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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유용한 식품상식]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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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한국의 대표 음식, 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김치 없는 한국인의 밥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의 음식문화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것이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김치는 무, 배추, 오이 등의 여러 채소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버무려 발효시킨 식품입니다. 비타민과 무기질의 보고인 채소는 원 상태로 저장하기 어렵기에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장, 초, 향신료 등과 섞어서 새로운 맛과 향기를 생성시키면서 저장하는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개발된 우리 고유의 식품이 바로 김치인것 입니다.
어원을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김치를 ‘지(漬)’라고 하였습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에서는 김치 담그기를 ‘염지’라 하였는데, 이것은 ‘지’가 물에 담근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소금에 절인 채소에 소금물을 붓거나 소금을 뿌림으로써 국물이 많은 김치를 만들어냈고, 숙성되면서 채소 속의 수분이 빠져나오고 채소 자체는 채소 국물에 침지(沈漬)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네 고유의 명칭인 침채가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침채가 팀채가 되고 이것이 딤채로, 이후 딤채는 구개음화하여 김채가 되었으며, 다시 구개음화의 역현상이 일어나서 오늘날의 김치가 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농업이 권장되었고 인쇄술 또한 발달되어 우리 환경에 맞는 농서가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채소 재배 기술도 향상되어 김치 종류도 다양해졌습니다.
하지만 한민족 특유의 정서를 상징하는 ‘매운맛’은 임진왜란 이후에나 가능했습니다. 매운맛을 내는 고추가 선조 25년(1592년)을 전후해 일본 혹은 중국으로부터 처음으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고추는 당시만 해도 독성 물질로 여겨져 200여년간 식품으로 활용되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초반부터 김치에 고춧가루가 들어가고, 젓갈이 다양하게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두고 농민항쟁 등 당시의 격변하는 사회상이 매운 음식을 찾게끔 했다고 설명하는 이도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유학자들이 쓴 책엔 고추, 마늘, 파, 젓갈 등의 양념을 김치에 많이 쓰라고 권유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채소를 염장하기 위한 구황식품으로 나라에서 하사하던 소금이 잦은 기근으로 부족했던 탓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겨난 매운맛에 배추가 결합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무렵입니다. 과거 김치의 주재료는 오이, 무, 가지, 순무 정도였고 배추는 지금의 속이 꽉 찬 배추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속이 꽉 찬 결구형 ‘조선배추’를 처음 육종하기 시작한 건 1850년대 였습니다.
담금법도 장아찌형, 물김치형, 박이형, 섞박지형 등으로 다양하게 발달하게 됐고, 제조방법에 있어서도 소금을 털어 토렴하는 절차를 거치는 2단계 담금법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김치의 효능은 단연코 유산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에 좋은 박테리아가 생성되어 소화와 면역, 장염증 억제에 도움을 줍니다. 김치에 풍부하게 들은 식이섬유는 적은 열량에도 포만감을 줌으로서 항비만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부원료인 마늘과 생강은 우리 몸에 항암 효과로도 작용합니다.
고추와 마늘에 들어있는 캡사이신, 알리신과 같은 생리활성 물질은 우리몸에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좋은 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증가 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효자 역할을 하는 김치는 미국 연방정부 차원에서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이미 캘리포니아, 버지니아 등 일부주에서는 기념일을 선포했지만 연방차원에서의 기념일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김치를 넘어 다른 한국음식들의 기념일이 생겨남으로인해 미주 한인임이 자랑스러운 날들이 늘어 가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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