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작년 이맘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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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남편과 나는 여수, 순천을 둘러보고 일행과 떨어져 하동 송림과 화개 쌍계사를 둘러볼 참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이른 아침 6시 반에 포항 가는 기차가 있었다. 내친김에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달리는 기차를 타보고 싶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면서 기억속에 묻어 두었던 산천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미국에선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기차보다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들을 싣고 다니는 삭막한 기차들 뿐이어서, 내친 김에 삶은 달걀과 오징어를 팔던 사람냄새 가득한 기차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기차는 여전히 내게 옛 추억을 소환해 줄 수 있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너무 다양한 정보가 문제였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하동 송림을 가려면 하동역보다는 진상역에서 하차해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더 가깝다고 나와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 기억에도 하동역과 송림은 거리가 꽤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월요일 아침 순천에서 채 20분도 안 걸리는 진상역에 하차했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고 우리가 찾는 버스 정류장은 보이지 않아, 물어 물어서 큰길 뒤편에 숨어있는 정류장을 찾아갔다.
9월 말이었지만 비가 내린 탓인지 날씨는 꽤 쌀쌀했다. 버스시간표에는 20분 후에 하동 가는 버스가 오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30분 아니 거의 한 시간이 되어 가는데도 우리가 기다리던 버스는 오지 않았다. 오랜 미국생활로 우리는 시골버스가 어떻게 운행되는지를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한 시간 쯤 되자 하동행 버스 한 대가 우리앞에 멎었다. 사실 우리가 기다리던 버스는 아니었는데 기다림에 지친 우리는 그냥 이 버스에 훌쩍 탑승을 하고 말았다.
예상대로 이 버스는 섬진강 주변의 작은 마을들을 전부 정차하고 지나갔다. 잘 알려진 매실마을을 비롯해, 크고 작은 마을들이 수도 없이 나왔다.
탑승객들은 주로 나이든 할머니들과 어린 학생들 뿐이었다. 이윽고 섬진강 다리를 건너자 하동 송림이 보였다. 느낌에는 1시간 정도를 돌고 돈 것 같았다.
우리는 몸도 녹일 겸 재첩국을 파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송림근처 식당은 대부분 재첩국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하동은 원래 섬진강에서 채취한 재첩국과 은어가 유명하다. 어린 시절 기차가 멎을 때 마다 재첩국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재첩국 사이소”를 외치던 아낙들이 생각났다.
그런데 밥상에 나온 재첩국엔 조개는 보이지 않고 작은 알맹이만 들어 있어 재첩국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식당 주인 말에 의하면 요즘은 조개는 다 버리고 알맹이만 체에 걸러 국을 끓인다고 했다.
난 썰은 부추가 둥둥 떠있는 재첩국을 먹으며 도무지 옛날 그 맛이 아닌 것이 혹시 중국산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들었다.
오직 하동 송림만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서있었다. 몇 백년 묵은 소나무들이 울울창창 하늘을 가리고, 넓은 섬진강 백사장은 여전히 강물이 흐르는 것을 소리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김용택시인의 시 ‘섬진강’이 생각났다. 시인은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고 했다.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철마다 갖가지 꽃이 피며,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노래했다.
전북 임실에서 시작해 하동 광양에 이르는 섬진강은 전라남북도, 경상남도 등 삼도에 걸쳐 있으며, 수질이 맑고 철따라 변하는 주변풍광이 달라 많은 문인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강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화개장터나 쌍계사 십리 벚꽃길이 1시간 거리에 있고 박경리 ‘토지’의 배경이 되는 악양면은 하동 읍내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지금은 그 일대를 드라마 ‘토지’에 나오는 마을로 재현해 놓아서 최참판댁이나 당시 마을사람들 집을 소설장면을 유추하며 들여다 볼 수 있다.
하동시장 역시 ‘토지에 나오는 읍내장터’라고 표기 되어있어 월선이 주막 등이 있던 자리 같다. 화개장터는 너무 상업화되어 있어 예전 장터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쌍계사 가는 버스가 수시로 있어, 지리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천년고찰을 쉽게 만날 수있다.
어젠 문득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다. 쌍계사 입구에서 보았던 수류화개(水流花開) 란 글이 떠올랐다. 이 글은 고인이 되신 송광사 법정스님이 즐겨 쓰시던 법문인데 직역하면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란 뜻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우리는 물이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것같다. 물이 흐르지 않으니 꽃도 피지 않는다. 아니 피어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언제쯤 우리는‘수류화개’의 시간 속에 살게 될까? 내년엔 작년 이맘때가 아닌 지금 현재, 실재의 시간을 사랑하며 살게 되었음 좋겠다. 송편마저도 비대면으로 주고받는 시대, 대면의 시간들이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고대해본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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