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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 인류는 발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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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리빙 댓글 0건 작성일 24-12-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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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답이 뻔한 질문을 칼럼 제목으로 적어놓았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과 편리해진 일상을 보면 인류는 확실히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명해 보이는 질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가 인류 발전의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과 그 속에 발견하는 우리의 미래를 점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처음 이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은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를 읽었을 때였다.  


이스라엘의 역사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학과 역사학에 대한 여러 대중서를 집필하였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약 10년 전에 발표된 사피엔스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 혁명적 변화로 꼽았다. 놀라운 것은 저자가 농업혁명을 인류 비극의 시작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농업혁명은 인류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토대가 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하라리의 이러한 관점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농업혁명 이전 인류는 수렵채집 생활을 했다. 임시로 정착한 지역에서 과일이나 열매를 따 먹고 물고기나 동물을 사냥하며 살았다. 먹거리가 줄어들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같은 수렵채집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땅에 떨어진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자라난 식물에서 열매가 자라는 것을 보며 적극적으로 땅에 씨앗을 심어 열매를 수확하는 농경 사회를 이루었다. 


텃밭을 가꾸어 본 경험이 있다면 그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좋은 수확물을 많이 얻으려면 가뭄일 때는 물을 공급해줘야 하고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물길을 내어 배수에도 신경 써야 한다. 잡초가 많으면 김매기도 해야 하고, 병충해도 신경 써야 한다. 농경 사회는 인간의 근육에서 나오는 노동력의 가치를 상승시켰다. 더 큰 힘을 내는 남성의 가치가 올라가며 남성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고, 인간이 하루 종일 노동해야만 하는 사회 구조로 변화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이 점을 매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농경 사회 이전 인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였을 것으로 보았다. 낮 동안의 수렵채집으로 하루의 식사를 구하면 그것으로 족한 생활이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수렵채집은 매우 고달픈 생활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지금 가까운 숲 속으로 캠핑을 가서 먹을거리를 찾는다면 어떨까? 먹을만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자연적인 먹거리가 없는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근처 가게에서 먹거리를 살 수 있으니까. 수렵채집 시대에는 그것이 가능한 특정지역에 아주 작은 규모의 부족들만 살았다. 유발 하라리는 농경 사회의 출현이 인류에게 결코 안락한 새 시대를 열어주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농경 사회의 등장을 인류의 비극으로 본 유발 하라리의 관점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역사적 이벤트를 좋음과 나쁨으로 평가할 때 습관적으로 도덕적 당위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즉, 농경 사회가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 우리는 이제 농경 사회를 부정하고 그전으로 돌아가야 하느냐고 반문하기 쉽다. 역사의 평가와 도덕적 당위성을 분리하기 어려운 것은 역사의 역할 때문이다. 기록된 역사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서 교훈을 얻고 현재를 반추하며 미래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일련의 작업에서 역사적 평가와 도덕적 당위성은 불가분의 관계다. 


하지만 농경 사회의 등장을 평가할 때 같은 방식의 접근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류는 이미 농경 사회를 지나 산업사회를 이루었고, 앞으로도 여러 다른 단계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인류 문명 발전의 기초 또는 인류 문명사의 비극이라는 농경 사회에 대한 두 가지 역사인류학적 평가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모두 인정한다면, 우리는 인류가 발전한다는 명제에 조금은 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인류 사회가 꼭 발전해야 하며 그 방향까지도 집착에 가깝게 주장했던 사람이 바로 카를 마르크스다. 그는 재화를 만드는 양식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근본 원인이고, 그 과정을 통해 역사가 진보한다고 보았다. 원시시대-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로의 이행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는 생산 수단을 독점하고 있고, 그 대척점에 있는 노동자(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을 일으켜 사회주의에, 궁극적으로 완전한 이상 사회인 공산주의에 도착해야 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자본주의가 실현된 서유럽에서 먼저 일어나야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제 군주국이었던 러시아에서 먼저 일어났다. 공산주의 체제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함께 그 힘을 잃었다. 


수렵채집인들이 서서히 농부로 변신하면서 그들이 어떤 새 시대를 열게 될지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켰던 러시아인들은 확고한 역사 발전 청사진이 있었지만 결국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과학기술 발전이 최고의 덕목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증기기관, 트랜지스터, 컴퓨터 등의 과거 과학기술 혁명을 주도했던 주인공과 사뭇 다른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여 인류 사회 구석구석에 사용된다면 그것은 인류의 발전을 의미할까? 인공지능이 여는 새 시대는 혹여 우리가 발전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랜 시간 뒤 인류의 비극적 선택으로 평가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과학기술과 새로운 사회구조 등 흥미로운 인류사의 변화를 한 발짝 물러서서 관전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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