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Off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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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미드를 비롯해 캐나다 드라마를 거쳐 ‘Offspring’, 자식이라는 호주 코미디 드라마에 빠졌다. 아마 큰 아이의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가족이라는 단어에 빠진 것처럼 가족 드라마를 많이 찾아보고 있다.
특히 캐나다 드라마 ‘하트랜드’를 보면서 잊고 살았던 내 유년의 가족을 많이 떠올리게 되었고 가끔 그 시절을 회상하는 꿈도 꾼다.
다양한 모습의 인간관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들만 보다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말을 드라마 중심에 두고 있어 더 흥미롭고 신선했다. 이 드라마는 하트랜드라는 말 목장을 배경으로 한 캐나다 국민 드라마로 시즌 13을 마치고 시즌 14를 준비하고 있는 장수 드라마다.
처음에는 말 치료사였던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목장을 물려받은 에이미 플러밍의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장례를 돕기 위해 뉴욕에서 돌아온 언니 루가 목장에 남게 되면서 드라마의 폭이 넓어진다.
특히 나를 사로잡은 건 그들의 외할아버지, 잭이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스토리 전개가 다양해지면서 잭에게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저런 모습이라면, 저렇게만 늙어갈 수 있다면, 늙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드리머라는 주제곡이 흐르면서 말을 타고 대자연을 누비는 모습도 큰 볼거리였지만, 드라마 중간중간에 보여주는 광활한 대자연을 볼 때마다 큰 소리로 남편을 불러 언제 갈지 모르는 여행 리스트에 올려놓으라고 당부하곤 했다. 하트랜드를 다 보고 그 여운으로 한동안 행복했다.
하트랜드와는 전혀 다른 도시의 산과 병동을 소재로 한 ‘Offspring’, 자식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또 다른 삶을 접하면서 즐거웠다. 2010년에 시작해서 2017년 7시즌으로 마감을 한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제목에 사로잡혀 그만 문을 열고 말았다.
줄거리는 30대의 산과 의사 니나 프러드만과 그의 가족, 친구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사랑과 삶을 그렸다. 전형적인 드라마에 코미디 플래시백과 그래픽 애니메이션, 판타지 등 다양한 방식을 이용해 흥미를 더해준다.
재미없는 현실에서 도피하기에 딱 좋았다. 별로 웃을 일도 없는 이 황당한 팬데믹 상황에서 혼자서도 킬킬거리며 소리 내 웃을 수 있어 좋았다.
처음부터 빵 터졌다. 니나 프러드만은 동료이자 친구였던 크리시의 출산과정에서 아이의 아버지가 달시 프러드만, 즉 자신의 아버지라는 걸 알게 된다. 니나에게는 언니와 남동생이 있고 부모님은 별거 중이었다.
쌍팔년도의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좀 무리였지만, 처음 대하는 호주 드라마인지라 마음을 열고 그냥 집중하고 이어 달렸다.
달시 프러드만과 크리시는 크루즈 선상 파티에서 처음 만나 춤을 추었고 그날 밤을 함께했다. 단 한 번의 관계가 새 생명 잉태로 이어졌고 어쩌면 엄마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를 택한 크리시의 출산으로부터 프러드만 일가의 혼돈과 사랑의 여정이 시작된다.
말도 안 되게 얽히고 설킨 애정행각들로 이해가 필요할 때가 많았지만, 문화적 차이가 분명히 있음을 바탕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갔다.
“거짓과 비밀이란 것은 도둑과 같아서, 그것에게 여기저기 조금씩 도둑맞다 보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며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남동생에게 니나의 언니 빌리는 말한다.
그들에게는 거짓과 비밀이 없다. 간직할 수가 없다. 아니, 거짓과 비밀을 갖는 법을 모른다. 어떤 무거운 처벌이 문 앞에서 기다린다 해도 털어놓는다.
부모도 자식이기에 자식과 같이 실수한다. 하지만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며 함께 성장한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에는 울림이 있다.
제럴딘은 니나의 어머니다. 그녀의 집은 문을 잠글 수가 없다.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제럴딘 집에 들른다. 특히 출근길에 너나없이 들러 아침을 먹고 간다. 제럴딘에게는 생일이 따로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제럴딘 데이라는 카드가 있다. 언제든지 이 카드가 발급되면 어떤 상황이건
모두가 달려와 한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모두가 또박또박할 말 다 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한다. 그들에게는 내가 분명히 있지만, 우리도 분명하게 있어서 무엇이든지 함께할 줄 안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옛말이 생각났다. 한 아이가 태어나면 누구의 아이가 아닌 그들의 자식이 되었다. 자식이 아프면 모두가 아팠다. 선의를 가지고 나누면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잠깐이었지만, 엄마가 혼자 사신 적이 있었다. 손주들 키우느라 애쓰셨으니 조용히 살면서 누구라도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엄마만의 공간을 만들어 드리자는 언니의 생각에 엄마의 억지 동의가 보태져서 언니 집과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얻어드렸다.
결국 큰오빠의 성화에 못 이겨 일 년도 못 가서 접고 큰오빠 집으로 들어가셨지만, 엄마는 늘 아파트 문을 잠그지 않으셨다. 누구라도 “엄마”하고 오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밥솥 가득 밥을 지어놓고 이것저것 음식을 장만해놓고 늘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는 엄마가 소식통이었다. 우리 가족 이야기도 고향 소식도 엄마를 통해 듣곤 했다. 듣다 보면 엊그제 들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소식은 빠지지 않고 알 수 있었다.
엄마에게는 엄마 데이가 있었던가. 엄마도 자식이었는데 그땐 알지 못했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고 살았다. 끝내 자식들이 주인공인 삶을 살다간 엄마. 나는 가끔 그 드라마를 돌려보며 눈물을 훔친다.
자식이란 무엇일까.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식이다. 우리는 모두 자식으로 태어나 자식으로 살다가 자식을 낳고 키우며 자식 때문에 울고 웃으며 자식처럼 살다가 죽어서야 나로 남는다.
7시즌의 드라마는 모두 막을 내렸지만, 나의 드라마는 아직 방영 중이다. 몇 시즌으로 막을 내릴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드라마도 나의 자식들이 다시 돌려보는 드라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재봉틀이 큰 소리를 내는 것은
그 안에 북집이 있어서다
그 심장 하나가
맞는 색으로, 두께로
명주실을 뽑듯 명줄을 뽑으며
늘 돌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가 아직 높은음자리인 것도
너라는 심장 하나가
내 명줄을 그러쥐고 있기 때문이다
명줄, (김미희)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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