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빔밥이 만만해 보이지만 차려내려면 손이 여간 많이 가는 게 아니다. 보통 때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 가지고 만들다 보니 구색이 맞지 않았다. 모처럼 장을 봤다. 재료가 완벽하니, 비빔밥의 색과 조화가 잘 맞을 것 같아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채소도 신선할 때 요리해야 맛도 있고 보기도 좋다. 재료를 일일이 다듬어 데치고 무치고 볶다 보니 반나절이 후딱 지났다.
투명한 유리 용기에 색색의 나물이 완성되어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마음이 흐뭇했다. 만드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먹는 시간은 너무 빠르고, 한 그릇에 재료를 모두 담아 비비는 음식이다 보니 밥상이 휑해서 서운하기도 하지만, 비벼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자주 만드는 편이다. 비빔밥은 재료만 해 놓으면 각자 좋아하는 걸 골라 넣고 달걀프라이와 참기름, 고추장을 듬뿍 넣어 쓱쓱 비비면 없던 입맛도 살아서 돌아온다. 우리 집은 같은 재료를 두고도 저마다 담는 방식이 다르다. 달랑 세 식구뿐인데 취향이 다르다.
외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으셨다. 싱싱한 나물 몇 가지로 후딱 반찬을 만들어 큰 양푼에 담아 비벼 주셨는데, 가짓수가 많지 않아도 꿀맛이었다. 어머니는 조선호박에 새우젓을 조금 넣고 자박자박하게 볶거나, 양배추를 채 썰어 찰랑찰랑하게 볶아주셨는데 거기에 고추장을 넣고 비비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보리밥에 잘 익은 열무김치 하나만 있어도 훌륭한 비빔밥이 되었던 그 시절이 문득문득 그립다. 지금은 식재료가 풍성해도 뭔가 빈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그리운 얼굴들이 곁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비빔밥은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을 달래 주었던 가장 평범하면서도 따뜻한 위로였다.
대학에서 ‘한국의 음식문화’라는 수업을 들을 때 비빔밥의 옛 이름이 ‘골동반(骨董飯)’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물과 고기를 밥에 섞어 비벼 먹는 비빔밥의 역사에는 남은 것을 버리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하나를 만들어 낸 상생과 조화의 지혜가 깊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비빔밥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다. 시금치가 콩나물보다 높지 않고, 고기가 당근보다 더 귀한 것도 아니다. 저마다 다른 색과 향을 가진 재료들이 마지막 순간 자기 고집을 조금씩 내려놓고 하나의 아름다운 맛을 완성한다. 나는 그 모습이 가장 한국적인 정서이자 아름다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 상에 둘러앉아 큰 양푼에 든 비빔밥을 나눠 먹으며 ‘나’보다 ‘우리’라는 가치를 먼저 배웠다.
코리안 페스티벌 축제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대형 비빔밥 퍼포먼스였다. 수백 인분의 재료를 거대한 그릇에 담아 모두 함께 비비고 다시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 국적과 나이를 초월한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며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비빔밥이 품고 있는 상생과 화합의 의미를 새삼 느끼곤 했다.
외국에도 비벼 먹는 문화가 있다. 치폴레에서 부리토 볼을 주문하면 밥 위에 고기와 채소, 사워크림 등 얹어 주고, 하와이의 포케 볼이나 지중해식 그레인 볼도 여러 재료를 한 그릇에 섞어 비벼 먹는다. 서구의 볼(Bowl) 문화가 개별적인 재료들의 물리적 결합이라면, 우리의 비빔밥은 고추장과 참기름이라는 다정한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무는 화학적 융합이다. 그것은 단순히 음식을 섞는 행위를 넘어 시간을 비비고, 아련한 기억을 비비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한데 비벼내는 일이다.
이민 초에 비빔밥 장사를 해 볼까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다. 손님이 원하는 재료를 취향껏 골라 담아 주는 참신한 콘셉트였는데, 여건이 되지 않아 아이디어는 사장됐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딱 내가 생각했던 비빔밥집이 달라스에 생겼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재료를 종류별로 만들어 놓은 것뿐만 아니라 일반 비빔밥과 돌솥비빔밥으로도 해주는 식당이 생긴 거다. 그 식당 앞을 지날 때마다 그때 무리해서라도 차렸다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지난 일을 아쉬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빔밥을 먹을 때면 문득 그 시절 맨땅에 헤딩하듯 품었던 열정과 어설픈 꿈이 함께 씹힌다. 이리저리 계산하고 설계하고 설렜던 추억만큼은 지난 이민의 삶 속에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늘 비빔밥을 시켜 먹는다. 작은 고추장 튜브를 열어 밥을 비비는 순간, 내 마음은 목적지보다 먼저 서울에 닿곤 했다. 기내식 하나가 그토록 깊은 그리움을 달래 줄 줄은 젊은 날에는 미처 몰랐다.
유리 용기 속 나물은 아직 비빔밥이 아니다. 섞어 줄 때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음식이 된다. 사람도 그렇다. 이민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저마다 다른 삶의 궤적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서로 섞이고 기꺼이 어우러질 용기를 낼 때 비로소 하나의 단단하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된다. 우리는 자기만의 낯선 영토에서 저마다의 고립을 겪으며 살아간다. 고추장 한 숟갈과 참기름 몇 방울이 낯선 재료들을 하나의 음식으로 묶어 주듯, 언젠가 서로 다른 우리가 한 식탁에 둘러앉아 하나의 세상을 함께 비벼낼 수 있기를 바라며, 희망 한그릇을 담아 비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