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대선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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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우리 독자들에게 미국 대선 결과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얼마 전 류현진 선수가 작년까지 몸 담고 뛰었던 LA 다저스가 우승을 차지한 월드 시리즈보다 큰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우리 독자들에게 끼칠 영향은 물론 적지 않다.
이제 트럼프의 시대는 막이 내리고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이 승리를 확정지은 이 시점에 적지 않은 수의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 독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놀라운 것은 상당수의 사람들이 음모론을 거론하면서 부정선거가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서 우편투표가 상당수 이뤄지고, 대다수의 우편투표 참여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은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야당이 투개표 부정했다는것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고국의 현 정권을 지지하는 소위 친문세력이 트럼프 당선을 열망했다고 한다.
이들은 트럼프가 재선되어야 차기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종전선언을 비롯해 또 한번의 남북미 화해쇼가 가능할 것으로 봤다고 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세력의 정치성향으로는 트럼프나 미국 공화당에 손꼽만큼도 매력을 못 느낄 집단이지만 차기 한국 대선에 활용가치가 있다는 이유로 트럼프를 응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트럼프는 김정은을 두 번 만났고, 여러모로 그의 행보는 분명 현재 고국 집권여당의 선거전략에 도움이 됐을것이다. 어쩌면 내로남불을 추종하는것은 트럼프나 현재 고국의 여권이나 별반 다름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부디 새롭게 선출된 조 바이든이 그 동안의 비정상의 극치 내달린 이곳의 돌연변이적 틀을 깨고 올바른 대통령직을 수행해 나가길 기대해본다. 1942년생으로 올해 77세인 바이든은 학창시절 학업 등에서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작은 체구에도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하는 등 적극적인 학창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바이든이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공화당이 싫어서 소극적인 자세로 지내다가 로스쿨 졸업 후 몸 담고 있던 로펌 퇴사와 동시에 민주당을 찾으면서다.
1970년 그는 델라웨어 주 뉴캐슬 카운티의 의원으로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고, 바이든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다.
이후 1972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바이든은 3,000표 차로 당선되는 당시 최대 이변을 일으키며 연방 상원의원의 자격조건인 30살 생일을 당선 뒤에 맞는 최연소 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당선된 지 한달이 지나서 아내와 막내딸이 숨지고, 아들 둘이 중상을 당한 교통사고가 바이든의 힘든인생을 예고하게 된다.
198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선거운동 중에 한 유세가 당시 영국 노동당 지도자 닐 키넉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비난에 시달렸고, 그해 9월 경선을 접은 바이든은 몇 달 뒤인 1988년 2월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가야 했고, 뇌동맥류가 터져 두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그 해에 무려 7개월 동안 상원의원 직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이 되었고, 부통령이 된후 그가 한 많은 일 중 하나는 다양하지 않은 경험에 자유주의적 가치를 앞세운 오바마 측근들이 접할 수 있는 문제를 먼저 걸러내는 역할을 맡았다.
이로 인해 오바마 측근들은 그에게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스컹크라고 불렀다.
하지만 오바마는 그를 모든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하는 귀중한 존재였다고 밝혔다. 2010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넘겨주자, 바이든의 공간은 의회가 됐다.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공화당과의 협상이 그의 몫이었다. 이후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바이든은 실질적인 협상 권한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고, 타결의 열쇠였다고 인정했다.
2016년 대선 후보로 거론됐으나 결국 출마하지 못하면서, 그의 정계은퇴는 예정된 수순으로 보였다. 당시 대선 승리가 확실해 보이던 힐러리 클린턴 이후에 고령인 그가 대선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회는 또 다시 바이든의 곁으로 찾아왔다. 2016년 민주당의 대선 패배에는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했고, 민주당 진영은 트럼프가 집중적으로 공략한 보수 백인 중하류층의 분노를 깨달았다.
이번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초반에는 이념적으로 트럼프와 극단적으로 다른 진보의 아성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다가 물러난 이유이기도 했다.
강렬한 진보 샌더스가 진보층 지지에는 유리하겠지만, 한계가 있을 것으로 민주당은 진단했고, 이에 따른 대안은 바이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백악관으로 향하는 그의 앞길은 결코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대통령직을 유지한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라는 강렬한 개성의 대통령들은 미국 사회의 이런 진영화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하류층의 젊은 여피족 출신, 대를 이어 대통령을 하는 정치 명문가 장남, 외국인을 아버지로 둔 소수인종, 투기판과 연예계를 오간 부동산 재벌로 이어진 대통령들은 미국 사회가 극과 극으로 움직여 왔음을 보여주고, 이와는 상반된 바이든이 겪을 역정은 그리 쉬워보이지 않는다.
그는 상원에 50년 가까이 있으면서 대통령감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50년이나 상원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워싱턴 정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부디 그의 앞길과 미국의 미래에 한껏 기대를 걸어본다.
공인회계사 박운서
박운서 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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