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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추석 ‘단상’

Last updated: 9월 27, 2024 9: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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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하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멀게 느껴지며, 여름내 피고 지던 야생 해바라기가 시들어갈 즈음이면 추석무렵이다. 미국 와서 강산이 몇 번 변할 만큼 살았는데도 난 아직도 한국의 절기를 고집한다. 예전에는 쩔쩔끓는 날씨에 ‘처서’나 ‘백로’를 갖다 붙이면 참 안 어울린다 싶었는데, 요즘은 기후 이상으로 한국날씨가 여기와 별 다르지 않아서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다. 게다가 ‘추석 폭염’ 때문인지,  부모님댁보다는  풀장이나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는 추석 연휴객들도 많다 하니 고국의 추석풍경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 같은 재외동포의 경우, 명절의 의미는 남다르다. 차례 제사상을 차리거나 친지를 방문하는 등 한국에서의 명절 지내기와는 양상이 다르지만, 나름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우리의 전통을 이어 나간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기념일임이 확실하다. 또한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친척들과 모처럼 안부를 주고 받거나 그 시절 추석풍경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향수에 푹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느 핸가 엄마는 추석빔으로 언니와 나와 동생의 바지를 편물점에 부탁해 똑 같은 파란색으로 맞추어 입혔다. 여기엔 같은 색 실을 한 뭉치 싸게 사서 사이즈만 다르게 만들어서  계속 물려 입히려는 엄마의 계산이 들어가 있었는데, 암튼 그 시절에 우리집은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이나 되어서야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었다. 그리고 추석 전날 우리는 순천에서 좀 떨어진 용수동이란 곳에 사는 큰아버지댁으로 차례를 드리러 갔다. 엄마는 머리위에  음식이 담긴 국석을 이고, 우리는 불빛도 별로 없는 시골길을 환한 달빛에 의지해 따라 갔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일은 귀신처럼 우물가 옆에 서 있던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의 모습과 황하의 소용돌이처럼 크게 들렸던 냇가의 물소리, 자꾸 출렁출렁 우리를 따라 다닌듯한 보름달이었다. 걷기가 지루해 질때면  나는 눈을 감고 걸으며  송림이 보이냐고 엄마에게 자주 물었는데, 왜냐면 그곳에  도달하면 큰댁에 거진 온 거나 마찬가지 였기 때문이다. 큰댁이 가까워오면 저 멀리에서 할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먼저 가서 안기려고 기를 쓰고 달려 갔었다. 큰댁의 방안엔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고, 밤을 치는 등 차례상 준비로 분주하고 , 우리들은 갖가지 음식을 맛보며, 밤이 늦도록 어른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들을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다음날이면 큰댁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인사를 하고, 이웃들의 각기 다른 송편 맛도 보고 , 햇밤을 주으러 가 밤가시에 찔려보면서 밤의 부드러운 맛이 그냥 나온게 아님을 깨닫기도 하면서 추석명절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즘의 추석풍경은 많이 달라진 듯 하다. 아직도 전통을 고수하며 명절을 쇠는 가정이 대다수 이긴 하지만,  세대교체가 시작되면서, 예전처럼 의무적으로  시댁엘 가서 차례상을 준비하는 젊은 며느리들의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간단하게 성묘만 가거나 , 쉬는 것으로 추석연휴를 보내는 게 대세라고 한다. 심지어 시어머니가 명절음식 준비를 다 해놓고, 오라고 해도 거절하는 아들, 며느리가 많다고 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비해 이곳의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는 더 전통적인 느낌이 든다. 3억이 넘는 미국인구가 장거리를 마다 않고, 가장 들썩이는 명절이기 때문이다. 홈리스나 음식을 준비할 수 없는 가정을 제외하곤 미국가정들이 선물이나 식비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날들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간만에 서로의 소식을 주고 받을 뿐인데,  살면서 이런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한다. 가족공동체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단합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돼,  한 해를 살아갈 삶의 원동력을 얻기 때문이란다.  유달리 큰 올해의 슈퍼 문,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해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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