름하…
    리빙 2024-01-26 
    얼마 전 손님 한 분이 억울한 일을 당해서 법적 소송을 준비하는데 상대방이 개인이 아닌 Limited Liability Company라는 법인체 형태로 모든 일을 진행시켜 실질적 소유주를 찾는데 문제가 많았고 아직까지도 실질적 주인이 누구인지 몰라 소송에 어려움을 격고…
    회계 2024-01-26 
    마드리드 기차역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공항처럼 짐검사를 한다.자동차가 대세인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 여기선 기차가 아직도 사랑받는 대중교통인 것 같다. 수많은 기차의 게이트 넘버가 30분 전에야 올라오기 때문에 전광판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다행…
    문학 2024-01-26 
    세상의 신비함을 몸으로 느끼며 항상 모든 시간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비장함 속에 누려왔던 시간들이 벌써 2024년이 시작되었습니다.물가에 피어오른 풀 한 포기 다칠까 피해 가며 조심스레 흐르던 물줄기는 거칠 것 없이 대양을 향해 흐르지만 때로는 내칠 수 없는 장벽을…
    문학 2024-01-19 
    안녕하세요!오늘의 주제는 ‘뉴질랜드 그린홍합’이라는 해산물입니다. 흔히 중화요리 짬뽕에 많이 들어가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뉴질랜드 그린홍합은 마트 수산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상품입니다만 그 효능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어서 이 자리를 통해 소개합니다.…
    문학 2024-01-19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유럽에 무기를 팔고 금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전쟁이 끝났을 때 전 세계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의 3분의 2를 미국이 보유하게 되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는 바람에 달러를 많이 찍어내게 되었다. 미국은 1…
    부동산 2024-01-19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