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가을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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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빠르게 하향곡선을 그으며 뜨겁던 태양의 열기가 식고 날씨가 선선해지자 뒷마당에 가을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정성껏 가꾼 열 포기 정도의 깻잎 덕분에 봄부터 나눔이 풍성했다.
쌀 반톨보다 더 작은 들깨씨가 자라 두 아름이 넘도록 가지가 퍼지고 잎을 내주었다. 우리는 물론 주위의 지인들까지 따고 따도, 계속 나오고 크는 기적 같은 들깻잎이다.
이제 부지런히 거두어야 했다. 씨를 받을 게 아니니 잎을 따서 나물로 먹도록 갈무리해야 한다. 잎이 난 자리마다 꽃주머니 속에 익어가는 들깨씨앗들. 영근 후에 턴다면 숫자로 셀 수 없는 엄청난 씨알들이다.
성경의 ‘오병이어 기적’을 볼 수 있는 현장인 셈이다. 열린 마음으로 자연을 둘러보면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이 분에 넘치는 축복이다.
들깻잎을 추수하는 옆에서 지켜보던 진돗개 ‘진순노인’이 졸다가 훌러덩 넘어졌다. 제 풀에 놀라 허둥거리며 빨리 일어나려고 애쓰는 안쓰러운 모습에 일부러 눈 맞춰서 하하하 큰 소리로 웃어 주었다. 자기도 멋쩍은지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남편 진돌을 보낸 후 처음 보는 환하게 웃는 표정이 반갑다. 노처녀인 겔리코 고양이 나비와 진순, 우리 부부 모두 ‘가을나이’다. 집안에 가을이 가득하다.
이 가을에 ‘가을나이’가 채 되기도 전에 떠나신 시어머니, 울 엄니 생각이 부쩍 난다.
6·25 전투 막바지에 남편이 전사해서 홀로 되셨다. 장사하며 아들 키우며 살다가 병원에서도 회복이 어렵다는 중병에 걸리셨다.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하던 중 무당의 욕심을 알아채고 굿을 멈추게 하니 “곡기를 끊을거다”고 했단다.
동네에서 교회 다니던 권사님께 부탁해 그 주일부터 리어카에 실려서 그 먼 교회를 가셨다고 했다. 친정에서 호랑이 고모, 친가에서는 호랑이 큰엄마이셨던 울 엄니가 집안에서는 첫 기독교인이 되셨다. 당시에 핍박도 받았지만 장손인 무녀독남 아들을 목사로 키우셨고 덕분에 완전히 기독교 가문이 되었다.
울 엄니 친정과 친가가 전부 예수를 믿으니 증손까지 친다면 몇 백이 넘으리라. 어린 나이에 혼자되어 호랑이(?)로 살 수밖에 없었던 울 엄니의 마음 밭은 하나님 앞에서 좋은 땅에 심기었던 들깨 같았나보다.
울 엄니의 열매에 나를 비춰본다. 20대에 구라선교회(Leprosy Mission) 병원에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당시는 선교사들이 물리치료사로 일했고 한국 사람으로는 최초였다.
왜 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한센(나병)환자와 그 가족들의 사회적 처참함에 맞물려서 왜? 왜?로 시비를 거는 선교회병원의 별종이었다.
그 분의 부르심에 감히 알량하고 얄팍한 지식으로 해가 바뀌도록 고집과 객기를 부렸다. 그 분께 여지없이 ‘참패당하는 복’을 받아 철저히 회개한 후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다.
기도응답대로 목사의 아내가 되었고 기도하며 동역자로 살아왔는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내 친정 식구들에게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걸까? 과연 내가 진지하게 복음을 전했을까? 그들에게 예수복음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영적부요의 소중함을 모르는 친정 식구들에게는 직장을 포기하고 시작한 목회가 이해될 일이 아니었으리라. 예수 안 믿는 친정이기에 내색 안했는데도 재정적인 어려움이 안쓰러웠을 친정엄마는 늘 “너나 예수 믿고 잘 살아라, 그게 내 소원이야”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의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가슴을 치며 기도했던 수많은 날들.
이제는 친정 식구들의 영혼 또한 그 분의 손에 맡기고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거룩한 나그네’로 살다가 가고 싶다.
여학생 때 하교길에 친구와 낙원동의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다. 가게 앞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인생은 나그네 길…” ‘하숙생’노래가 나오자 내 손에 자기 가방을 지워주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노래가 끝나도록 서서 듣던 친구. 어디서 어떤 나그네 삶을 살고 있을까?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그녀의 우상이었던 ‘찐빵’ 최희준 씨도 이미 나그네 길을 접으셨다.
예수 믿기 전에 성경을 두 세 번 통독할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예수 믿은 후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그 노래 말을 성경에서 발견하고 반갑고 신기했다.
아브라함은 평생을 광야에서 나그네로 살았다고 했다. 다른 믿음의 조상들 또한 목적이 분명한, 천국본향을 향해 가는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분들이다. (창 23:4,히 11:13-16)
캐롤튼의 W. J. 토마스 공원에 걸으러 갔다. 호수를 감싸고 드넓은 풀밭 여기저기에 무리지어 핀 아기 손톱같이 작은 풀꽃, 잔디밭에 뿌리내렸기에 잔디 깎을 때마다 함께 깎여서 한 뼘도 못 되는 낮은 키가 되었다.
하얀 꽃잎에 속이 노란 개망초꽃(계란꽃-Daisy Fleabane)들이 짧아지는 가을볕 아래 탄성을 지르며 이곳저곳에서 무더기로 꽃을 피워내고 꽃씨를 품는다.
“개망초꽃 그래 너희처럼 사는 거야. 주어진 환경에서 살 수 있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네 모습. 깎여도 밟혀도 그 모습 그대로 하늘 우러르며 기쁨의 작은 꽃 계속 피워 내는 너. 언제 뭐가 닥칠지 무슨 걱정이래. 가을의 축복으로 알곡 되고 겨울 안식을 예비하는 ‘가을나이’를 살면 되는 걸. 등잔에 기름을 예비한 슬기로운 처녀, 예비 된 신부로 예수님 오시는 날 기쁨으로 맞이하게 되겠지.”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마가복음 4:20)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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