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한솔문학, 변신을 꿈꾸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9-13 09:07

본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김미희 시인 / 수필가

 드디어 <한솔문학> 10호가 발간되어 내 손에 들어왔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예상보다 훨씬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 작은 문예지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정성을 담고 있는지 생각하니, 그동안의 복잡했던 마음이 차차 가라앉는 듯했다. 처음에 <한솔문학>을 맡게 되었을 때의 부담감이 다시 떠오른다. 손용상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내가 과연 이 책을 잘 이끌어갈 자격이 있는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계속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그때마다 격려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 같다.


  출판 작업은 예상보다도 더 길고 세심한 과정을 요구했다. 원고들을 교정할 때마다 손용상 선생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나 얼마 안 남았어.” 선생님께서 가끔 하셨던 이 말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 말씀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이 책의 무게를 더욱 실감했다. 출판사 대표님은 너무 꼼꼼하게 교정을 보는 나를 보고 이제 그만하라고 웃으며 말리셨다. 그만큼 나는 완벽하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큰 압박감을 주었다.


  지난 주말, 나는 사모님과 함께 손용상 선생님의 묘소를 찾아갔다. 손에 들고 있던 <한솔문학> 10호를 내려놓자, 사모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셨다. “당신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사모님의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차올랐다. 선생님의 유지가 이어져 이렇게 또 한 권의 문예지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5년 전, 손용상 선생님께서 처음 나에게 <한솔문학> 창간을 제안하셨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한솔문학>을 발간하셨고, 결국 9호까지 세상에 내놓으셨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선생님은 가끔씩 만나 뵐 때마다 <한솔문학>의 미래를 걱정하셨다. “내가 얼마 안 남았어.” 그 말씀을 듣고도 나는 선생님께서 몇 년은 더 해내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빨리 찾아왔고,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앞섰다.


  처음 선생님을 추모하며 <한솔문학>을 맡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반신반의했다. 과연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많은 분들의 추모 글이 도착하면서 점차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선생님을 향한 깊은 애정과 존경의 마음이 느껴졌고, 그 덕분에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며칠 전, 사모님께서 다시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이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떠나셨다는 걸 느껴요.” 사모님의 목소리는 떨렸고, 나 또한 그 마음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책에 실린 여러 사람들의 추모 글을 읽은 선생님의 가족들이 한결같이 감사의 마음을 전해왔다. 그 글 속에서, 가족들은 선생님께서 성치 않은 몸으로 몇 년 동안 책을 발간하시며 얼마나 많은 노고를 감수하셨는지 새삼 느꼈다고 했다. 비록 그동안 이 일이 돈이 되지 않았고,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까지 하며 진행해 온 일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이 전해지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손용상 선생님께서는 항상 “수채화를 그리듯 깨끗한 도화지 위에 좋은 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마음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이 떠나시고 나서 <한솔문학>을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지 막막했지만, 여러 필자와 독자들의 마음이 모여 가능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의지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2019년 6월, “본향과 타향을 잇는 징검다리 문예지”라는 슬로건 아래 출발한 <한솔문학>은 잠시 멈췄지만, 손용상 선생님의 부재 속에서도 다시 그 걸음을 이어가게 되었다. LA, 뉴욕, 달라스를 잇는 북미 문학 공동체의 연결점이 되겠다는 선생님의 뜻을 기리며, 나는 그 길을 걷고 있다.


  이번 10호는 손용상 선생님이 생전에 받으신 원고들과 선생님의 추모 글을 엮어 만든 것이다.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솔문학>은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본향과 타향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넘어, ‘K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끝으로, 진심으로 격려해 주시고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모델들이 런웨이에서 워킹을 하다 구두가 벗겨지거나 굽이 부러져 넘어지는 사고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일반인이었다면 놀라서 주저앉겠지만, 프로는 대처법이 다르다. 평소 까치발을 들고 워킹 연습을 해 온 노하우 덕분일 수도 있겠으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자세를…
    문학 2024-12-20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lt;순대와 생…
    문학 2024-12-13 
    이스탄불의 성지…..5월에 얼떨결에 예약한 성지순례날이 다가왔다. 시월 말인데도 텍사스 날씨는 여전히 더워, 미리 검색한 튀르키예의 날씨가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섭씨 20도라니, 선선한 가을날씨 일 것이다. 그래도 아침 저녁으론 추울 것 같아 패딩조끼와 쟈켓을 하나…
    문학 2024-12-06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여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그가 집권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내 친구는 환한 얼굴로 가게에 들러서 신이 난 김에 점심까지 사주고 갔다. 희망으로 들뜬 친구의 소망대로 근심거리가 하나씩 해결되고 치솟은 물가도 안정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인은 조국을 위대한…
    문학 2024-11-29 
    오후 여섯 시가 조금 지난 시간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같은 벨 소리인데 이 시간에 울리는 벨 소리는 항상 특별하게 느껴진다. 종일 울리는 그 소리와는 달리 이 벨 소리에는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엄마, 오늘은 퇴근이 언제예요?” 아들의 다정한 …
    문학 2024-11-22 
    지난 10월 26일, ‘제2회 창원 세계디카시페스티벌’이 창신대학교와 한국디카시인협회 공동주최로 창신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제24회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일환으로 열렸던 행사 중 중요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세계디카시컨퍼런스’에 참석하였다. “K-Art로서 한글 …
    문학 2024-11-15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lt;순대와 생…
    문학 2024-11-08 
    지난 달에 있었던 해외 풀꽃 시인상 시상식엘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시 보다는 소설과 수필을 주로 써왔는데 틈틈히 쓴 시로 수상을 하게 되어 더욱 기뻤는데, 어쨌든 난 시를 무척 좋아하고 시를 계속 써왔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에 비하면, 나는 그냥 문학을 …
    문학 2024-11-01 
    이상하게 한 달에 사나흘은 더 고달프고 우울했다.돈을 버는 것도, 마트에서 무얼 살까 결정하는 것도, 그 재료들을 다듬어 요리하고, 하루에 세 번 먹는 것을 반복하는 것도 권태로운 노동으로 여겨졌다. 가족은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혼자서 많은 일을 감당하는 게 부당하…
    문학 2024-10-25 
    며칠째 비가 올 듯 하늘이 잔뜩 흐렸더니, 오늘도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어느새 수확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수영장에 빠져 떠다니는 후박나무 잎을 건져내다가, 의사가 해주었던 비타민 D 부족이라는 말이 떠올라 오랜만에 텃밭에 앉아봅니다. 텃밭에서 마주…
    문학 2024-10-18 
    한국의 추석을 생각하면 높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가을꽃과 풍성한 오곡백과, 넉넉하고 둥근 보름달이 연상되었다. 지구도 중증을 앓는지 올 추석엔 폭염주의보를 보내어 그런 가을 풍경은 기대할 수 없었다. 체감온도가 33℃ 이상이다 보니 모든 사람이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문학 2024-10-11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lt;순대와 생…
    문학 2024-10-04 
    들판에 하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멀게 느껴지며, 여름내 피고 지던 야생 해바라기가 시들어갈 즈음이면 추석무렵이다. 미국 와서 강산이 몇 번 변할 만큼 살았는데도 난 아직도 한국의 절기를 고집한다. 예전에는 쩔쩔끓는 날씨에 ‘처서’나 ‘백로’를…
    문학 2024-09-27 
    매일 아침 선물을 받는다.선물은 언제나 침대에서 내려와 한 걸음쯤 떨어진 바닥에 놓여있다. 나는 그것을 무심히 집어 올린다. 하지만, 시간을 가늠키 어려운 어느 아침, 창밖으로 시커먼 구름이 비를 쏟아내는 광경을 보거나 혹은 동트기 전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
    문학 2024-09-20 
    드디어 &lt;한솔문학&gt; 10호가 발간되어 내 손에 들어왔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예상보다 훨씬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 작은 문예지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정성을 담고 있는지 생각하니, 그동안의 복잡했던 마음이 차차 가…
    문학 2024-09-1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