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고대진] 수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7-26 12:24

본문

고대진 작가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무(無) 혹은 '0', 즉 '아무것도 없는 것'은 무엇인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이것은 오래전부터 철학자들이 골똘히 생각해왔던 주제다. 오랫동안, 이 '아무것도 없는 것'에는 이름도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선 없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하고 0을 숫자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처음으로 0에 이름을 붙여 숫자로 도입한 기록은 7세기 인도의 수학자 브라마굽타가 쓴 천문학책이다. 우주가 무(無)에서 생겨났고, 그 크기가 무한하다고 믿는 힌두교. 그 영향을 받아 무(無)와 무한을 연구하는 것이 신의 가르침을 아는 일이라 생각하는 인도에서는 0의 개념을 브라마굽타 훨씬 이전부터 계산에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대 수학에서는 '0'을 수의 기원으로 삼는다. '1이 모여서 된 것이 수이고 만물은 수다'라는 그리스 수학과는 엄청 다른 출발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나온 노래가 생각난다. 마리아(줄리 앤드루스)가 폰트랩(크리스토퍼 플러머)과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에서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Nothing comes from nothing)”라고 부르는 노래. 언젠가 내가 좋은 일을 했었기에 이렇게 사랑하는 당신을 만날 수 있었을 거라는 노래이다. 하지만 수의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나오는 것이 있다. 0이다. 0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나오고 1이 0에서 나오고 그리하여 모든 수가 0과 1에서 나오는 것이다.  

요즘 신문이나 티브이에서 자주 나오는 '에이아이(AI)'나 빅데이터(Big Data)에선 방대한 양의 자료를 컴퓨터로 분석하여 필요한 정보를 뽑는다. 정보의 기본단위는 비트(bit,binary digit)인데 0이나 1의 값을 가질 수 있고 8비트가 모여 1바이트를 이룬다. 빅데이터의 양은 테라바이트 (10의 12승), 페타바이트 (10의 15승), 요타바이트 (10의 24승) 등의 큰 수인데 1에 0이 24개 붙은 '요타바이트'는 우리가 써온 억, 조, 경 등등 큰 수 단위로 말하면 경의 억 배가 되는 큰 수 “자“다. 이런 수도 0에서 나온 수이다. “아 누구인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있음을 알고/ 맨 처음 그 이름을 붙인 이는”이란 시구가 절로 나온다. 

사실 수학에서도 0을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다. 대학교 시절 0은 무엇이고 1은 무엇이냐고 묻는 친구에게 대답을 못해 쩔쩔맨 일이 있었다. 아니 수학을 한다는 녀석이 0과 1도 모른단 말이냐? 하며 껄껄 웃던 친구에게 대답하려고 읽기 시작한 수학 기초론과 수리 철학책을 통해 현대 수학에서는 수가 무엇인지를 집합의 개념을 통해 정의한다는 것을 알았다. 집합을 그릇, 두께가 없는 경계만 있는 추상적인, 이라고 바꾸어 보면 수학이 전공이 아닌 분들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공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공간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공간을 담는 그릇을 '집합'(set)이라 부르는데 아무것도 없는 집합을 공집합(empty set)이라 한다. 그릇에 담긴 것을 원소라 부르는데 공집합에 있는 원소의 개수를 “0”이라 부른다. 여기에 0이란 이름이 처음 나온다. 공집합 즉 '빈 그릇'은 원소는 없지만, 그릇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무의 존재이다. 우주를 커다란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는 허(虛)의 상태가 공집합이다. 담을 것이 없는 그릇은 클 필요가 없다. 아니 무한히 클 수도 있다. 빅뱅의 시작은 크기가 0인 우주에서 시작하니까. 

공집합을 원소로 삼는 '공집합의 집합'을 생각하자. 빈 그릇을 담은 그릇의 원소는 하나, '공집합'이다. 공집합에서 시작하여 원소가 하나인 집합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공집합의 집합'의 원소와 일대일로 대응시킬 수 있는 집합은 모두가 원소를 하나씩만 가진다. 그러한 모든 집합의 집합을 1이라 정의한다. 풀어 말하면 숫자 1은 원소가 하나인 집합들의 집합이다. 우리가 먼지 '한' 톨이나 사과 '한' 알 혹은 '한' 사람에서 말하는 하나의 개념이 같은 것인지는 쉽게 증명할 수 없다.'백마비마론'은 이런 문제를 생각하다 나온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를 아우르는 개념이 되어야 하는 1의 정의는 모든 한 개로 구성된 집합의 집합이다. 

빈 그릇과 빈 그릇을 담은 그릇을 다른 그릇에 담으면 그릇의 원소는 두 개다. 이 두 원소를 모은 그릇을 '둘집합'이라 하자. 숫자 2는 이 '둘집합'과 원소를 일대일로 대응시킬 수 있는 모든 집합을 모은 집합 즉 두 개의 원소를 갖는 모든 집합을 아우르는 집합으로 정의한다. 셋, 넷, 등등의 정의도 비슷하게 한다. 이렇게 0에서 출발하면 하나, 둘, 셋,…등의 수를 정의할 수 있고 하나 다음은 둘, 등등 순서도 정할 수 있다. 수의 창조론은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하나가 나오고 둘이 나오고…”라고 시작되어야 한다. 

수의 시작이 0이라 한다면 그 끝은 어딜까? 대답은 '없다'이다. 수에는 항상 다음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 수의 반대가 되는 앞의 수는 하나를 뺀다는 개념이 필요하다. 없는 것에서 하나를 어떻게 빼냐고 부족함은 존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지만 부족함을 존재로 보면서 음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뒤 '모든 있는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라는 말이 더 이상 진실이 되지 않게 되었다. 어떤 수도 그 앞의 수를 가지기 때문이다. '0'에서 시작은 했지만,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수의 세계다. 시의 세계는 어떠할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안녕하세요!오늘은 근래에 급격하게 수요가 높아진 가정 간편식(HMR / Home Meal Replacement)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가정 간편식(이하 HMR)은 복잡한 별도의 조리 과정 없이 그대로 또는 단순 조리과정을 거쳐 섭취할 수 있도록 가공, …
    리빙 2024-08-16 
    아름다운 꽃,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른 표정을 가지고 한 여름에도 설산을 간직하고 있는 마운트 후드(Mount Hood)같은 아름다운 화산들, 거친 듯 잔잔하며 골짜기 마다 신비한 풍경을 간직하고 조그만 돌멩이 하나 조차 천지 자연을 이뤄나가는 오레곤 주는 자연의 모든…
    여행 2024-08-16 
    위키 백과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33%는 기독교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은 많아도 성경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은 몹시 어려워 보인다. 하나님이 사람 마음속을 훤히 아신다는 부분이 가장 난감하다. 하나님은 외모 말고…
    문학 2024-08-16 
    상업용 투자 전문가에드워드 최문의: 214-723-1701Email: edwardchoirealty@gmail.comfacebook.com/edwardchoiinvestments파리올림픽에서 전 종목 금메달을 석권한 한국 양궁은 보는 이들을 탄복하게 했다. 관객들의 …
    부동산 2024-08-16 
    박운서 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 swoonpak@yahoo.com2625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명품의 나라 불란서 파리에서 진행된 올림픽이 막을 내렸…
    회계 2024-08-16 
    큰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집에 왔다. 나의 온 세상이었던 아이가 자라 그의 온 세상을 품고 온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과 함께 온 그 작은 생명체는 조용했던 집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두 주 전부터 데이케어에 다니기 시작한 손자는, 아빠가 눈에 보이지 않으…
    문학 2024-08-09 
    공인회계사 서윤교바야흐로 100세 시대이다. 불과 10년전까지도 100세 세상이라고하면 먼훗날의 남의 이야기인줄알았는데 벌써 우리곁으로 다가왔다. 예전에는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다보면 얼마있다 죽게되어 은퇴연금이나 은퇴후 계획등에 무관심했는데 지금은 …
    회계 2024-08-09 
    한 아버지와 두 아들이 몬테나 지방의 이름 모를 강에 플라이 낚시를 던지고 인생의 아름다움을 교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영화 중의 하나인 로버트 레드포드 (Robert Redford) 의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입니다. 목사 맥린이 낚시를 통해 인생을…
    여행 2024-08-09 
    1. 아르바이트로 피자 배달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보험으로 보상이 가능한가?피자배달도 일종의 상업행위이므로 당신의 자동차가 개인 용도로만 사용되는 차라면 상업용으로 커버 받기 위해서는 Policy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신의 커버리지를 확인해보지 않고 보험회사에서…
    리빙 2024-08-09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치즈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치즈는 구분할 때 자연치즈와 가공치즈로 나뉩니다. 자연치즈는 유산균과 효소 작용으로 우유를 굳게 하여 만드는 치즈로서 후레쉬 치즈처럼 숙성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치즈도 있지만, 보통 유산균과 같은…
    리빙 2024-08-09 
    상업용 투자 전문가에드워드 최문의: 214-723-1701Email: edwardchoirealty@gmail.comfacebook.com/edwardchoiinvestments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출신의 ‘흙수저’로 알려진 J.D. Vance 미국 연방 상원의원…
    부동산 2024-08-02 
    K팝의 인기를 공연장에서 가면 실감하게 된다.지난 28일, 8인조 보이 그룹 ATEEZ(에이티즈) 2024 월드 투어 ‘Towards the Light:Will to Power” 달라스 공연이 알링턴에 있는 ‘Texas Rangers Globe Life Field’에서…
    문학 2024-08-02 
    박운서 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 swoonpak@yahoo.com2625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바다건너 고국은 민심에 올라타서 수평적 당정 관계를 기…
    회계 2024-08-02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소스중에 하나인 굴소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굴소스란 굴에서 나오는 진한 국물과 굴을 곱게 갈아서 소금, 간장, 전분, 감미료 등과 혼합하여 걸쭉하게 만들고 아미노캐러멜로 색을 입한 중국 광동식 소스를 말합니…
    리빙 2024-08-02 
    수요일 새벽입니다. 창가에 비치는 달라스 북쪽의 한적한 도시의 불빛은 아련히 타오르는 촛불처럼 희미하게 방안의 한쪽을 비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존재들에게 금방 마음을 빼앗길 것만 같은 목마름에 프렌치 프레스로 깊게 내린 …
    여행 2024-08-02 

검색