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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스페인 여행기1 (달라스에서 마드리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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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한국이나 해외여행이 일반화 되면서 유럽이나 웬만한 아시아국가 여행은 안 해 본 사람이 별반 없을 정도로 흔한 일이 되었다. 그 사이 코비드를 거치며 본의 아니게 칩거에 들어간 여행객들이 작년부터 다시 공항으로 쏟아져 나와, 지금 세계는 어느 공항을 가든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예전엔 젊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세대에 상관없이, 특히 은퇴해서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생긴 베이비부머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우리의 경우는 아직 은퇴 전이긴 한데, 암튼 건강할 때 여행을 열심히 다니자는 편에 속한다. 때마침 남편의 밀린 휴가도 있어, 여기저기를 알아보다가 유럽으로 가는 직항 노선중 스페인 ‘마드리드’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보다는 가깝지만 그래도 9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니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닌데, 그래도 스페인은 평소에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한 곳이어서 쉽게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집집마다 여행을 가면 역할분담이 자연스레 나뉘어지는데 우리 집은 비행기예약은 남편이 볼거리, 호텔 예약담당은 항상 내가 한다. 특히 처음 가 본 도시는 지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호텔예약이 쉬운데, 요즈음은 관광지에서 호텔까지 거리가 자세히 표시되어 있어, 예전처럼 관광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예약을 하는 실수는 없다. 게다가 여행을 자주 다녀보니, 관광지에 근접한 곳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걷기도 쉬울뿐더러, 택시나 지하철 타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잡은 호텔도 마드리드 중심가에 있어, 마드리드 왕궁, 프라도 미술관, 마요르 광장이 모두 걸어서 십분 거리였다.
비행기는 달라스에서 오후 5시 45분 출발했는데 다음날 오전 9시경에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인데도 공항 안은 번잡했는데, 짐 찾는 곳까지 가는 공항 안 풍경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나라답게 공항 천정이 끝없는 곡선형의 물결이었다. 곳곳엔 그들이 자랑하는 피카소나 미로, 고야풍의 벽화가 보이고, 다른 공항처럼 지나치게 꾸민 흔적이 없어 외려 더 예술적인 느낌이 나는 공항이었다. 입국 후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곧장 숙소로 와서 먼저 몇 시간 잠을 푹 잤다.
이번여행은 작은아들도 동행했는데 우리보다 그 녀석이 더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드르렁 코를 골았다.
셋이니 트윈베드 2개와 벙크베드 하나인 숙소였다. 더구나 스페인은 저녁을 파는 식당이 주로 오후 7시 이후에 문을 연다 하니 천천히 일어나서 저녁부터 먹을 요량이었다. 오후 5시쯤 우리는 걸어서 마요르광장까지 갔다. 스페인이 정복한 남미의 도시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스페인의 도시들은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마드리드만 해도 유명한 광장이 몇 군데나 되는데, 스페인광장, 마요르광장, 솔 광장이 그곳이다.
광장 중심엔 영웅의 동상이 우뚝 서있고, 그 주변의 웅장한 건물들 꼭대기엔 노란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스페인 국기가 나부낀다. 광장 한 켠에는 야외 카페가 즐비하고, 살찐 비둘기들이 그 주변을 종종거리고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인증 샷을 찍고 바로 샌 미구엘 시장으로 갔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란 프로그램에서 본 시장이었다.
각종 해산물과 하몽 같은 스페인 특산물, 와인이나 맥주를 파는 곳으로 퇴근길 시민들이 한잔하고 가는 장소인지, 무척 사람들로 붐볐다. 하몽 한 접시와 맥주를 들고 테이블을 찾았지만, 서서 먹는 곳임에도 빈 테이블 찾기가 쉽지 않았다. 4년 동안 숙성했다는 하몽은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연어카나페와 게살 살라드, 각종 올리브도 모두 맛이 훌룡했다. 싱싱한 굴과 새우, 삶은 오징어등 우리들 입맛에 친숙한 해산물도 많았는데, 지중해가 가까워서 인지 해산물요리가 우리나라처럼 발달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 미국 같으면 집에 앉아 티브이나 볼 시간에 서울처럼 활기를 띄고 있는 도시에 머문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밤에 신변의 위험을 걱정하지 않고, 오래된 도시의 뒷골목을 느긋하게 걸어본 것이 얼마만 인지 모르겠다.
작년 가을 창덕궁 후원을 걷고는 처음인 것 같다. 마드리드는 일찌감치 도시가 된 곳이라 건물 사이사이에 오래된 골목이 많다. 그날 우리는 수도원 뒤 쪽에 있는 빈 공터를 지나게 되었다.
그곳엔 어스름한 가로등아래 철제 조각상이 세 개 설치되어 있었다. 멀리서 거리악사의 기타소리가 들리고, 퇴근길의 행인들은 익숙한 그 길을 무심코 지나갔다.
관광객인 우리만이 그 빈 터의 적요가 너무 좋아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이런 곳은 언젠가 한 번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노마드처럼 정처없이 세계의 어느 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지금은 잃어버린 추억의 느낌이나 장소를 찾아가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이 빈터는 유년시절의 아주 오래된 골목을 연상시켜 주었다.
신자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길을 걷다가 성당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는 버릇이 있다. 그날 저녁 아들이 먼저 발견한 산타마리아 성당은 평일 저녁미사인데도 주교님이 미사를 집전했다.
성당안의 제대는 축일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스페인의 주님은 참으로 왕처럼 대접을 받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미사예식은 세계 공통이라 그날 난 스페인어 미사를 보고 나왔다. 미사를 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단지 신자들의 기도가 무슨말인지 잘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전쟁중지나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였으리라, 아니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을 것이라 확신한다.
유난히 머리가 검고 영화배우처럼 예쁜 중년여인과 부군인 듯한 점잖은 신사가 했으니 말이다. 미사를 보고 나오는 길, 성당의 종소리 아래, 엎드려 구걸하는 메스티조여자의 목소리가 유난히 슬프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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